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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예배 : 제10장 우리의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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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1 건 조회 5,542 회
작성일 08-02-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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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패터슨 <일과 예배><?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0장 우리의 일용할 양식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을 바르게 가지라 그리하면 그가 당신을 자주 찾아오시리라. 평일을 주일로 바꾸고 식사를 성찬으로 가정을 성전으로 땅을 천국으로 바꾸라.” - 찰스 헤돈 스펄젼

 

성찬은 성경이 일과 예배에 관하여 말하는 모든 말씀이 함께 모이는 접합점이며 그 말씀들은 떡과 포도주로 구현된다. 이 간단하고 신비한 식사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일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우리의 일을 변혁시켜 주는 예배 행위는 없다. 만약 하나님이 주님의 식탁에서 당신과 생생히 함께 하실 수 있다면 그 분은 당신이 일하는 책상이나 공부하는 곳에서도 당신과 생생하게 함게 하실 것이다.

 

특별한 종류의 기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에서 기념이란 단어(ANAMNESIS)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상의 많은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남네시스속에서 과거의 사물이나 사람이 현재화되는 것, 예수님이 친히 그 자리에 임재하시며, 우리는 그 분을 특별한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떡과 포도주에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다.

 

둘 다 같은 아빠네!

사진속의 아빠와 실제의 아빠를 만난 아이의 울음과 환호

 

신비

기독교의 두 개의 큰 표지인 성찬과 세례는 격전장이 되어 왔다. 우리를 연합시키려 하던 것이 우리를 분열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성찬은 논쟁거리가 아니라 경탄해 마지 않아야 할 신비다.

성찬에 대한 아남네시스의 신비는 하나님이 떡과 포도주라는 평범한 요소안에서 어떻게든 우리를 만나신다는 것...그 충만한 신비는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과 우리의 하는 일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시기로 작정하셨다 사실이다....성찬에서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임재는, 그 분이 창조하신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신비와 그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에서의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신비를 압축해 좋은 것이며 그 예리한 초점인 것이다.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성찬대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 성찬대를 만드는 목공소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성찬은, 우리가 떡과 포도주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이것들이 재배되고 만들어지고 팔리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떡과 포도주를 들에서 시장으로, 다시 성전으로 운송하는 고속도로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성찬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벌어들이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거대한 실재

만일 우리가 일로부터 소외되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먼저 우리가 그 일을 하고 있는 물질적인 피조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물질 세계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 불질과 영혼이 서로 다른 실재라고 말하는 비성경적인 이원론을 버리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좋도록 만드셨으며 그것을 하나의 거대한 실재로 만드셨음을 알아야 한다. 그 실재의 한 부분은 우리의 신체감각들로 볼 수 있고, 다른 부분은 우리의 신체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환원주의와 도피주의

큰 실재나 어떤 의미 혹은 신비의 문제에 이르면 물질적 세계가 전부일 뿐 이라고 이야기하는 자들이 환원주의자라면 도피주의자적 신비주의자들은 물질세계를 어찌하든지 피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특히 성경은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서 육체없는 영원속에 거하는 불멸의 영혼이 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변화된 새 몸을 입고 살아가는 것, 즉 부활에 있음을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 분이 만드신 물질로 탄생시킨 이 육체를 너무나 좋아하셔서 육체를 없애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새롭고 영화롭게 부활시킬 것을 계획하고 계신다.

 

성육신

성경적 우주관에서 성육신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육체와 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현존을 매개시켜 주는 적절한 수단이 되었다. 성육신은 우리가 세계와 우리의 일과 성례와 이들 서로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사용해야 할 패러다임이다. 성육신은 어떻게 거룩함이 평범함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지를, 어떻게 신령한 것이 물질적인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례가 아니라 성례적이다(보이지 않는 실재에 대한 보이는 표징들).

성례에 대한 어거스틴의 정의: 보이지 않는 실재에 대한 보이는 표징

창조, 성육신, 성례전 모두가 성례이다. 예수님의 육체안에서 놀랍고도 독특하게 우리를 만나신 그 하나님이 또한 그가 지으신 세계를 통하여, 성례를 통하여 우리와 만나신다. 창조세계가 성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직업은 그자체가 성례는 아닐지라도 성례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어떤 직업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때, 하나님은 그것에 복을 주시고 그것으로 이 세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

 

우리의 일은 일종의 봉헌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일을 드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Sacramentum은 로마군인이 장군에 절대적 충성을 맹세를 의미하는 데 성찬은 그리스도의 사크라멘툼, 즉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그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서약을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우리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맹세를 다시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Eucharist 감사)

우리는 떡을 나누고 포도주에 잔을 부으면서 “주님 이것이 바로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제자신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봉헌과 성찬예식의 관계-노동의 산물을 들고 성찬대에 놓고 난 후에 그것으로 성찬을 했다. 다시말해서 사람들의 제물이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제물됨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에서 봉헌은 사람들이ㅡ 마음속에 성찬과 거의 무관하게 자리하고 잇다. 많은 경우 봉헌은 기금모금행위, 예배의 신성함을 어쩔 수 없이 뚫고 들어오는 필요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봉헌은 기독교예배에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것이다. 봉헌은 우리의 목숨과 일을 가지고 우리가 해야 할 것에 대한 상징이다. 봉헌은 한 주간 동안 우리가 하는 일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크라멘툼을 포시하는 최고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 주님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상징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일에 대한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신성함

우리가 사랑으로 우리 자신과 일을 드릴 때 그것들이 거룩하고 신성하게 된다.

우리는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성찬대에 우리의 선물을 가지고 간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것들은 복을 받고,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상징으로 먹고 마시도록 우리에게 되돌아 온다. 그리스도가 먼저 하신 그 위대한 사크라멘툼 때문에 우리도 그에게 우리의 사크라멘툼을 드린다. 그때 우리가 드린 바로 그것이 다시 성례, 즉 은혜와 우리 주님과의 교제의 도구가 되어 돌아온다.

우리의 삶과 일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가 성찬의 신비이다.

 

튜브, 신발끈, 합동 사역

튜브신학-일에 대한 수동적인 오류, 인간은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 사용하는 관과 같은 존재이다.

신발끈 신학-내가 신발끈을 잡아당겨서 매기만 하면 되듯이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주실 것이니 가서 그저 그 일을 하면 된다고 하는 일에 대한 능동적인 오류

합동사역(synergy)-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셨다.

 

동역자이지만 동등하지는 않다.

패더랩스키 폴란드 수상과 젓가락행진곡이야기-동역자이지만 동등하지 않은..

하나님이 우리 손으로 이룬 빈약한 일에 다가오셔서 그의 팔로 우리를 감싸시며 그의 두손으로 받으사 그것을 거룩하게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일은 하나님께 사크라멘툼으로서 드려질 때만 거룩해 질 수 있다.

 

제사장 먼저, 왕은 그 다음

먼저 예배를 잘 드리는 법을 배울 때에야만 우리는 일을 잘 할 수 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일과 세상을 봉헌해 드리는 제사장적 직무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왕을 대리하여 다스리는 역할이 나중이다.

성찬에는 인간노동의 신비에 대한 완전한 구현이 존재한다. 성찬은 우리 모두가 얻기 위해 수고해야 하는 빵과 하나님이 선물로서 주시는 빵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연결이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에게 가져가는 바로 그것-그것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셨던 것이다-을 가지고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신다. (축복의 순환의 계속)

 

 

<일상생활의 영성과 신학을 위한 기도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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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PD님의 댓글

김PD 작성일

일과 예배를 쭉 읽으며 그리스도인으로써 힘을 얻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흐름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가운데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참된 소명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살기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오늘 하루를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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