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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7장 1절 17절 나눔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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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18 회
작성일 25-03-1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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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7장 1절 17절 나눔요약 250314

 

보좌와 광야-출애굽과 144,000명

 

이마에 도장이 찍힌 사람의 수 144,000명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거짓가르침 때문에 온갖 신경이 여기에 다 가버리게 되면 이 본문이 주는 위로와 상상력을 놓쳐 버리게 됩니다. 6장에서 역사의 두루마리의 여섯 봉인을 어린양이 떼시고 인자의 파루시아, 신원의 날을 기다리는 순교자들의 부르짖음과 탄원을 낳는 전쟁과 폭력, 경제적 파국과 죽음의 현실들에 대한 일종의 6막의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이런 역사의 드라마의 흐름 가운데 오래 기다려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7장의 이야기입니다.

 

7장은 두 번의 “After this,” “그 뒤에 나는 보았다”란 구절을 갖고 있는데 묵시문학인 요한계시록을 일종의 드라마 장면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시간의 순서를 이야기 한다기 보다 장면의 변화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절에서 8절까지가 한 장면이고 여기서는 땅의 네 모통의 네 바람(총체적인 파괴 cf.렘49:36)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억지되고 유예됩니다. 에스겔 9장 4절 이하에 의하면 이마에 무엇을 쓰거나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도장의 주인의 소유라는 의미와 함께 죽음과 심판에서 면제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계시록 7장은 일종의 출애굽기의 오마주 드라마 느낌입니다. 그런 점에서 4절에서 8절에 열거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묘사는 심판이 면제된 유월절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결됩니다. 일만이천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묘사하는 숫자(cf.계21:16 만이천스타디온)이며 12지파 12중의 완전한 수의 하나님의 백성이 144,000명입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시고 심판을 면제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에 대한 통치자 하나님의 의지가 8절까지라면 9절이하는 그 통치의 구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도장을 받은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의 구체적인 특성을 9절부터 17절이 보여줍니다.

 

또 한 번 9절에서 장면이 바뀌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를 비롯한 보좌를 둘러싼 존재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찬양과 경배, 예배를 드립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 이들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수 십사만사천명과 같은 이들입니다. 마치 유월절로 심판이 면제되고 출애굽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이유가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데 있었던 것처럼(cf.출5:1-3, 출애굽기의 절반이 예배와 제사를 위한 성막에 대한 서술임),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을 찬양하며(10절) 모든 천사들과 장로와 네 생물의 답가와 같은 찬양을 인도합니다(11-12).

13절부터 요한과 한 장로의 대화는 위 보좌를 둘러싼 예배의 현장에서 일종의 클로즈업된 대화의 장면입니다. 여기서 이 예배하는 새로운(온전한) 출애굽 백성은 어떤 존재인지 그 특성을 자세하게 밝히는 동시에 장로의 입을 통해 이들을 향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호와 축복을 듣습니다.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어린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14절)” 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13절)”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15절상반절).” 이 그림은 출애굽기 후반부에 있는 아론과 제사장들이 의복을 준비하여 회막의 업무를 섬기게 하는 장면을 기억나게 합니다. 15절하반절에서 17절까지의 이야기는 출애굽이후 광야를 다니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샘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던 하나님의 보호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들입니다.

 

설명이 안되는 고난의 시기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묵시는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줄 수 있을까요? 이미 4장과 5장에서 경험했던 보좌의 전망으로 반복하여 독자들을 이끌어서 이 관점에서 자신의 삶과 역사를 보게 만드는 것이 계시록의 패턴입니다. 현실에 매몰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어떻게 하나님의 도장을 받은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지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출애굽을 되새겼던 것처럼 예배하는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보좌의 전망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좌에 있으나 동시에 광야를 걷는 자입니다. 광야가 주는 바람, 해, 열이 있고 주림과 목마름과 눈물이 있을 수 있겠지만 “덮는 장막이 되어 주실” 하나님의 보호를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모호함과 절망스러운 역사 현실 속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광야를 불평하며 걸어갈 것인가? 땅을 바라보고 살 것인가 위에 있는 것, 보좌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cf.골3:1-4)?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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