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 3. 경쟁의 어두운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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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작성일 11-07-01 11:48본문
[TGIM 부산대․금정점] / 요약 : 정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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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IVP, 1998
3. 경쟁의 어두운 면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 경쟁이 사람들의 노력을 부추겨 뛰어난 성과를 이뤄지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가 경쟁 문화 속에서 완전히 빠져 나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그러나 경쟁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위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 강력한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 사회에 관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 두어야 할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경쟁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 자기 정체성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많은 경우,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분명히 드러난다. 또 다른 종류의 경쟁에서는, 승자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고 다소 상대적 개념인 선두 주자 문제가 대두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종류의 경쟁도 있다. 자기 자신과 경쟁할 때에는 나의 승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패배, 실패, 열등감은 정말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멋진 패자란 그런 패배감을 다스리거나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낙심이나 패배감을 잘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 자아상이 낮은 이들이 경쟁에서 지면 그 상처는 대단히 파괴적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실패에 개의치 않을 수 있다고 해서 남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패배했을 경우 심각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승패 경합 문화에 대한 참여를 옹호하면서 패배의 경험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유익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승패 경합 문화의 신학”이라는 기사에서, 카네기 사무엘 캘리안은 패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주된 유익들에 대해 논한다. “패배는 우리에게 자신의 한계성을 상기시켜 주므로 가치 있는 경험이다.” 그것은 “우리의 목표와 기회들을 재검토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패배는 우리의 삶이 구속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수 있다.” “우리는 실패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심오한 깊이에 대해 무언가 배울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패배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한계성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일부러 져야하는가, 지는 것이 우리를 위해 좋다면 상대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이겨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승자/패자’라는 용어 사용에 반발한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다 승자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비록 경합 자체는 승자와 패자를 가린다 해도, 사실상 어느 쪽도 ‘패자’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는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또 한번의 실패 경험은 파괴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승패 경합 상황에 참여하기를 거부해야 하는가? 이는 어려운 문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를 꺾는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는 극단적 자세로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승패 경합은 어떤 지점을 넘으면 분명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시작한다.
승패가 갈리는 유형의 경쟁이 상대에게 파괴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할 때, 정해진 종료 시점이 없는 유형의 경쟁은 파괴적 영향이 덜한가? 사실 정해진 종결점이 없는 유형의 경쟁도 대단히 파괴적일 수 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정해진 종결점이 없는 경쟁은 어떠한가? 끊임없이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등급을 매기는 제도 속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자신을 하류로 전락시키는 학교의 등급 제도로 인해 잠재력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렇듯 승패가 갈리는 경쟁이든 일정한 종결점이 없는 경쟁이든,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실패하는 이들은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
최악의 경우, 경쟁은 우리에게서 자존감과 품위를 앗아갈 수 있다. 경쟁시에 상대방을 증오하도록 교육받은 사람은 삶의 다른 영역이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상대를 향해 증오심을 품게 된다. 경쟁으로 인해 잔인성과 증오심이 양산될 수도 있다. 부정한 방법에 빠지려는 유혹도 있을 수 있다. 필요 이상의 욕심을 경쟁은 부추기기도 한다. 경쟁을 동기로 하는 자긍심은 낮은 자존감을 향상시켜 줄 수도 있지만 오만이 되기도 한다.
만일 내가 최고라면, 하나님은 무엇이 되는가? 나의 나 된 것이 다 내 덕분이라면, 창조주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인가? 내 성공이 다 내 기술과 인내심 덕분이라면, 하나님의 덕은 없단 말인가?
경쟁활동은 탁월성, 자신감, 리더십 등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의 위험성은 자주 간과된다. 만일 경쟁이 참여하는 사람들 속에 폭력, 증오심, 부정직, 욕심, 오만함 등을 조장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면, 경쟁에는 분명 위험한 면이 있는 것이다.
자기 정체성
경쟁은 우리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를 하나님 편에서 주도적으로 시작하셨다는 신학적 입장을 취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고 아버지이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우리의 ‘형제요 자매들’이다. 이런 관계를 얻기 위해 우리 인간들 편에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도 없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관계적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경쟁 사회에서는, 우리의 정체성의 기초는 우리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있다. 경쟁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형성되고,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의 가치는 경쟁에서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경쟁 사회의 가장 주된 위험은 우리 사회의 가치 척도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흐려지고 또 궁극적으로 파괴될 수 있다는데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경쟁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그분의 나라에서 그녀의 아들들이 각각 그분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세 공관 복음서는 또한 제자들이 서로 누가 제일 으뜸인가를 두고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님은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눅9:4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경쟁적인 사회에서 사시고 활동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경쟁의 세력에 구속받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경쟁이라는 초인간적 세력이 막강한 세를 과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의 지배를 받거나 노예가 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중대한 질문이 남아 있다.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정당한 방법은 반드시 어떤 공로가 있어야 한다는 세속 철학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아무 공로 없는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자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의 기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울 수 있을까?
경쟁은 사람들을 폭력, 증오, 욕심, 부정직, 오만한 자만심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들에게 사랑할 자유, 평안하고 만족하며 베풀며 검소한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 준다. 경쟁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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