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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9장 1절 23절 나눔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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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9장 1절 23절 나눔 요약 251017
정체성과 방향성-주의 지시를 따름
9장 1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이듬해 첫째 달에”는 시간적으로 1장 1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이 년이 되던 해 둘째 달 초하루에”보다 먼저입니다. 민수기가 단순하게 시간순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갖고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민수기 9장의 유월절 규례(1-14절)와 성막 위 구름을 보고 인도받는 이스라엘(15-23절), 두 이야기는 어떤 의도로 여기 존재하는 것일까요?
“율례와 규례(cf.출12장, 레23:4-8)를 따라”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시고 그렇게 했으나(1-5절), 주검에 몸이 닿아 부정을 타서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의 자신들도 참여하고 싶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6-7절), 이에 대해 모세가 “어떻게 지시를 내리실지 들어 봐야”겠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8절).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문제를 가지고 온 자들에게 합리적일 뿐 아니라(다음 달에 똑같이 유월절을 지켜라), 그 외의 예외적 사항들까지 고려하는(먼길을 떠난 사람,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까지) 세심한 배려를 느끼게 합니다(9-1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13절은 합당한 이유없이 “(정해진 때에)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백성됨을 지키는 것, 즉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의 중요한 단서임을 밝힙니다. (애석하게도 이 유월절이 두 번째이자 향후 40년동안에 유례가 없는 유월절 규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세 번째 유월절 준수는 여호수아 5장 10절 이하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후일 이 대목을 보게 될 후손들은 어떻게 쉽게 이스라엘이 이 중요한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를 쉽게 떠나는 지를 보고 경계를 삼았을 것입니다.)
8절의 모세의 말에 있는 “주님께서 어떻게 ‘지시’를 내리실지”라는 말에 들어 있는 “지시(commands)”라는 단어가 15절 이하에서는 “주님의 지시(Lord’s command-8회 반복)”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성막을 세우던 날부터 “성막(10회)”의 기능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14회)”과 “진(6회)”에 머무를지 혹은 “길을 떠(9회)”날지 하나님의 백성의 방향과 인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알고 임재(구름과 밤에 불처럼 보이는 그것)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23절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그들은 주님의 지시에 따라 진을 쳤고, 주님의 지시에 따라 길을 떠났다.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분부하신 대로, 주님의 명령을 지켰다.” 여정을 시작하는 시점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매우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얼마 있지 않아 순례의 여정(민수기)에서 실패의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데 이것이 어떻게 출발 지점에서 멀어져 있는지, 시작은 좋으나 과정과 결과까지 좋은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 이를 통해 후일 독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있어서, 단지 법조문에 얽매이기 보다 문제제기와 질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넓은 마음으로 여러 가능성(심지어 외국인을 포함시킴)까지 생각하시고 반응하시는, 모든 백성들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구름과 불구름(야간)까지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도를 매 순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정의 출발의 시점에 분명하게 확인하는 의도로 두 에피소드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언제나 “주의 지시”를 따라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재확인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가나안행이 원래 계획대로 11일(cf.신1:2) 혹은 한 달(직선거리 340Km, 실제거리 640km) 정도였다면 “주의 지시”를 받는 것이 오히려 쉬었을 것이지만 40년이라는 세월은 그 출발부터도 그렇지만 “주의 지시”를 받지 못하거나 받지 않는 수많은 상황과 변수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오랜 순종의 걸음을 걷는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이런 말씀을 대하고 경각심을 가지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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