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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댓글 0 건 조회 2,886 회
작성일 20-06-1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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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저주의 시편, 탄식의 시편으로 알려진 시편 137편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 시편의 문맥이라 할 수 있는 시편 120편부터 136편까지와 후문맥이라 할 수 있는 138편을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모음집에다가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라는 맥락에 생뚱맞다싶게 137편이 놓여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을 배열하고 배치한 공동체는 왜 이렇게 이 자리에 137편을 두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찬양과 감사와 노래가 맥락없이 마냥 좋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특히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노래, 찬양, 감사는 극도의 환난과 어려움가운데 탄식을 뚫고 나오는 것이라는 것, 가장 힘들었던 상황을 떠 올릴 때 현재 조금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래하고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유와 의도속에서 이 시편의 위치가 의미가 있지 않겠나 여겨집니다. 


본 시편은 4개의 연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절은 표제와 선언의 역할을 하는 연입니다.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라는 역사적인 선언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는 셈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된 상황은 고향이자 자부심의 근본인 시온(예루살렘)을 잃어버린 실향의 기억입니다. "고향(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진술은 모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의 핵심을 흔드는 진술입니다. 나머지 연들은 이 울음과 슬픔의 이유들의 진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2연, 2절에서 4절에서 우리는 "노래"하기와 관련된 단어들의 반복을 봅니다, 포로의 상황, 실향의 현실에도 가 있는 그곳 바빌론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수금을 걸어 둘 정도로 이 백성들은 노래하기를 즐기고 잘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울음의 이유는 그 노래는 강요된 노래, 하고 싶지 않은 데 억지로 요구받는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그 노래는 기뻐하는 예루살렘(6절)으로 인한 노래였기에 "시온의 노래"라고 표현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는 원래 흥을 돋우어 주는(3절)것이며 기쁨의 노래였지만 실향민, 포로의 상황에서 그것은 강요된 즐거움, 강요된 기쁨, 감정마저 강요된 극단적 억압의 상황속에서 부르고 연주해야 하는 그런 슬픔 그런 아픔이었습니다. 


제3연, 5절과 6절은 "우리"의 반복에서 "내"의 반복으로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라는 공동체의 역사경험을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이라면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것이 어떻게 내 신체와 연결, 결부되는 지를 "오른손의 말라비틀어져 버림"이나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림"과 같이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데 이런 예루살렘을 향한 기억과 애정이 한편으로 포로시기 하나님의 백성에게 슬픔의 이유였을 것이지만 귀환하여 제2의 예루살렘 성전을 만들고 거기 성전에 올라가며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는 몇 배가 되는 노래의 이유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4연, 7절에서 9절의 내용은 마지막에 "복이 있을 것이다"라는 미래형 표현때문에 혹시 이 시편이 아직 회복을 경험하지 못한 시기의 시편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가만히 보면 이 미래형 표현은 오히려 과거에 있었던 고통의 기억을 강렬하게 강조하는 효과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7절의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에돔사람들의 입을 빌어 말하기도 하고, 8절과 9절에 보이는 탄원과 저주처럼 보이는 잔혹한 묘사를 통해 포로, 실향의 시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당했던 고난과 고통을 기억하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의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는 9절의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것과 등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저주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라기 보다 슬픔의 이유가 되는 기억을 더듬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런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다시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래"할 수 없는 상황, 강요받는 노래를 해야 하는 상황은 이제 지나가고, 진짜 노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가 진부하거나 상투적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라비틀어지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는 것과 같은 극심한 역사적 고통을 뚫고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시온(예루살렘, 성전)의 회복 이후 하나님의 백성의 노래, 특히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는 이런 의미에서 평범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된 시온, 예루살렘, 성전의 그림이야말로 우리의 노래의 이유입니다. 노래와 악기연주 가락이 주는 기쁨, 흥이 진짜가 되려면, 바벨론 포로와 같은 극심한 수치와 슬픔, 무기력함과 상실을 너머 회복을 경험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이 수치와 슬픔, 무기력과 상실을 경험하시고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새로운 성전의 비전을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비드19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위기와 어려움속에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들이 분출됩니다. 감정의 표현, 분출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137편에서 하나님은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마저 인정해 주시는 것 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해소하는 가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배제와 폭력의 방식이 아니라 (그 고통의 기억과 감정은 고스란이 드러내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그 고통을 내어놓는 방식으로 해소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 주위에서 난무하는 감정들, 집단적 트라우마 역시 하나님 안에서 정당하게 다루어 질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62편 8절 말씀처럼 "언제든지 하나님앞에 마음을 토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진짜 노래, 진짜 감사와 찬양의 가락을 부르고 연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여서 마음껏 찬양할 수 없는 이즈음, 그런 날을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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