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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이야기 1월 일상사연 - 전선미님(디자인바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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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7 회
작성일 26-01-0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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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 저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잘 소통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인쇄물 전반을 다루며, 글과 이미지, 여백이 만나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을 함께 고민합니다. 
최근에는 음악회 포스터와 팜플렛, 카드뉴스와 티켓 구매 사이트의 상세 페이지, 굿즈 제작을 진행하고 있고, 중·고등학교 학생자치신문과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교과서, NGO 단체의 30주년 기념 책자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대상과 목적을 가진 작업들이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도록 돕는 일’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2. 이 일을 하기 위해 그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오셨나요? 
- 인쇄매체와의 인연은 중·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학생회 주보와 회지를 손글씨로 쓰고, 그것을 인쇄하기 위해 마스타인쇄소를 드나들던 때가 시작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미술부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고, 그 시절 제 오른쪽 중지에는 늘 물감과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졸업 후 많은 학과 친구들이 번듯한 기업으로 향할 때, 저는 인쇄골목을 누비며 일을 배웠습니다. 1990년 디자인기획실에서 디자인부터 인쇄 전 과정의 실무를 몸으로 익혔고, 이 경험은 지금까지 제가 1인 경량기업으로 일할 수 있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인쇄 현장에 전자출판의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재래식 인쇄 방식과 함께 매킨토시 컴퓨터가 도입되며, 혁명적인 변화 속에서 많은 인쇄 관련 업종들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1994년 매킨토시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편집 프로그램들을 배워 실무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 변화의 흐름을 현장에서 함께 통과해 왔습니다. 

결혼과 출산 이후 기획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을을했으며, 큰 공백 없이 35년 가까이 이 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디자이너로 남아 있는 동료는 많지 않지만, 인쇄 전 과정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일을 좋아했고 생계형 디자이너로서 세 딸을 키우며 디자인을 놓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교회와 선교단체의 일을 주로했고, 작업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2020년 ‘디자인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3. 평범한 하루 일과를 기술해주세요. 
- 우리 동네에는 6개월만 장사하고 6개월은 쉬는 유명한 밀면집이 있습니다. “내년 5월에 문엽니다” 문구를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 밀면집처럼, 반년은 집중해서 일하고 여름 시즌에는 일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사업 통장이 바닥을 보일 즈음이면 다시 일이 들어오곤 해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습니다.. 

여름과 겨울의 일과는 조금 다르지만, 요즘 저의 하루는 원치 않는 시간에 깨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갱년기의 조각잠이 시작되면서 명상 앱과 친해졌습니다. 특히 일이 많은 시기에는 새벽에 자주 깨는데, 그럴 때 바디 스캔이나 호흡 명상을 따라 하다 보면 다시 잠들곤 합니다. 

작은 침실과 약 1.5평 남짓한 ‘디자인바람’ 사무실은 바로 붙어 있습니다. 사무실에는 책상 두 개와 의자 두 개가 있습니다. 컴퓨터 작업을 위한 책상과 사무용 의자, 그리고 기도를 위한 작은 테이블과 기도의자가 있습니다. 기도자리에는 초와 성화, 작은 꽃 병에 꽃 한송이가 있습니다. 아침에 지키려고 애쓰는 습관은 침묵 기도와 말씀 묵상, 그리고 책 읽기입니다. 컴퓨터를 켜기 전에 하지 않으면, 하루가 끝날 때까지 하지 못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고 지금은 바빠도 쓸려내려가지 않는 루틴이 되었습니다. 

오전에 하지 않기로 정한 일들도 몇 가지 있습니다. 주방 일은 시작하면 끝이 없어 시작을 않고, 유튜브로 뉴스를 보거나 쇼핑을 하지 않습니다. 급한 업무를 처리한 뒤, 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돌아와서 첫 끼를 먹습니다. 

아침 기도와 운동 루틴을 제외하면, 요즘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거의 일을 합니다. 1인 기업은 결국 한 사람이 밤까지 일을 해야 유지됩니다. 

아직 연습 중인 밤의 루틴은 성찰 일지를 쓰는 일입니다. 자꾸 몰아 쓰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보상 심리가 생겨 뉴스를 검색하거나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촛불을 켜면 도움이 됩니다. 촛불 앞에서는 마음이 조금 고요해집니다. 

잠자리에 들며 짧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잠자는 동안 주님 안에서 몸과 마음이 쉼을 얻기를 원합니다.” 

4. 일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또 ○○의 계절이 왔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런 문자를 받을 때 마음이 기쁩니다. 수년 동안 같은 시기에 연락을 주시는 광고주들이 있습니다. 한 번 일을 맡긴 이후로 계속 신뢰해 주실 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일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큽니다. 올해도 부산교사합창단 정기연주회 작업을 맡았는데, 지휘자 노트를 읽고 고민하며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주제에 꼭 맞는 포스터가 나왔을 때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어떤 일은 텍스트와 사진, 도표 등 여러 자료를 처음 받았을 때는 막막하지만, 여러 번 읽고 이해하며 정보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을 거쳐 사람들이 내용을 쉽게 파악하고 좋은 느낌을 받도록 만드는 일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최고의 디자이너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저는 작은 지면 위에서 조금이나마 펼치고 있는 셈입니다. 

일을 마칠 때 느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입금이 확인 될때, “덕분에 이번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라는 피드백, 때로는 개인적으로 보내주시는 기프티콘 하나에도 다시 힘이 납니다. 정보와 사람이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경험 속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낍니다. 

반면, 가장 큰 어려움은 여전히 견적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디자인 일의 특성상 단가를 정하기가 쉽지 않아 “너무 많이 책정한 건 아닐까?”, “너무 적게 받은 건 아닐까?” 하는 혼란이 따라옵니다. 품은 많이 들었는데 기본 시급에도 못 미칠 때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광고주와 일의 특성에 따라 나름의 요령은 생겼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1인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디자인부터 교정, 인쇄 감리, 납품,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하루의 끝까지 혼자 책임져야 할 일이 많습니다. 

5. 당신이 가진 신앙은 일과와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어려움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예) 구체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태도나 방식, 일터에서의 인간관계 등에 있어서 신앙은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 최근에 읽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서 마음에 오래 남은 구절이 있습니다. 

“봉인된 명령이 특별한 것은 그것이 완수해야 할 어떤 과제가 아니라, 한 개인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라는 점이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이 문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미 제게 선물로 주신 ‘독특한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붙잡게 된 키워드는 아름다움과 연결입니다. 

아름다운 디자인 안에 의미를 담아,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연결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저는 제 일을 ‘돕는 친구’의 자리에서 하고 싶습니다. 디자인 작업을 하며 고객이 추진하는 음악회나 학교 행사, 기관의 프로젝트가 좋은 결실을 맺도록 곁에서 함께하려고 합니다. 진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돕다 보면, 고객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제안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일하다 보면 관계가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깊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일을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고 싶습니다. 시안이 거절당했을 때 “또 거절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일이 미궁에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반대로 담당자의 시각과 마음으로 이 일을 사랑하기로 방향을 바꾸었을 때,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고 일도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고객의 요구 앞에서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짜증이 날 때, 정오에 드리는 기도가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 저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지어졌습니다. 남은 하루가 질서 있게 흐르도록 이끄셔서, 예수님이 제게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저녁 기도가 하루를 정리해 줍니다. 저녁 기도는 저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는 존재’로 다시 자리 잡게 합니다. 아침에 컴퓨터부터 켜고 싶어질 때에는 아침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성령의 임재를 위해 지어진 존재입니다. 오늘 행하는 모든 일에 성령님과 함께 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6. 교회/신앙 공동체가 일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어떤 영향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 일에 대한 저의 태도는 고유한 독특성과 취약성, 그리고 존재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어 왔기에, 그 영향은 제 삶과 일에 있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깊은 교제는 저의 고유성을 발견하게 했고, 동시에 취약성도 드러나게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움과 연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대안적인 삶의 방식, 그리고 사랑으로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 방식 역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배우고 훈련받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잠에서 깨고, 음식을 먹고,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모든 평범한 일상이 거룩한 예전이 될 수 있다는 일상 신학을 배웠습니다. 이 신학은 책을 통해서뿐 아니라, 신앙의 형제, 자매들과의 삶을 통해 배우고 살아내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움은 제 일의 태도와 일상의 리듬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7. 위의 여섯 가지 질문에 답하며 떠오른 생각이나 개인적 느낌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여섯 가지 질문에 답하며, 시간에 쫓겨 급하게 쓰고 있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과정이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글을 쓰며 돌아보니, 제가 디자인을 하게 된 시간들에도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이 있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람들을 돕고, 그 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 자체가 제 일과 삶을 다시 하나님 앞에 올려놓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Seidman(2006)이 제시한 심층면접의 구조(생애사적 질문/현재의 경험/의미에 대한 숙고)를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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