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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하이벨스 등, 크고자 하면 낮아져야 합니다, 기쁨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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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6,499 회
작성일 08-04-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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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부산대앞 모임] 2008년 4월 15일 화요일 / 정리 : 정한신

빌 하이벨스 등, 크고자 하면 낮아져야 합니다, IVP

기 쁨

12. 보상인가 선물인가

한 때 명확하고 성취가능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점차 신기루가 되었다. 1950년대에만 해도 적당한 집과 직장과 가정생활의 안정이라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라는 합의가 있었다. 운이나 머리가 없어도 아메리칸 드림은 별로 복잡하지 않고 성취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거의 엄두를 못 낼 만큼 비싸졌다. 그 꿈을 이루려면 더 이상 적당한 노력으로는 안 되고 살벌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사기 위해 돈을 벌려면하나님, 가정, 여가 등에 대한 헌신은 소유물이라는 우상에 희생되어야 했다.

성공의 이야기들

비참한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안위와 쾌락과 권력과 안전을 추구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결국 형언할 수 없는 소외감과 무력감과 불안감을 느끼며 후회와 고통에 빠져든다. ‘성공의 숨은 비용’ 때문에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이다.

또한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할 기회조차 막혔던 사람들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TV를 통해 주입되는 성공 이미지로 자신이 아닌 모든 것으로 스스로를 채우거나 뒷골목에서 칼이나 총을 휘두르고 있다.

피해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위로 올라가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타고난 욕망이 그것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마음은 자연히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높이는 쪽으로 흘러간다. 개인의 안위와 안전은 너무나 중요해 보여서 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거의 없다.

불시에 찾아오는 기쁨

이제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관계와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양쪽 다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관계가 소유물보다 우선시될 때마다 개인과 사회는 유익을 얻는다. 그러나 우선순위의 새로운 조정은 마음의 변화가 선행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본질상 이것은 동기의 문제다. 개개인의 욕망은 여전히 기쁨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가 기쁨을 찾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저 기쁨을 얻고자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면 그것은 교묘한 이기심이 아닌가? 그리고 섬김이 곤란과 불편과 고통을 야기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섬길 것인가? 우리의 섬김을 받는 사람이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하나님이 순전하고 사심없는 섬김에 기쁨을 보상으로 주심을 알지만, 보상을 바라고 섬기면 기쁨을 놓친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일부러 얻으려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기쁨의 역설이다.

기쁨 곧 예수님이 약속하신 깊고 지속적인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불시에 찾아온다. 기쁨이 찾아오는 때는 우리가 숨을 쉴 때마다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려고 노력할 때다.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우리의 목숨을 버릴 때,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사심 없이 살아갈 때다.

이제 ‘내 뜻이 이루어지이다’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로 동기가 바뀌어야 한다. 기꺼이 내려가려는 마음, 사랑함으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에서 동기가 흘러나와야 한다.

공격적인 기쁨

기쁨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려면 정의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우리는 기쁨을 고통, 배고픔, 불편, 지루함의 부재로 정의할 때가 많다. 기쁨을 이렇게 정의하면 우리의 시간은 방벽을 쌓는 데 거의 다 들어가게 된다. 불편을 피하는 것이 최고의 우선순위가 된다. 깊은 관계는 상처를 부를 수 있고, 모험은 재산을 낳을 수 있고, 잘못의 지적은 수고의 가치가 없고, 믿음과 기타 보이지 않는 것들은 망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쁨을 고통의 회피로 보면 방벽이 필요한데, 아무리 잘 쌓았더라도 방벽이란 나쁜 것들뿐 아니라 좋은 것들까지도 막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관계에 데었다고 하자. 그 고통 때문에 우리는 방벽을 쌓는다. 우리는 안전하고 고통이 없지만 동시에 더 이상 교제도 없고, 웃음도 없고, 비밀을 나누는 일도 없다. 사랑이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성경은 그렇게 조심조심하지 않는다. 기쁨의 정의에 대하여 성경에는 야성이 있다. 성경적 관점에서 기쁨은 방어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적이다. 방벽을 허물어야 한다. 우리는 안전한 구석에 숨기는커녕 삶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삶이 내놓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풍성한 삶은 풍성한 체험을 요한다.

기쁨의 긍정적 정의에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우리가 죄많은 세상에 살다보니 풍성한 삶의 체험은 곧 고통과 실패의 체험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도 여전히 기쁨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분이 말씀하신 기쁨은 달랐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기적인 욕망과 충동을 채우는 것과는 거의 무관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기쁨과 쾌락을 혼동하고 있을 때에 헌신과 목적과 훈련으로 초지일관 험한 길을 가셨고, 결국 십자가 너머에 가장 큰 기쁨이 있음을 아셨다.

커다란 꿈

기쁨이란 오란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려는 예수님의 헌신은 위탁의 몸짓이었다. 그분은 자신을 하나님의 보호에 위탁하셨다. 상황, 감정의 깊이, 방해 등과 무관하게 하나님이 자신의 필요를 채우실 것을 믿고서 말이다. 어떤 역경에도, 심지어 죄의 악한 야수인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믿었다. 예수님은 신뢰하셨다. 그저자 기쁨이 선물로 왔다.

예수님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자들의 작고 시시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사랑한다는 혁명적인 꿈을 마음껏 꾸셨다. 그분은 노예된 자들을 자유케 하셨고, 병자를 치유하셨고,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셨다. 자신의 삶을 잃음으로서-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진정으로 잃음으로써-그분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삶을 얻으셨다. 그리고 요동치 않는 기쁨과 마주치셨다.

당신의 꿈은 얼마나 큰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별 볼 일 없고 이기적이고 불운한 꿈인가? 성경은 무모한 꿈들의 책이며 하나님의 비상한 꿈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불시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러한 꿈이다.

13. 존과 그웬 틴덜 : 깨어진 마음으로 받는 기쁨

< 일상생활의 영성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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