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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978 회
작성일 24-05-0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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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시편 19편 나눔요약 240503

 

순리順理와 역리逆理 에 관한 시편

 

전형적인 오리엔테이션 시편에는 창조를 노래하는 창조시편,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토라시편, 지혜시편등이 속하는 데 19편은 창조시편과 토라시편이 포함된 전형적인 orientation 시편입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 하나님의 영광을 7절부터 11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과 유익을 다채롭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 14절은 이런 창조세계와 말씀에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되는 삶을 시인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늘,” “창공”이라는 공간과 “낮”과 “밤”이라는 시간으로 구성된 피조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영광”“그의 솜씨”“말씀”“지식”“(말)소리”등으로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14절)”을 “드러내고”“알려”주고, “전해”줍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인 하나님의 창조의 이치, 섭리, 순리, 아름다움, 지혜가 “소리”로 표현되어 있으나 마치 수용 데시벨이 달라 어떤 경우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경우에도 스스로 울려 퍼지고 번져나간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시인인 이 지점(4b-6절)에서 “해”를 언급합니다. 피조세계의 한 가지 예를 드는 것일텐데, 특히 고대인들에게 “해”는 피조물 중 으뜸이라,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신으로 떠받드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정해두신 법칙을 따라 운행하는 존재로서 시인이 “해”를 언급하여 묘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고차원의 의도일 것입니다.

 

사실 “해”에 대한 언급이 첫눈에 보기에는 돌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7절 이하 11절까지 주님의 말씀(교훈, 증거, 계명, 법규), 토라에 대한 말씀과 1절에서 6절의 피조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말씀을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5절의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법칙, 순리, 섭리에 순종할 때 마치 “해”가 가지는 감정처럼 표현하는데, 이것이 7절에서 11절까지 주님의 말씀이 주는 유익, 그 말씀을 지키는 자가 가질 수 있는 “푸짐한 상(11절)”이라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생기”“기쁨”“달콤”등으로 표현되는 감정들과 등치됩니다. 해가 하나님의 순리를 순종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는 해와 같은 존재라고 높이는 의도도 있어 보입니다 (cf.마13:34 “그 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피조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이치(일반계시)를 사람들이 알고 유익을 누릴 수 있도록 주신 것이 토라 즉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7절에서 11절은 이 특별계시의 말씀인 토라의 성격을 시인은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완전”“참됨”“정직”“순수”“견고함”“한결같음”“바름”과 같은 추상적 표현만 아니라 금, 순금, 꿀, 송이꿀과 같은 유비적 표현까지 동원하여 말씀의 영광을 찬란하게 노래합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상을,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끔찍한 경고를 하는 것이 신명기의 관점인데 11절이 이 관점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피조세계와 구체적인 토라에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 순리를 거스리는 것이 죄입니다. 해가 하나님의 법칙을 벗어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듯이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 순리, 말씀을 벗어나면 그것이 깨닫지 못하고 지은 것이든 고의로 지은 것이든 그 결과는 끔찍한 것입니다(12-13절).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와 토라의 영광과 완전함에 비추어 마땅한 삶을 간구합니다. 죄를 떠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오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14절).”

 

이 시편을 거꾸로 올라가며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끔찍한 죄악(13절)” 때문에,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 순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기쁨이나 생기가 사라지고, 21세기 피조세계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는 바울의 로마서 8장의 이야기는 정확히 오늘 시편 19편의 반대쪽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시편 19편에서 묘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자녀들 말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자 아닌가요?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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