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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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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7-03-1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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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5
 

21세기를 위한 평신도신학:성경적 관점에서 본 소명, 일, 사역
제2부 하나님이 부르시고 구비시키신 백성
제5장 주님의 일을 하는 것
일의 정의-금전적 보상이 있든 없든, 정신적, 정서적 혹은 신체적 에너지, 또는 이 세가지가 모두 소요되는 목적 지향적 활동(폴 스티븐스)

1.일에서의 변화
생존문화에서 정체성 문화로-이제는 누구든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은 정체성 확립의 일차적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터에서의 변화
세계화된 일터
도시화, 기술화등으로 변화의 속도가 빠름
일터는 이제 더 이상 고정된 장소가 아님-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는 연결네트워크의 개념으로 바뀜-일중독조장
일이 삶의 구석구석에 침입하는 전 포괄적인 환경이 되어 버림
구조적 실업의 문제-성경에서 충분히 내다보지 못한 사안임-일의 신학은 구조의 문제와 악마적 권세의 문제를 다루어야 함
은퇴의 문제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이슈들
신자들은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기로 헌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직업들을 높이 받드는 경향, 그래서 기독교적 가치에 따라 순서를 매기는 경향이 있음-왜 이런일이 생겼는가?
2. 일의 어제와 오늘
그리스도인의 일의 신학은 다양한 근원에 의한 거, 종종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사상사로부터 무의식적으로 흡수한 것임
고대세계
고대헬라세계는 일을 멸시, 일은 저주요 순전한 악,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운, 일이 없는 사람은 관조적 삶, 정치 즐김. 노동자 예수는 헬라인들에게는 걸림돌, 어리석음이었을 것임
그이후의 발전
헬라인의 견해가 기독교화된 형태로 중세교회에 유입됨-현세적 신체적 필요를 채워주는 생산직은 영구적 가치가 없고 대조적으로 관조적인 삶은 영원을 위한 삶으로서 수도원 생활에서 성취됨
르네상스 이후-중세의 수도원주의의 상하 이층의 영성에 대한 반발로 관조에 대한 이해가 역전-예술가가 궁극적인 일군, 우리 삶의 자리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섭리하셔서 있게 하신곳에서 하는 일이 우리의 기독교적 소명이다.
현대세계와 포스트모던 세계
산업혁명-일과 가정과 교회의 통합이 분열됨, 일을 제도화시킴으로 돈을 위해 일하도록 함
소명이후시대의 일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미친 두 사상가-마르크스와 프로이트-손수 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를 묵상함으로 성취감을 찾아야(마르크스), 비극적인 필연 쾌락이 일차적 추구의 목표(프로이트)
역사적 추세와 그리스도인이 지닌 태도 사이의 연관성
사회에서 하는 일은 내재적인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사역이라는 일은 영원한 것으로 남는다(헬라이원론)
전임목회사역이나 선교사역은 소명주으이 소명이다.(중세 수도원주의)
육체노동과 수공은 '창조적'일과 종교적 일보다 열등하다(르네상스).
우리는 각자의 일상적인 일 가운데서 개인적인 성취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마르크스, 르네상스식 인간의 자율성, 포스트모던적인 인간이 가진 개인주의와 사생활주의)
3. 성경에서 말하는 일
일꾼이신 하나님-말씀하시고, 모양을 꾸미시고, 고안하시고, 만드시고, 조각하시는 하나님
성경에 나타난 은유들-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 사이에 의미상 호응관계가 있음을 시사, 우리의 일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연계점이요 의미와 영성의 근원임
일꾼(창1-2장, 욥10:3-12, 시139:13-16), 건설자/건축가(잠8:27-31), 교사(마7:28-29), 작곡가와 연주자(신 31:19), 금송공(사1:24-26), 의류제조자,의상담담자(욥29:14),토기장이(사31:9),농부(호10:11), 목자(시23:1-4) 장막만드는 자, 야영자(욥9:8).
축복이자 저주인 인간의 일
일은 좋은 것, 창조 세계를 의해, 우리 이웃을 위해, 우리를 위해 좋은 것, 하지만 일은 제한된 것, 인간은 쉬도록 창조됨, 일이 전부가 아님(창1,2장)
인간의 죄로 인해 일이 저주를 받음(창3장)-땀,고역, 지루함, 무익함 무의미성, 불의가 생겨남, 타락한 구조와 권세들이 어떤 일들은 비인간화시키고, 구조적인 실업을 야기시키고 일중독적 생활방식을 강요함
그리스도안에서의 구속-일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추어 봄으로써 일상적인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통하여 우리 일에 실질적인 치유를 가져옴. 이미와 아직속에서 마지막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일과 더불어 씨름해야...
구약에서의 일-야곱의 이야기(창29-31 일하는 사람), 사울이 왕이 된후 쟁기를 잡고 일함(삼상11:5)..성경에서 육체노동을 평가절하하거나 '창조적인 일'을 육체노동보다 격상시키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과 함께 하지 않는 일은 다르게 취급한다.(잠, 지혜서등)
신약에서의 일
일꾼이신 예수님-tekton(기능공, 목수 혹은 석공) "일꾼의 작업복은 하나님에게 어울리는 옷인데, 이는 성경의 계시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일꾼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알란 리처드슨)
서신서가운데 소위 직업에 관한 단락들-하나님나라의 일이 그리스도에게 중요한 일상적인 일을 면제시켜주지 않음
종말론적인 관점-새하늘과 새땅에서는 상급이 유업으로 주어질 뿐 아니라 더 많은 일이 있을 것
4. 하나님의 일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적 이해에 초점을 맞츰
합법적인 인간의 일(보수를 받거나 받지 않거나)은 예외없이 어떤 차원에서든 하나님의 일을 반영한다. 삼위일체의 포관적 관점을 통해 신자들은 하나님의 일의 충만한 차원으로 진입하게 됨
성부의 일:청지기직
하나님을 좇아 창조세계를 개발하고 가꾸는 일들을 하도록 피조물에게 능력을 부여하심(창1장 2장의 문화명령)-동물을 기르는 것에서부터 핵 물리학에 이르는, 가정일에서부터 회계에 이르는,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를 번창하게 하는 모든 방법이 포함됨
성자의 일:하나님 나라의 사역
그리스도인은 두가지 의미에서 일하는 셈, 창조세계의 청지기직에 행당하는 성부의 일과 복음의 증진에 해당하는 성자의 일-일상적인 직업을 접어두라는 부름도 있지만, 그리고 재정후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 사도들과 장로들이 있었지만 후원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 신자는 분명히 일상적인 일을 해서 자비량을 하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성령의 일:은사와 능력부여
Miroslav Volf-모든 소명을 세속화하는 루터의 경직된 일에 대한 소명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성령의 일에 기초한 카리스마적 접근을 제안, "일 가운데 하나님과 협동작업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세상변혁 작업을 미리 앞당겨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카리스마)는 교회의 활동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모든 기독교적 활동의 카리스마적 성격, 과거 구약의 브살렐과 다윗과 같은 숙련된 일꾼에게 성령이 부어진 것이 이제 모든 신자의 유업이 되었다.
성령의 열매-성령을 좇아 사는 것은 단순히 영성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염두에 둔 것, 육신의 일과 성령의 열매 목록은 두가지 방식으로 일하는 모습을 뚜렷이 대조시키고 있다. 전자는 교만하고 자율적이며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반면, 후자는 남을 세워 주고 언약에 의거하며, 사랑이 담긴 것이다.
성화의 문제- 초대교부들, 수도원전통에서 일은 영적인 훈련이요 참회의 훈련, 일에 대한 핵심적 관점을 아니더라도  정당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은 제조하는일, 유지하는 일, 사랑의 일, 회복시키는 일, 복음사역, 인도하는 일등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하는것인가? 하나님의 모든 백성(라오스)과 아직 신자가 되지 못한 대부부의 사람들(그들이 알지 못한 채)이 한다. 하나님의 일은 어디서 행해지는가? 교회와 세상에서, 후자에는 물리적인 창조세계, 가정, 사회, 공동체, 정치, 문화, 교육, 재정문야, 우리가 제작하고 고치는 모든 '세계들'이 포함된다. 왜 우리는 일해야 하는가? 성경의 답은 이렇다. 하나님이 세계를 새 하늘과 새땅에서 궁극적인 완성점에 도달하게 하시는 동안,우리를 동역자로 초청하여 그분과 교통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일은 하나의 의무이자 하나님을 닮은 활동이다."(149-150)
5.일은 좋은 것이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나님이 창조작업을 끝내시고
일의 외향적인 가치-생산하는 것(돈, 가족부양)으로 인해 일은 선한 것
일의 내향적인 가치-그 자체로 일은 선한 것
"사회가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것을 권장하지 않는 그런 곳에서, 우리는 이 과업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즉 하나님의 세계가 돌아가게 하는 한 부분으로 간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재적으로 일은 우리에게 선한 것이고, 세계에도 선한 것이며, 하나님께도 선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교회가 가장 소홀히 해 온 구비사역의 하나이며,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역 중 하나다."(150)
세계를 위해 좋은 일
최초의 명령에는 온갖 종류의 만들기가 다 포함 되어 있다.(창1:26-28)-이런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느냐 않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님, 그저 세계를 위해 좋은 것이다.
이웃을 위해 좋은 일
일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게 해 준다. 일은 실제적인 방법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우리를 위해 좋은 일
일의 치료적 가치-"일은 육신의 탐닉과 게으름을 막는 치료제"(본회퍼)
이생에서 일은 우리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놀라운 길, 일은 치료의 매개체이므로 유급무급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최후의 일터는 새하늘과 새땅 거기서 우리는 영원히 일하게 될 것이다.

평일의 신학을 위한 기도(평일신학의 기도)를 이번 과에 맞추어 만들어 보고 함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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