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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나무와 일상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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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댓글 0 건 조회 6 회
작성일 26-03-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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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상생활사역연구소 미팅에서 요한복음 6:60-71(시냇가에심은나무 진도에 따라)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문득 "이 때문에 제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더 이상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66절)는 말씀을 읽으며 오래전 읽은 비즈니스 서적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구조 조정 정책이 결정되면 시행 전까지 최대한 정보 공개를 늦추라. 정보가 미리 흘러나가면 역량 있는 이들이 가장 먼저 조직을 떠난다. 남은 사람은 이직 역량이 없는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조직이 약화된다." 어쩌면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너무 잘 알아들어서 떠난 게 아니었을까요? 로마를 뒤집고 새로운 권력이 되실 예수님을 여전히 기대하는 무리 중, 그들만이 예수님 말씀이 은유가 아닌 사실임을 알아차렸다고 상상(!)해보았습니다.

상상을 이어갔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낯선 말씀을 들은 그들은 명석한 두뇌로 빠르게 손익 계산을 끝냈습니다. 이 길의 끝에는 찬란한 옥좌도, 정치적 해방도, 떨어질 떡고물도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정확히 간파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이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60절)라고 수군거렸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무얼 말씀하시는지, 그 말씀에 따르면 자기 삶 전체를 내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가장 눈치 빠르고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자들, 능동적으로 자신의 활로를 개척할 줄 아는 역량 있는 엘리트들이 가장 먼저 예수라는 위태로운 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다가올 십자가의 파국을 너무나도 기민하게 읽어낼 수 있는 이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반면 똑똑한 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 덩그러니 남겨진 열두 명의 제자들을 상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67절)라고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는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68절)라고 대답합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이지만, 제 상상 속에선 처절하고 솔직한 무능력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유력한 랍비나 정치 세력에게 갈아탈 재주가 없었습니다. 주님 곁이 아니면 도무지 숨 쉴 곳조차 찾지 못하는, 철저히 무력한 자들만이 남은 것입니다. 능력있는 사람이 하나 남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악마"라고 부르신 가룟 유다가 섞여 있었습니다(70-71절). 예수님의 공동체는 엘리트들의 순결하고 견고한 결사체가 아니라, 눈치가 없어 떠나지도 못하는 우직한 이들과 배신을 잉태한 어두운 영혼이 한데 엉켜 있는 연약함의 전시장과도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65절)고 선언하십니다. 뛰어난 지성과 합리성의 소유자들은 위기 속에서 활로를 기막히게 찾아내지만, 정작 진리의 곁에서는 이탈했습니다. 아무 대안이 없어 빈손으로 서 있는 자들, 자신의 연약함을 끌어안고 덜덜 떠는 이들만이 은혜라는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그 미련한 자리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습니다.

요즘 제 삶을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필사적으로 영리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요. 최근 전쟁의 소식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하메네이와 트럼프 중 누가 더 악한 존재인지, 파편적으로 쏟아지는 국제 정세의 정보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가려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와 세계의 이데올로기를 쪼개어 분석하는 지적 유희에 몰두하면서, 정작 그 전쟁의 폭력 아래에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며 고통받는 구체적인 인간들의 신음 소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머리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느라 쉴 새 없이 회전하지만, 상처 입은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데는 게으릅니다.

우리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했습니다. 곧고 반듯하여 재목으로 쓰기 좋은 나무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 일찌감치 베어져 화려한 기둥이 되거나 값비싼 가구로 팔려 나갑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휘어지고 옹이가 박혀 쓸모없어 보이는 굽은 나무만이 산에 홀로 남아, 마침내 산새들을 품고 비바람을 막아내며 조상의 묘가 있는 선산을 묵묵히 지켜냅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난 유능하고 곧은 나무들과 달리, 열두 제자들은 갈 곳 없는 굽은 나무가 되어 생명의 곁을 지켰습니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 곧고 아름다운 나무 되기를 포기하는게 참 어렵네요. 머리 덜 굴리고, 트렌드에 조금 뒤처지더라도 우직하게 주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세계의 악을 징벌하고 판별하는 거창한 일은 주님의 주권에 겸손히 맡겨두고, 당장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작게라도 시간을 내어주고 필요한 것을 나누는 일에 힘쓰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굽은 나무로 묵묵히 일상에 평화의 그늘을 드리우는 것을 배우고 실천해야겠습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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