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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018년 8월 일상사연 - 보조적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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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18-08-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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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적 사역?
 
구약성서 <룻기>에는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이름이 곧 제목이 된 룻이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고, 룻과 결혼한 보아스도 중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룻기에는 또 한 명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룻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룻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나오미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룻기>를 함께 공부했을 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이에게 감정이입했습니다. 저는 친절한 사람 보아스에게 집중했고, 여성 참여자들은 룻과 나오미에게 집중했습니다. 물론 기계적으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윗 연배의 여성들은 나오미에게, 아랫 연배의 여성들은 룻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자신을 나오미라고 불러달라 했습니다. 저는 나오미(가명)씨를 만나며 여러 경험을 통과하며 성숙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국 나이로 올해 55세인 나오미씨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할 때, 남편의 직업을 말했습니다. 나오미씨의 남편분은 지역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님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한국교회에서 나오미씨를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은 “사모님”입니다. 남편이 하는 일에 따라 “사모님”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진 나오미씨는 “목사님 사역의 보조적 역할”로 “교회 일을 섬기고 있다”며 자신이 하는 일을 간단히 말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달라고 부탁하자 나오미씨는 미소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도적으로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요. 목사님 사역을 돕는 보조적 역할이죠. 음…… 그리고 교회 전반적인 성도님들의 상황에 대해서 살피고, 만나서 심방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피고 돌보는 일을 주로 해요. 우리 교회에 젊은 여성도님들이 몇 분 계셔서 그분들과 매주 한 번씩 성경공부를 하구요. 나머진 주로 청년들 밥해주는 일? 뭐 그런 것들을 해요.”

나오미씨는 자신이 하는 일을 “보조적 사역”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제 입장에선 잠시 듣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문득 나오미씨가 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보통 10시부터 중보기도 모임이 있어요. 중보기도 모임을 갖고 11시에 주일예배를 드리죠. 예배 마친 후에는 점심 먹고 사람들과 교제 나누고, 오후예배를 드려요. 오후 예배 마친 후에 청년들이 저녁식사를 해야 하면 제가 밥을 하죠. 그런 일이 없을 때는 집이 와서 좀 쉬고요.”

나오미씨는 주중에도 주일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배우자가 목사라서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의 일에 따라 아내의 역할이 이렇게 전형적으로 결정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씨가 그간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묻기로 결심했습니다.

#선교단체통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교회생활을 쭉 해오다가 대학교 1학년 때 C 선교단체를 알게 되고 4년 동안 훈련 받았죠. C가 제게 1차적인 신앙의 핵, 혹은 어떤 선을 그엇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는 거기서 기본적인 신앙, 공동체에 대한 사랑, 비전 등에 대해 배웠어요. 그리곤 대학 졸업하자마자 간사로 8년 정도 섬겼어요.”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8년간 간사생활을 한 후 나오미씨는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만났습니다.

“남편을 만나고 간사사역을 그만뒀어요. 결혼하고 난 뒤에는 에스라성경연구원(현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이하 “에스라”)에서 남편이랑 같이 1년 동안 공부했어요. C가 첫번째 선을 그어준 곳이었다면, 에스라는 신앙에 두 번째 선을 긋는 계기가 되어 주었어요.”
“신앙의 선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C 선교단체에서는 기본적인 신앙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 비전 등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어요. 에스라에서는 어떤 걸 배우셨나요?”

나오미씨는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거기서 남편이랑 성경 전체를 공부했어요. 그때가 신앙의 본질, 복음의 본질……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새롭게, 본질에 더 가깝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그리고 선이라는 말은…… 그 시간을 통해 남편이랑 같은 시각으로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는 중요한 결정적인 선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후엔 바로 지역교회 사모님 생활을 시작하셨나요?”
“아뇨.”

나오미씨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에스라에서 나온 후, (예비) 의료인들을 섬기는 선교단체에서 남편이랑 같이 4년 동안 섬겼어요. 우리 둘 다 학생들을 섬기는 사역을 했죠.  특정한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에 대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공동체에서 귀한 경험을 많이 했죠. 그 다음에 남편이 지역교회로 들어가게 되면서 의료인 선교단체를 그만두게 되었죠. 남편이 부교역자로 섬기는 동안 저는 성경읽기와 묵상을 보급하고 교육하는 선교단체에서 8년 정도 협력간사로 섬겼어요.”
“와, 선교단체통이시네요.”
“많이 거쳤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제 감탄에 나오미씨는 조금의 거만함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셨던 선교단체는……?”
“남편이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선교단체 사역을 놓고 교회 섬기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죠. 지금 교회에 온지는 11년쯤 되었어요.”

‘선교단체통’이라는 말은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나오미씨의 경험은 충분히 그렇게 부를만한 것이었습니다. 3개 단체에서 20년간 일했던 나오미씨의 경력을 생각하니 제가 다 아쉬웠습니다. 어떤 일이건 그만한 세월 동안 해왔다면,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첫 번째 단체, 그러니까 대학생 선교단체는 왜 그만두셨나요?”
“C의 사역은 액티브한 게 워낙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좀 지친 것도 있었고…… 후배들이 많이 올라오고,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였어요. 8년쯤 한 가지 일을 계속 하다보니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죠. 공부를 더 해야 하나, 결혼을 해야 하나? 마침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남편을 만났어요. 저와 비슷한 그레이드에 있던 사람들은 공부하러 외국에 많이 나갔어요. 저는 결혼을 선택한거구요.”
“같은 일을 8년이나 하셨는데, 혹시 경력이 단절된다는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나오미씨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습니다.

“그때 우리 단체에 변화가 많았어요. 단체 자체가 둘로 갈라지던 시기였죠. 그 시절 간사님들은 외국으로 많이 나가셨구요. 우선 단체 안에서 겪는 변화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었구요, 결혼 문제도 고민이었어요. 아예 처음부터 ‘결혼을 안하겠다’라고 생각을 했다면 특별히 다른 생각이 없었을텐데, 저는 ‘꼭 안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예전에 인터뷰했던 분은 선교단체 안에서 여성 간사가 오래 사역하려면 독신이거나 단체 내부에서 배우자를 만나야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혹시 나오미씨가 계셨던 곳도 그랬나요?”
“음…… 그랬으려나요? 독신 여자 간사님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요. 그분들이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기도 한 것 같네요. 전 외국 나가서 공부하기엔 머리가…….”

나오미씨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저도 마주 웃으며 말했습니다.

“말씀 나눠보니까 공부 굉장히 잘 하실 것 같은데요.”
“우리 집이 다 목회자 가족이예요. 언니도 목사 사모구요. 언니가 권했죠. 목사 사모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좋은 일이라고. 아, 그렇다고 특별히 남편이 목회자라서 선택한 건 아니예요. 여러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중에 좋은 사람을 선택했던 거예요. 어떤 목표를 두고 만난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사람이 먼저다? (웃음) 결혼하시고, 에스라에서 공부를 하셨고. 그리고 바로 의료인 선교단체로 가셨네요?”
“그때 에스라 원장이셨던 윤종하 장로님이 우리 부부를 불러서 의료인 선교단체에서 간사를 모집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거기 가서 섬기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시며 추천서를 써주셨어요. 처음엔 남편만 가려고 했는데, 장로님이 두 사람이 다 같이 가는게 좋겠다고 하셨죠. 남편은 선교단체 출신은 아니었지만,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선교단체 출신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좀 있었어요. 그런 마음이 있는데 장로님이 추천해주시니 남편은 바로 지원을 했죠. 저는 C 단체 경력이 있어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추천해주셨구요. 그래서 남편이랑 같이 사역을 하게 되었어요.”

나오미씨는 그 당시의 했던 일을 담담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일반대학의 학생들과 다른 학사일정에 따르느라 시간이 별로 없었던 학생들을 위해 담당한 캠퍼스에 들어가서 1주일에 한 번씩 성경을 가르치고, 개인적으로 상담하고 격려했던 일, 아침마다 성경 읽고 기도하던 캠퍼스 모임에 한 번씩 참여했던 일,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던 일 등 소속된 단체가 바뀌고 섬기는 대상도 바뀌었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일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씨는 다시 한 번 다른 선교단체로 이직하게 됩니다.

“남편이 부교역자로 교회에 들어가며 의료인 선교단체를 떠나게 되었죠. 그리고 교회가 있는 지역의 성경 읽기 선교단체를 찾아갔어요. 자원봉사를 하러 갔었죠. 제가 도울 수 있는게 혹시 있냐고 찾아가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 곳에서 이왕 일하는 거 직함이 있으면 좋겠다면서 협력간사 명함을 하나 파주더라구요.”
“굉장히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 하셨네요.”

저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그 선교단체가 에스라나 의료인 선교단체와 깊은 관계가 있었거든요. 에스라의 윤종하 장로님이 그 단체의 초대 총무셨고, 그 단체에서 발행되는 큐티책을 보급하는 일에 헌신하셨어요. 저는 윤종하 장로님의 신앙 색체를 잘 알고 있어서 거기가 낯설지 않았어요. 익숙하게 섬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들어갔죠.”

직접적으로 학생들을 섬기는 일에 깊이 참여했던 앞의 사역들과 달리 마지막 선교단체에서 나오미씨는 사무적인 일을 주로 도왔습니다. 일종의 사무간사 역할을 자원봉사로 맡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나오미씨는 묵상모임과 성공공부 모임, 여름/겨울의 캠프 등도 섬겼습니다.

“협력간사로 8년쯤 섬겼다고 하셨죠? 이번에도 그만둘 때는 목사님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건가요?”
“남편이 담임목사가 되고도 처음 2, 3년 정도는 병행했어요. 그러다 결국 교회에 올인하게 되었죠.”

나오미씨는 이미 앞서 교회에서 주로 하는 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오미씨에게 선교단체에서 맡았던 역할과 지금 교회에서의 역할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나오미씨는 차분하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가능하면 교회에서는 가르치는 역할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해요.”
“왜죠?”
“목사님이 그 역할을 하시니까요. 물론 나눔은 가능해요. 다만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역할은 조심하는 편이예요.”
“혹시 외부에서 어떤 피드백이 있었나요?”
“아뇨. 제 스스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화제를 바꿔보죠. 원튼 원치 않튼 남편분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시잖아요. 다른 직업군보다. 보통 어떤 상황에서 갈등이 생기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나오미씨는 제 짓궂은 질문에도 선선히 대답해주었습니다.

“남편은 외아들이예요. 혼자 있는게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죠. 늘 책 보고……. 저는 사역도 그렇고 집안 배경도 그렇고, 좀 복작복작하게 사람들과 늘 함께 움직이고 활동적인 사람예요. 그런데 결혼하니까 너무 조용한 거예요. 아이가 없으니까 더 조용하죠. 처음엔 그런 것들이 많이 힘들었어요.”
“혹시 구체적인 사건이나 장면을 여쭤바도 될까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 부부싸움이 많았어요. 다른 날은 몰라도 그날만은 의미있게 기억해주기를 바랬어요. 그런데 남편한테는 모든 날이 똑같은 날이예요. 어느 하루만 특별하고 그런게 없죠.”
“모든 날이 특별하면, 아무 날도 특별하지 않은 것 아닌가요?”

나오미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 부분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어요. 그러니 특별한 날에 오히려 더 안 좋아졌던 거죠. 그렇게 싸움을 몇 번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일에 더 이상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음…… 남편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선은 만들었구요.”

두 손의 간격을 벌렸다가 점점 가깝게 하는 동작을 취하며 나오미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너무 기대하지 않고, 남편도 마냥 아무 것도 안하는 일은 자제하고. 그런 선을 만든거죠. 물론 그래도 기본적인 성향은 안바뀌었어요. 남편은 생일날 케익에 촛불 켜는 그런 것도 안해요. 그런 일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인거죠. 저는 그런데 되게 많은 의미를 두는 사람이고……. 여자들이 바라는 건 대단한게 아니라도 마음을 담아주는 거예요. 편지라도 하나 써주면 덜 섭섭할텐데라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한 적도 있었어요. ‘내가 당신에게 의미있는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는 글이라도 써주면 좋지 않겠냐. 우리가 목회자니까 돈도 없고, 여력도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충분히 당신은 특별한 사람,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표현할 길이 있는데, '알꺼야'라고 생각하고 아무 것도 안하면 되게 서운하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말이요. 이런 성향상의 차이 외에 딱히 다른 갈등은 없는 것 같네요.”
“지금은 차이를 좀 극복하셨나요?”

나오미씨는 미소지었습니다.

“안바뀌더라구요. 노력하는게 보이긴 하는데. 포기하고 내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는게 제일 좋은 길이예요.”
“아, 노력은 하는데…….”
“안바뀝니다.”

가볍게 웃으며 나오미씨는 계속 말했습니다.

“남편도 저보고 안바뀐다고 할 거예요. 저도 제가 가진 기본적 성형이 있으니까요.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 달라지긴 했죠. 예전에는 분노로 표현했다면, 지금은 조금 이성적인 언어를 써요.”
“분노요?”

인터뷰에 임하는 나오미씨의 모습과 말투만 보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단어가 ‘분노’였습니다. 나오미씨는 멋쩍게 웃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어요?’라고 뭐라하는거죠. 갈등의 시간을 거치면서 궁극적으로는 제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했어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찾아가는 것…… 물론 거기엔 남편과 함께 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아가게 되었어요. 글쓰기나 그림그리기, 책 읽기, 소소하게 친구 만나기…… 이런 것들이 제가 나름대로 행복함을 찾아가는 방법이예요.
“괜히 갈등 경험을 여쭤봐서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올리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혹시 남편분과의 관계에서 ‘이런 점이 있어 마음을 맞출 수 있었다’ 같은 것 없었나요?”
“감사한게 많죠. 특히 남편과 제가 에스라에서 같이 공부했던게 제일 감사해요. 왜냐하면 세상과 교회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같은 방향을 볼 수 있는 같은 시선을 갖게 되었거든요. 목회하는데, 목사와 사모의 시선이 다르면 갈등이 심각해져요. 목사님의 핵심적 신앙관을 공유하니까 사역하는데서도 함께 갈 수 있었죠. 에스라에서 1년 동안 그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힘들었을텐데, 그런 작업을 해서 심각한 갈등을 줄일 수 있었어요. 되게 감사해요. 신앙에 있어서 같은 색깔, 같은 성경을 보는 눈,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같은 철학을 갖는 건 정말 중요해요. 목사님 설교를 들을 때, 보통 사모님들이 부정적 생각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저는 남편의 설교를 듣고 공감하며 갈 수 있어요. 큰 축복이죠. 남편이 하는 설교의 내용에 공감하고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이.”
“와, 정말 부럽네요. 저는 설교 마친 후에 아내한테 지적 받을 때가 많았는데…….”
“남편이 저한테 ‘당신은 질책의 은사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저도 그랬던 거죠. 아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도 은사를 발휘하고 있겠죠? 그래도 많이 줄였어요. 대신 저는 질문을 많이 던져요. ‘당신이 오늘 그렇게 설교했는데 나한텐 이렇게 다가왔다. 그게 그런 뜻 맞냐?’라는 식으로요. 물론 좋았을 때는 좋았다고 이야기하구요.”

#마라

모압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그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은 “이 사람이 정말 나오미?”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움)라고 불러주오”라고 말했습니다. 나오미씨도 그런 때가 있었을까요? 자신을 나오미가 아닌 마라로 불러달라고 비명처럼 외치고 싶었던 때가…….

“유산을 두세 번 했어요. 나오미 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진 않았지만……. 남편은 홀어머니 밑에서 독자로 자랐어요. 결혼하자마자 임신했다가 유산했구요, 몇 년 뒤에 또 임신하고 유산했어요. 원망은 안했지만 질문은 있었어요. ‘하나님이 왜 나에게는 자녀를 주지 않나?’ 남편도 외롭게 살았고, 어머님도 아들 하나 보고 사셨는데 손주 안겨드리는 기쁨을 못드린게 미안하기도 하고. 전에 있던 교회의 어떤 성도는 제가 바로 앞에서 밥 먹고 있는데 애가 없다는 이유로 ‘밥 값도 못한다’고 말했었죠. 그땐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나오미씨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저는 아기를 되게 많이 낳고 싶었어요. 자녀 양육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구요. 근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네요. 입양하려 했는데 그것도 못했어요. 절차를 진행하려다가 임신해서 취소했거든요. 그런데 또 유산했어요. 아직도 하나님이 왜 그러셨는지, 무슨 깊은 뜻이 있으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 결과로 지금 저는 되게 단순하게 사는 법을 배웠어요. 단순하게 교회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바울이 그랬잖아요, 결혼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단순하게 교회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나라는 생각을 가끔해요. 음…… 미안한 마음은 있어요. 남편한테도.”
“’미안하다’는 말씀을 거푸하셨어요. 시어머니에게, 남편에게. 아이를 갖지 못한 건 나오미씨 입장에서도 큰 아픔인데 왜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드는 걸까요?”
“제가 그랬나요?”

나오미씨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시어머니는 교회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예요. 한 교회에서 50년 동안 여전도사로 섬기셨어요. 남편은 그런 어머님의 독자구요. 아버님은 남편이 두 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분들의 외로움을 알아요. 저는 형제들과 살아와서, 그런 외로운 상황을 크게 겪지 않고 자랐어요. 남편과 결혼해서 외로운 가정 안에 며느리로 들어왔는데…… 그것이 나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안함…… 내가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이 좀 있어요.”
“미안함 말고, 본인이 느끼는 슬픔이나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조금 긴 침묵 후 나오미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자녀가 있는 분들을 보면 당당해 보이는건 있는 거 같아요. 특히 자녀가 잘 되었을 때 더 당당해지요. 여자의 당당함이란게, 남편의 성공이나 자녀들의 행보와 밀접한…… 그런게 좀 있잖아요.”

#좀 더 단순하게

무거운 분위기를 바꿀 겸, 마무리 질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시다보면, 대단히 종교적인 일을 일상적으로 하게 되잖아요? 모두가 그런건 아니겠지만, 제 경험상 종교적인 일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오히려 그 일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의식하는게 어려워질 때가 많았던 거 같아요. 혹시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활동으로 이런걸 한다, 싶은게 있으신가요?”

나오미씨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제가 평생 동안 하고 싶은 건 묵상 나눔이예요. 저는 그게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갖게 하는 제일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나눔을 하면 적어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게 되거든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묵상 나눔을 하고 산다면 평생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저는 나이가 들어도 이 모임…… 묵상 나눔의 장은 계속 열고 싶어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묵상 모임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오미씨는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오미씨의 이야기는 어떤 사모, 아니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로 옮겨갔습니다.

“특정한 사모상을 딱 만들어두고 나를 거기 맞추려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교회에서 목사 사모니까 이렇게 행동해야한다, 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면 오래가지 못해요. 어쩐 직임을 맡아서 거기 맞는 모습이 되려하기보다 가장 나다운 모습,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되는 것이 중요하겠죠. 사모니까, 혹은 나이가 많으니까 이런 모습이 되어야만 해, 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상생활 자체가 사역이 되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나다움, 혹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 모습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떻게하면 그런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요?”

저의 마지막 질문에 나오미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좀 더 단순해지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일상생활도 복잡한데서 단순한데로 옮겨가고, 하나님 섬기는 것도 더 단순해지면 좋겠어요. 예전엔 남편에게 ‘당신의 꿈, 당신의 목회 비전은 무엇입니까?’라고 자주 물었어요. 그런데 관심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꿈이나 비전 같은 것들을 강하게 의식하며 살기보다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목적지를 강하게 의식하며 열심히 달린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단순하게 섬기는게 제가 할 일이겠죠. 물건도 많이 없애고 싶어요. 걸리적거리고 복잡한 것들을 없애고…… 신앙도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지고 싶어요.”

단순한 삶을 말하는 나오미씨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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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사역연구소 Institute for 'Everyday Life as 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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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공간 레인트리: 부산시 금정구 중앙대로 2066, 4층 (46214)
☎전화 : 051-963-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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