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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세례를 받음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충만함으로 이야기한 지난 칼럼에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이를 '성령충만'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저는 데럴 죤슨이 삼위하나님과의 사귐 이라는 책에서 언급하는 '"관계"와 "균형"을 손꼽고 싶습니다. 이 "관계"와 "균형"은 또한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먼저 "관계"의 문제를 생각해 보지요. 삼위 하나님이 누리시는 관계는 인간의…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이란 책을 함께 읽고 나누면서 삼위일체 신앙이 단순하게 신학적인 사변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전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삼위일체 신앙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건(마28:19)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 역시 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즉 삼위하나님의 실재 속에 잠기는 충만(우리는 이것을 성령충만이라고 부릅니다)속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
지난 주 일상생활사역과 패러다임전환 이라는 워크샵 교안을 만들고 대구 TCF 선생님들과 같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진주에 가서 가칭 '제학문 연구자 모임'과 함께 "일상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감사하게도 진주 경상대 사회학과 강수택 교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좋은 강의로 섬겨 주셨습니다. 두번의 자리를 통해 한가지 일관된 생각거리를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일상이란 무엇인가"세미나를 하면서 철학과 사회학의 영역에서 '일상' 이란 주제는 다분히 근대성과…
사랑의 주님, 오늘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 대하여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 가운데 사랑으로 충만케하여 주소서. 일상생활의 사역이 주님을 따라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임을 깨달을 때마다 주님의 그 마음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우리의 무력감 가운데 주님의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오니 기도하는 순간마다 신실하심으로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동역자들의 삶 가운데에도 주님의 동일한 은혜와 사랑과 인도하심과 복주심이 충만하여 주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매일 새로운 아침을 열어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사역을 위해서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더불어 기도합니다. 첫째는, 오늘 ESF 간사수련회에서 연구소장님의 강의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사역에 관하여 강연을 할 때 소장님께 지혜와 열정을 더하셔서 강의에 참여한 이들이 일상생활사역을 위한 보냄받은 존재감(Missional Identity)를 형성하고, 향후에 선교현장과 공동체를 섬길 때 일상생활사역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필요한 도전과 나눔이 잘 이뤄지도록 인도해 주소서. 둘째는, TGIM 운동을 올해 들어 더욱 확…
일상생활의 신학과 영성 칼럼 6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고백의 의미 와 "은혜의 일상성" 일상생활의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기존의 조직신학적인 틀을 이용하여 일상생활에 대한 신학적 숙고(Theological Reflection)를 하고 있는 중이다. 기존의 신학적 틀이라 함은 신론, 인죄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등으로 이어지는 범주들을 일컫는다. 비록 이 글들이 완벽하고 철저한 조직신학적 기술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시도라도 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
일상생활의 신학과 영성 칼럼 5 죄의 일상성(일상생활의 신학을 위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일상생활의 신학을 구성하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일상의 이슈를 생각한 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재가 일상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는 지 살펴보았다. 이 지점에서 특별히 창조의 신학은 일상생활의 신학을 구성하기 위해 충분히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에 대한 긍정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상의 사물과 공간과 시간을 가치롭게 여기는 태도로 …
일상생활의 신학과 영성 칼럼 4 일상생활의 신학- 인간론적 접근 지난 3번의 칼럼의 글을 통해 일상생활의 신학적 근거를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찾는 노력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창조와 섭리의 성부하나님은 세계의 어느 영역도 그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라는 성자에 대한 진술은 어떻게 영원이 육체속에서 순간과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육신적 세계를 긍정하고 있습니다. 제 삼위인 성령은 신자안에 내주하시는 영인 동시에 세상 어디에나 계시기에 성령충만을 …
일상생활의 신학과 영성 칼럼 3 "성령을 받는 것"그리고 "성령충만"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요즘 어떤 분들은 성령사역, 성령운동이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한 강조는 가깝게는 60년대의 은사운동, 2,30년대의 오순절주의와 부흥운동에서, 그리고 멀게는 초대교회의 몬타누스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강조가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어떤 시대나 강조의 한계에 대한 반동…
일상생활의 신학과 영성 칼럼 2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의 의미를 찾아서 지난 번 첫 번째 칼럼이 제이위이신 성자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역사적 인물 예수를 신앙의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예수는 주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란 말의 의미를 숙고해 보았습니다.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는 육신적 삶, 이생의 삶, 일상생활에 대한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초월하신 영원한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