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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연정(常戀亭)에서… - 일상, 하나님의 나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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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댓글 0 건 조회 7,407 회
작성일 12-08-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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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정(常戀亭)에서… - 일상, 하나님의 나라 (1)
<소리> 2012년 8, 9월호.

배경 및 등장인물 소개

● 상연정(常戀亭) : 일상생활을 사랑하는 정자[常戀亭]. 동방의 작은 나라에 위치한 곳으로 지자(知子)라는 지혜로운 노인이 머물러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 인터넷 홈페이지 www.1391korea.net
● 지자(知子) : 호는 적신(赤身). 3M 정신(맨몸·맨주먹·맨땅)을 몸소 실천하기에 그리 부른다. 맨주먹으로 상연정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이 얼마나 가치롭고 고귀한 것인지를 연구·전파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혹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가득 지으면서도 맘에 안드는 일은 반드시 지목해서 말한다고 해서 그를 '지적신(指摘神)'이라고도 일컫는다.
● 종자(從子) : 상연정의 제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지자를 따랐던 제자[從子]. 스승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메모광이며(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업그레이드), 스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서 바닥청소를 시키면 화장실청소까지 자청해서 하는 인물이라 혹자는 그가 지자의 '종'이라서 '종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 식자(識子) :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 아는 것이 많아서 식자(識子)라 불리우지만, 유달리 식욕을 절제할 줄 몰라 식자(食子)로도 불리우는 제자. 이성적이며 합리적 지식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막내 제자인 적자(嫡子)와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다.
● 적자(嫡子) : 상연정의 막내 제자. 먼저 입문한 선배들을 무시한 채 '스승의 지혜를 배울 뿐만 아니라 패션과 걸음걸이, 심지어 다이어트 경력까지 본받고 있는 나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적자(嫡子)올시다'라며 설레발치는 당돌한 제자. 그때마다 식자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잊어먹으니 너야말로 진정한 적자(赤字) 지성이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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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회색의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차라리 비라도 한 바탕 쏟아지면 좋으련만, 끈적거리는 공기와 검은 넥타이는 몸과 마음을 단단히 얽매고 있었다.

“휴…….”

식자는 넥타이 매듭으로 손을 가져갔다. 생각처럼 쉽게 넥타이가 풀리지 않았는지 그는 신경질적으로 매듭을 잡고 흔들었다.

“사형…….”

적자가 그를 불렀다. 그는 초점 잃은 눈으로 적자를 보았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적자는 천천히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했다.

“됐네, 이젠 내가 하겠네.”
“…….”

적자는 말없이 고개만 꾸벅 숙이고는 물러났다.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던 지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종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 아이가 유독 식자와 가까웠지?”
“예, 그래서 저희가 많이 놀리기도 했지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색깔은 남색이라고 말입니다.”
“허어…… 고약한 장난을 쳤구나. 친인을 잃은 아픔이야 누구라서 덜 하겠느냐마는, 식자의 아픔은 곁에서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구나.”

상연정의 네 사람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상연정에 몸 담았던 한 사람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이름은 죽자(竹子)였다. 쭉 뻗은 대나무처럼 올곧게 살아 가리라는 다짐이 담긴 이름이었지만, 동료들은 ‘죽자고 공부만 해대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냐며 농을 던지곤했다. 실제로 청운의 뜻을 품고 상연정에 입문한 죽자는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아무리 죽자고 해도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 식자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죽자의 성격이 빛을 발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질투하고 원망할 법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식자에게 배움을 청했다. 식자는 죽자의 겸손한 품성에 크게 감탄하여 그와 갚은 교분을 나누었다. 그들의 관계는 죽자가 심한 치질을 얻어 상연정을 떠난 후에도 계속 돈독하게 유지되었다.

“그 친구가 그리 갈 줄은 몰랐네.”

종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적자가 맞장구를 쳤다.

“대량 출혈로 인한 실혈사(失血死)였다고 하지요? 아, 죽자 사형…… 정말 아까운 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화장실에서 그리 흉하게 가시다니…….”
“그러게, 의자에만 앉아있지 말고 운동도 좀 하지…… 무슨 대단한 공부를 한다고 화장실에서까지 책을 끼고 오래도록 앉아서…….”
“죽자 만의 이야기가 아니니 우리 모두 몸 조심해야지.”

지자의 짤막한 말에 세 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잠잠하던 식자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승님, 죽은 사람은 천국에 갔으니 애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
“오늘도 저는 그런 상투적인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니, 슬퍼하는 저를 책망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저를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은 사람으로 몰아붙이더군요. 스승님,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의 소망이란 것이 사람을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란 말입니까?”

지자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의 귀로 적자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스승님, 저 또한 오늘 장례식에 오간 이야기로 인해 궁금한 것이 있사옵니다. 제가 스승님께 배우기로 ‘하늘 나라’는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일컫는 표현이었습니다. 한데 오늘 죽자 사형의 장례식에서 ‘하늘 나라’를 두고 한 이야기들은 죄다 죽은 후에 가는 어떤 낙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옳은 이해입니까?”

눈 감은 채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무리 호의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고 하나, 식자 네게는 큰 상처가 되었겠구나. 무례한 사람들 같으니……. 한데 적자의 말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만한 이야기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왔느냐?”
“…….”

잠깐의 침묵이 오간 후 종자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과거의 메모를 검색했다.

“그러지 않아도 일전에 이 주제를 놓고 몇 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후에 다른 사람을 만나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사람들은 대체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에 가는 천국으로 이해하거나 교회 자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이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나 교회로 이해한단 말이지? 식자야, 네가 보기에는 그것이 어떤 문제를 낳는 것 같으냐?”

식자는 갑작스런 스승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고개를 몇 번 흔든 후 차분히 대답을 시작했다.
 
“제자의 부족한 소견에는, 첫 번째 방식의 이해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 먼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는 듯 하옵니다. 이번에도 경험했지만…… 보통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장소는 장례식장이었고, 그 자리에서 불리워지는 노래는 사후의 낙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일정부분 현실의 아픔을 위로하는 효과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 속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렇지?”

“예, 스승님. 또한 두 번째 방식의 이해는 더욱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생각하다보니,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삶의 전반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일어난다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옵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목사의 다스림으로 생각하거나, 교회가 사회에서 힘을 갖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실현하려는 경향마저 나타나옵니다.”
“식자야, 두 가지 이해가 공통적으로 불러오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식자는 생각에 골몰했다. 생각에 빠져드니 슬픔이 잠시 잊혀지는 것 같기도 했다. 종자와 적자는 그것을 느끼며 스승의 지혜로운 질문에 감탄했다.

“아!”
“깨달았느냐?”

지자는 빙긋이 웃었다.

“두 가지 관점은 공히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을 축소시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 세계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발 딛고 선 오늘의 현실을 가볍고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게 만들며,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생각하는 것은 교회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은 소홀히 여기고 교회 내부의 일에만 중요한 가치를 두게 만듭니다.”
“네 말이 옳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는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건전한 이해야 말로 우리 상연정 모든 학문의 근간이 되느니라.”

식자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일상이 곧 하나님의 나라로군요.”
“멋진 말이로구나. 그래, ‘일상, 하나님의 나라!’ 이는 우리가 붙들고 숙고해야 할 말이다.”
“아, 스승님…… 이 문장은 죽자가 남겨준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자는 식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 우리 모두 죽자를 애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신학 위에서 일상을 가꾸어갈 방도를 고민해보자꾸나.”

상연정의 네 사람은 지병인 치질을 가지고도 학문에 힘쓰다가 결국 항문에서 피를 쏟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 죽자를 애도하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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