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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롤하이저,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6장 인간의 유한성, 죽음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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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6,659 회
작성일 12-04-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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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롤하이저,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 포이에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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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간의 유한성, 죽음과 부활

- 모태에서 모태로,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로

 

훌륭한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네. 우리는 자신이 죽는 방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네. 죽음이 실패가 될 뿐이라는 생각으로 삶에 집착하는 태도와, 우리가 희망의 근원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질 수 있도록 삶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태도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네... 그러니 죽음 앞에서 던져야 할 진정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을까또는 내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네. 오히려 내가 어떻게 살아야만 나중에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들 가운데 열매 맺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네. 그런 질문을 대하면 우리는 행위에서 존재로 관심을 옮기게 되지. 우리 행위는 성공을 불러오지만, 우리 존재는 열매를 맺는다네.

- 헨리 나우웬,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IVP)

 

어느 노수도사의 질문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무엇이 되었든(질병이 아닌 한) 그 일이 지금 이 땅의 삶과 우리를 격리하거나 소외시키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격리는 결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맞다. 죽음을 준비하려면(그리스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음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으려면) 삶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야 한다.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진정한 삶을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존 셰어에 따르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 마음을 사랑에 대고 활짝 여는 것이다. 태생적 편협함과 차별을 극복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폭넓게 사랑함으로써 죽음을 준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을 향해 더 넓고 깊이 관여하는 것이 곧 죽음에 대비하는 길이다.

존 포웰은 우리가 깊이 사랑함으로써, 특히 서로 간에 애정과 감사를 표현함으로써 죽음에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 값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을 예수님은 칭찬하신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14:8) 이 말씀은 다음 뜻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 삶을 온전히 맛보고 있기에, 죽음을 덜 힘겹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충만히 살아 있는 삶을 경험한 사람은 죽음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충만한 삶을 삶으로써 죽음을 준비하십시오. 더 깊이, 차별 없이, 더 많이 감사하면서 사랑하십시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바로 오늘, 사랑한다고 고백하세요.”

 

찰나의 아름다움

때 이른 죽음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다. 한 생명의 불이 꺼지고, 그와의 영원한 이별은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 그 영원한 단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신앙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어머어마한 죽음의 고통을 견디기는 힘들다. 모든 죽음이 그렇지만, 특히 젊은 사람이 죽으면 그 고통이 배가된다.

생명은 짧고, 우리 몸의 힘과 건강과 아름다움도 잠시 반짝할 뿐이다.

하지만 자연에서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보시고 영원한 책에 기록하지 않고서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언젠가 그 책이 모든 숨겨진 비밀을 밝히 드러낼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시들어 죽고,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 눈물은 진정한 생명과 아름다움에 바치는 진짜 눈물이다.

불치병 환자들의 죽음

불치병이나 노환으로 죽어가는 사람은 왜 이렇게 큰 고통을 받으면서 굴욕스러운 종말을 맞아야 하는가? 딱 떨어지는 답변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믿음과 경험의 눈으로 보면 죽음의 순간에 사람은 출산과 출생을 동시에 체험하는 것이다. 아기를 낳을 때 출산 직전까지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가, 출산 직후에는 황홀경의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난 같은 불치병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다. 만사에 능동적이고 베풀고 행동하던 분이 죽음을 앞둔 짧은 기간에는 매우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상태가 되어 오히려 다른 사람의 베품과 행동을 받는 위치가 되었다. 다른 사람이 그분께 사역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동산에서 잡히신 후 돌아가실 때까지는 상황이 역전된다. 예수님은 수동성을 의미하는 수난으로 들어가신다(수난을 뜻하는 영어 단어 ‘passion’과 수동성을 뜻하는 ‘passivenes’는 라틴어 ‘passio’에서 나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분께 하는 일을 수용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분의 사역이다.

그리스도가 행위나 사역에서 가장 수동적이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에 우리를 위한 구원 사역을 이루셨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수동적이고 무력한 것처럼 보이는 때에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가장 큰 일을 하신다.

착한 사람들이 고통과 굴욕, 무기력함에 신음하며 힘겹게 죽음을 맞이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도 볼 수 있듯, 죽음 안에 탄생이, 탄생 안에 죽음이, 주는 것 안에 받는 것이, 받는 것 안에 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구속의 신비는 너무 깊어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신비는 우리를 끊임없이 놀라게 하고, 늘 생명을 가져다준다.

 

2의 출생, 죽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통해 새롭고 더욱 온전한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생의 한계를 초월하면 우리가 아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으며, 죽음은 그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에는 우리 상상력이 부족하다. “몸의 부활과 영생을 상상하기는 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에 상상력을 활짝 여는 것, 거룩한 것에 우리 마음을 여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출생을 두려워하는 배 속의 태아와 마찬가지 처지다. 엄마 배 속의 태아처럼, 우리도 현세 너머의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것,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주는 탯줄을 꽉 붙들고, 손아귀 힘을 뺏어갈지도 모르는 것들을 전부 경계한다. 태아가 출생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듯이, 우리는 죽음 이후의 삶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본 죽음은 탄생이다.

뿐만 아니라, 먼저 태어나고 나서야 우리 어머니를 볼 수 있듯이, 먼저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난 이후라야 우리의 진정한 어머니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또 첫 번째 출생과 마찬가지로, 이 두 번째 출생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대면하고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출생과 죽음에는 똑같은 믿음의 행위가 필요하다. 더욱 온전한 삶을, 이생이라는 자궁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의 만남을 신뢰해야만 한다.

 

사랑은 회복력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안다. 모든 죽음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며 이 땅에 계속되기 때문이다. 또 자비는 부활절의 새 생명이다.

부활은 모든 상처와 죽음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해 준다. 부활 때문에 우리는 상처와 죽음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랑의 핵심은 회복력이다.

부활은 우리를 새 생명과 자비, 회복력으로 초대한다. 부활 신앙은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고 상처로 말을 잃어버린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갈 힘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소망이다.

 

성도의 교통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가볍게 넘기기 쉬운 사도신경 대목이다. 성도의 교통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이미 죽은 사람들과도 계속해서 교제하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대화할 수 있다. 죽은 자들과 우리 사이에 여전히 사랑과 가족의 연합이 존재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존재를 느끼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에 풍요로운 신비와 풍성한 은혜, 깊은 위로가 있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이 부분을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정리 : TGIM 울산점 점장 정한신(greenecho7@gmail.com). 2012.4.5.

 

 

< 일상 영성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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