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하나님의 세계 - 제2장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2-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한신 작성일 08-02-28 17:05본문
TGIM(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부산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2006년 6월 5일 / 부산대 법학연구소
현실, 하나님의 세계
제2장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1)
▲ 역사의 동네 탐험하기
우리는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을 역사의 잔해들을 주우며 청소하는데 보내고 있다. 역사는 대부분 우리가 망쳐놓은 일들-폭력, 전쟁, 기근, 증오,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특히 역사상 가장 두드러지는 사건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다.
역사가 가져다주는 고통과 실망과 고난에 대한 최후의 판결은 죽음이다. 우리는 죽는다.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비탄에 잠기는 것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며 우리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직감을 입증하는 것이다. 죽음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 케리그마 :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은 역사의 실재와 책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제공해 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저분한 역사 속에서 예수님도 사셨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그 역사를 받아들이셨다는 것이다. 그러한 받아들임 때문에 예수님은 엄청한 고통을 당하셨고 괴로운 죽음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원사역을 수행하시는 장으로서 역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오랜 전통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태어나셨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성경 저자들에게 세속 역사란 없었다. 세상에서 일어나 모든 일은, 하나님이 편만하게 계시는 세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즉 하나님이 이 세상에, 그들의 공동체 안에 그리고 그들 안에 인격적으로 살아계시고 활동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과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참여하는데 열중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언제 어디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시며,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구체적인 사람을 불러 도전하시고, 믿고 순종하게 하시고, 예배의 공동체로 부르시고, 자신의 사랑과 연민을 보이시고,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셨다.
하나님은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고 관리할 수 있는 창조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예배하거나 반항해야 할 인격, 믿거나 거부해야 할 인격, 사랑하거나 미워해야 할 인격이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역사의 지저분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근원적 실재가 되는 장인 역사 속에 우리를 끼워넣는 사고 방식을 습득해야 한다. 역사에 흠뻑 적셔서 성경의 페이지들을 읽으면서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그런 사고방식을 습득하게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사용하셔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그분의 구원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생물학적인 것 이상의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대면해야 하며, 역사적 장에 계시는 하나님을 대면해야 한다.
성경은 도덕 규칙이나 교리체계가 아니라 역사의 장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초대하는 식으로 쓰여졌다. 그 이야기는 세부내용도 결코 속이려 들지 않는다. 그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도덕적, 영적 상태에 있건 우리와 일하실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그럴듯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최고의 일들을 이루신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 성경적인 방식을 회피하는 통상적 우회로
- 역사에 위협당하는 것/ 역사를 착취하는 것
1) 위협
역사는 늘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강력한 힘, 즉 강력한 정치가, 강력한 군대, 강력한 재정가 등의 지배를 받아왔던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는 소박하게 살면서 가정적인 안락함에 만족하고, 주변으로 물러나 ‘세상’으로부터 가능한 최소한의 간섭만을 받으면서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게토를 만드는 유혹을 받기 쉽다. 또한 자신의 내면 생활의 사적 측면과 가정적 측면에서만 하나님이 관여하고 계신다고 인식하기 쉽다.
2) 착취
역사를 움직이고 흔드는 사람들은 권력과 폭력, 신분과 지위, 돈과 영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때문에 역사의 실재와 상관이 있으려면 그 역사의 방식대로 거기에 가담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기 쉽다. ‘그 역사의 방식대로’라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기도와 예배가 없는, 용서와 사랑이 없는, 정의와 은혜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3) 제3의 선택
우리는 예수님의 방식대로, 복음의 방식대로 역사에 들어가고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역사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장으로 보게 하는, 여러 세기에 걸쳐서 이어진 성경 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방식 말이다.
○ 예수님의 죽음
‘생명’이라는 말이 창조 속에 짜 넣어진 주제어라면, ‘죽음’은 역사의 주제어이다. 고난과 죽음은 구원의 필요에 주의를 집중하라고 모든 역사 속에서 외치는 인간의 목소리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이 구원의 수단을 말하는 결정적인 역사적 선언이다. 또한 우리의 고난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맥락 속에서 제시되고, 그리스도의 고난은 끈질기게 우리의 고난과 나란히 제시된다. 예수님의 죽음과 나의 죽음의 연결은 내가 구원을 이해하고 구원을 받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최악의 것인 고난과 죽음으로 구원은 형성된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 살고 싶다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면,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 생명으로 받고 싶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정체성을 갖고 싶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지저분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가 구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 위협 : 도덕주의
기독 공동체에 속한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회피하거나 주변화하는데 사용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안전하고, 위험이 없고, 죄책이 없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태도를 가지도록 교육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정말 눈부시게 좋아질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일단 이것을 이 세상의 잘못된 것을 다루는 기본적 방침으로 정하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그리고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주의(moralism)는 구원의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삶을 꾸려 가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주의는 인간의 능력을 기반으로 일을 처리하고, 나의 좋은 행실이 징벌이나 재난을 막아주는 보장이 되도록 인생을 조정한다. 도덕주의는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이용한다. 도덕주의는 밖에서부터 작동한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바른 생활을 지우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유도 없고 기쁨도 없다.(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단지 모든 사람이 좋은 행실을 가지도록 강요하거나 조절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구원이 필요없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과 훈련이 되고, 정치적 개혁과 문화적 르네상스, 더 강력한 군대, 더 많은 정보와 권력이 필요하게 된다.
▲ 근거본문(1) : 출애굽기
역사에서 펼치시는 예수님의 놀이를 가장 간결하게 특징짓는 유일한 단어가 ‘구원’이다. 구원의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구원의 이야기를 회복해야 한다.
출애굽기는 모든 세대 속에 나타나는 거룩한 구원 활동의 양상을 보여주는 계시이다.
○ 구원의 배경
구원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조건, 모든 가능성이 등을 돌린 조건 속에서 시작된다. 역사의 막다른 골목에 왔을 때 우리의 상상력은 사회적, 정치적 전략, 혹은 치료적 전략과 같은 방해물 없이 자유롭게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또한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에 참여하는 성경적 방식에서 세계의 지도자들은 역사의 조연에 불과하고, 평범한 이들, 주변인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무력한 이들이 구원에 사용된다. 이것은 구원이 하나님(예수님)의 일이며, 구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를 넘어서는 신비임을 알려준다.
하나님
구원 이야기의 핵심적이고도 최우선적인 초점을 하나님이다. 구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하나님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를 위해서 해주시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 일을 우리의 지시나 선호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신다. 하나님은 타이밍에 관해 우리와 상의하지 않으신다.
○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이 그분의 구원 사역을 하시는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부재를 통해 하나님을 일차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의 부재는 구원 이야기의 일부이며,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에서 예외적인 것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심판도 아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정상적인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서 그러한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나,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셔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던 그 순간에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기도를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부재는 우리가 구원에 동참할 때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것임이 입증되었다.
구원이라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한 증언들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이는 안락함과 좋은 기분의 욕구를 채워줄 신을 사러 다니는 우리의 소비주의적인 성향으로 미뤄볼 때 필요한 경험이다. “그의 길을 찾지 못할”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전능의 하나님을 내 요구에 언제든지 응하는 신으로 축소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 하나님의 임재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라는 말은 우리가 받은 계시 중에서 가장 명쾌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계시다.(YHWH)
이러한 계시에 응답하면서 구원의 거대한 역사적 드라마에 동참하는 증인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 구원은 그것에 반대되는 모든 삶의 양식에 도전하고, 그것을 궁극적으로 소멸해 버린다. 구원에 반대되는 삶이란 세상의 정사와 권세이며, 예수님이 사탄과 거래하기를 거절하셨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언급된 이 이름은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 즉 이 곳에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계시하는 말이 되었다. 이는 생명을 주시는 야웨, 임재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귀신 축출
기독교 영성은 역사의 장에는 오직 한 가지 게임 밖에 없으며, 그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신 놀이터에서, 그리스도께서 놀이하시는 장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출애굽 역사에서 열가지 재앙은 악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히브리인들의 생각에서 악에 대한 모든 부러움 섞인 동경을 씻어 내고, 악이 사람들에게 힘을 행사하며 사용하는 모든 신에 대한 환상 혹은 신을 자처하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즉 열가지 재앙이라는 귀신 축출의 드라마는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계시된 실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생각을 정화하고 구원의 세계에서 살 수 있도록 영혼에 힘을 주어, 실재를 이해하는 이집트식 방식으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특히 이 열가지 재앙의 쟁점은 주권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가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것이 사기이며 거짓임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이라기 보다는 주권을 주장하는 바로를 불신임하고, 대신 그 자리에 야웨의 주권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열가지 재앙은 구원의 준비에서 구원의 성취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의 말씀을 듣고 섭리와 축복의 세상을 깨달으며, 자유로운 순종과 즐거운 예배의 삶을 살도록 자유롭고 훈련된 상상을 발휘하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우리에게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귀의 달콤하고 안락한 환상을 뚫고 철저하고 까다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깨끗한 영혼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도 성전 청결 사건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청소하시고 그들의 상상을 깨끗하게 하신 일을 행하셨다.
< 일상생활의 영성을 위한 기도문을 작성해 보자.>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