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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여는 사연 | 충만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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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217 회
작성일 25-06-3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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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여는 사연

충만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

어떤 모임에서 칼빈의 불관용에 대해 비판하여 관용을 주장했던 카스텔리옹을 통해 오늘 우리 시대 교회의 관용과 비관용의 문제를 다루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토론하는 시간에 신학을 가르치는 두 목회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관용이라는 태도가 낳게 될 비진리 가능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좌중을 소위 칼빈주의에 다시 집중하게 하려고 애를 썼고, 강의를 한 발제자가 문학적인 관점에서 관용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 것이라고 애둘러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 동시대 보통의 목회자들의 안타까운 의식구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참석한 한 교수님은 신앙인으로서도 기독교인들이 역사속에서 보였던 부끄러운 선택들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직시하는 것에 대해 적실성이 있는 강의였다고 평가하셨고, 한 장로님은 일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지금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 관용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게 다가온다고 논평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두 분의 평신도들은 모두 이 주제의 중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논평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소위 신학을 좀 했다고 하는 목회자들의 시각의 차이가 크게 생기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목소리를 주도하는 이들이 목회자들이기 때문에 일반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 우격다짐 식의 확신을 강요하는 논리를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는 내내 피터 엔즈의 <확신의 죄>라는 제목의 책이 생각났습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 공동체인 교회를 지키려는 열망만 강조하면서 세상과 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목회자들의 의견이 오히려 성도들과 교회를, 그리고 복음을 막다른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한 시대를 견인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콘스탄틴적 힘의 논리, 개인적 인격적인 배경의 한계, 동시대 정신에의 함몰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면 신구약 성경의 계시의 빛에서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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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스 라마찬드라는 풀러에서 행한 2023년 Missiology Lecture 에서 변중과 전도를 다루면서 교황 베네딕트16세를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증 두 가지는 교회가 길러낸 성도들(the saints produced by the church)과 그 안에서 개발된 예술(the art that developed within it)" 이라고 했습니다. 명제적 진리 주장이나 교리 체계가 변증의 강력한 수단이 되기 보다 오히려 인간성과 그 인간됨의 반영, 이미지로서의 예술이 복음을 변증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바꾸어 말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키워내는 인간상이 단순히 부정적인 교회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인간상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여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형상이 반영하고 만들어내는 이미지로서의 예술일 때 세상에 무언가를 건넬 수 있을 것입니다. 톰라이트는 기독교가 세상에 무언가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때문이라고 <톰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에서 말했습니다. 왜 정의가 필요한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영성을 추구하는가? 우리는 왜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는가? 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가? 이 정의(진리), 영성, 관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의 문제(1부 한 목소리의 메아리들)는 결국 삼위 하나님(2부 태양을 응시하기)의 형상, 이마고데이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3부 그 분의 형상대로)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 톰 라이트의 결론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를 반영하는 교회 공동체가 길러낸 인간이 세상을 향한 증거, 변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소가 수년전 “충만한 일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각색한 이레니우스의 말, “온전(충만)하게 살아가는 인간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금언이야 말로 이런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하고 견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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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두에 언급한 관용과 불관용의 문제 역시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최악의 빌런조차도 하나님의 형상 이마고데이임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삼위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를 반영하는 공동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관용 혹은 관대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관용하시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9:22), 그를 닮은 우리들도 관용해야 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5).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나 비진리냐의 "확신의 죄"(피터 엔즈의 책 제목)를 넘어서 관용의 태도를 세상에 나타낼 때 오늘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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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 연구소는 지난 6월 한달간 “미션얼성경해석학 튜터링북클럽 2기”를 꾸렸습니다. 목회자와 해외선교사 4분이 함께 하면서 매우 유익한 관점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7월 연구소는 3박 4일간의 퇴수회(retreat)를 가질 예정입니다. 숙소를 제공해 주신 후원자 덕분에 좋은 장소에서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나누는 리트릿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십시일반 후원도 부탁드립니다.

 

평화를 전하며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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