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엘비스클럽 민수기 8장 1절 26절 나눔 요약
페이지 정보
본문
엘비스클럽 민수기 8장 1절 26절 나눔 요약 251010
비추는 빛, 살아있는 제물
실제로 시내 광야를 떠나서 가나안 땅에 이르는 행군을 하기 전에(cf.10:11-12),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챙겨야 할 사항들을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막을 세우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한 뒤 주님 앞에 각 지파들이 제물을 드려 레위인이 회막일을 위해 쓰도록 하셨는데(7:1-10), 8장에서는 그 레위인을 정결케하고 구별하여 흔들어 드리는 제물(요제)로 바쳐서 제사장에게 드려 제사장을 돕는 직무를 하게 하는 방법과 이유(의의)를 주로 밝힙니다. 그 사이에 1절부터 4절까지에서 잠시 등잔을 밝히는 방식과 만드는 것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네절(23절에서 26절)에는 레위인들의 직무를 수행하는 나이를 밝힙니다.
문체 혹은 장르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법령집 혹은 법령에 대한 시행을 보고하는 보고서 양식인데 이 경우 아무리 사소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하나 하나가 중요하여 놓치지 않고 잘 챙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독자로서는 앞의 네 절의 존재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이 또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앞 7장 89절이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의 그룹사이에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모세가 들었다는 이야기와 8장 1절에서 4절을 연관하여 생각하면 지성소를 환히 밝혀서 맞은 편에 비추는 등잔대의 존재는 이런 교제를 돕는 중요한 역할(청각과 시각의 연결?)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혹은 뒤에 나오는 레위인에 대한 법령이 지성소의 금등잔대에 대한 명령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위해 여기에 이 명령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3장 5절에서 51절까지에서 레위인의 직무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그리고 인구조사가 언급되었는데 다시금 구체적으로 레위인을 데려다가 속죄의 물을 뿌리고 털을 밀고 옷을 빨아 입게하여 정결하게 하고(6-7.21) 번제와 소제(곡식제물)와 속죄제물을 통해 죄를 속하고(8,12,21), 회막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모여 안수를 하여 대표 혹은 대리로 삼은 후(10), 아론과 그의 아들 제사장이 그들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요제, 11,13,15,21,4회 반복)”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주님께 바친 후 요제의 취지대로 제사장이 쓰도록,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그들을 주어 주를 섬기는 일을 맡아 하게(11,15,19,22) 하였습니다.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유일한 예가 레위인이었다는 점과 그러나 흔들어 바치는 제물인 요제이기 때문에 이 제물은 살아있는 제물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레위인을 정결케하여 봉헌하여 “따로 갈라 세워야” 하는 이유는 14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레위 사람은 나의 것이 된다.” 여기 “나의 것”이라는 말이 19절까지 6번이나 반복되면서 레위 사람의 정체성과 의의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장자인 맏이를 살리시고 자기의 것으로 삼으신 것과 연관됩니다(17절). 그 맏이들을 대신, 대리, 대표하여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가 된 것입니다. “처음 난 것은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집트 땅에서 첫 번째로 난 모든 것을 칠 때에,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이스라엘에서 처음 난 것은 무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것으로 삼았다. 나는 주다(3:13).”라고 한 3장의 표현을 따르자면 레위인의 정결과 봉헌은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이며 그 최종 목표이자 이유는 하나님이 주이시다라는 고백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 그를 대표하는 장자 공동체, 그를 대신하는 레위 사람들로 이어지는 일종의 운명공동체의 프렉탈을 통해 하나님이 주이시다라는 고백,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나의 것이라는 선언으로 연결됩니다. 또한 이렇게 하므로 19절에 표현된 것처럼 (1)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회막에서 맡은 일을 하게 하고 (2)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하여 주어 성소에 접근할 떼에라도 재앙을 받지 않게 하려고 레위사람은 성별 봉헌하여 이 임무를 맡기신 것입니다. 이 취지가 잘 이해되고 수행된다면 공동의식과 함께 부채의식과 감사의 마음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연결되고 하나님과의 대화도 밝히 이루어질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24절에서는 스물다섯에서 회막의 맡은 일을 시작하는데 이는 앞의 3장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나이는 태어난 지 한달이 넘은 이들로 계수하고, 4장에서 회막안에서와 행진할 때 실제적으로 복무하는 이는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나이 30세에서 50세까지를 계수한 것과 약간 상이합니다. 아마도 5년 정도 업무를 익힌 다음에 실제로 고되고 강하게 일하는 것은 30세에서 50세가 책임을 맡아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50이 넘어도 책임은 맡지 않지만 도울 수 있다는 일종의 여유를 두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50세도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만 이 중요한 부르심에도 한계를 정해 두신다는 점은 주목하여 볼 대목입니다.
캄캄하고 어두운 지성소 안을 모세 혹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밝히는 금등잔대의 존재와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와 아론과 그 자손 제사장 사이에서 중요한 정체성과 사명을 지녔던 레위사람들의 존재와 구체적인 하나님의 명령들은 광야의 여정을 출발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 지켜지고 수행되었습니다. 이 민수기 말씀을 대하면서 두가지 연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등잔대 앞 맞은 쪽을 비추게 하려 놓으라”는 말씀을 대할 때 예수님의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16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또 다른 하나는 “흔들어 바치는 제물”이 된 레위사람들은 제물이 되었으나 죽지 않고 “나의 것”으로 지칭되며 “나는 주다”를 위해 복무하는 살아있는 제물, Living Sacrifice였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바울은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여기는 것을 통해, 그리고 빛을 정확하게 어디로 비춰야 하는지 가르치고 명령하시는 우리 주님의 명령을 따라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을 통해 이 고백을 실제로 살아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생 여정, 일상생활의 자리에서 비추는 빛, 살아있는 제물로서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이유, 그리고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할 일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