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2020온라인 엘비스클럽 시편 98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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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20-06-11 23:39본문
시편 98편의 앞뒤로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들이 배열되어 있어서 이 시편의 찬양은 이런 맥락에서 왕이신 하나님을 기리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새번역, 공동번역, 개역개정, 메시지성경을 번갈아 읽으며 시를 음미하다 보니 어떤 분은 락컨서트 현장을 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전체의 분위기가 매우 고무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98편은 세 연으로 구성된 시편입니다. 1절에서 3절까지는 과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출애굽 사건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구원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하는 데 "기적을 일으키"는 것, "의로우심을 드러내 보이심"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을 "뭇 나라가 보"았고,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했으니 이 구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구원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회상하며 찬양을 촉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특히 바벨론 포로의 경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무너짐의 경험이었을 터인데 이 포로중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출애굽을 회상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나락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는 것 외에 더 큰 소망이 있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구원하신 하나님을 회상하는 것이 가지는 힘은 낙담에 빠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거기서 헤어나와 전세계, 만물이 동원된 공연장의 현장으로 초대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98편의 두번째 연인 4절에서 8절은 현란한 공연장을 보는 느낌입니다. 모든 악기와 모든 소리가 동원되고, 사람뿐 아니라 모든 만물과 땅과 세계가 합하여 찬양과 환호성을 올리는 장면은 마치 프리미어리그의 관중석을 보는 것 같고 록콘서트 현장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여기서 시인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구원과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는 그림을 그리는 데 로마서 8장 17절에서 23절의 온 피조물의 구원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 포로의 경험같은 비굴한 상황속에서 어떻게 이런 느낌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의 자존심은 구겨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의 위기는 모든 피조세계에게는 기회가 되어서 이제 거꾸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모든 만물의 환호성과 찬양에 동참하라고 권유하는 그림이 시편의 그림인 듯 합니다. 실제로 코로나시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축소될 것에 대한 조바심을 내거나 미래없음에 대해 불안해 하지만 오히려 만물은 이 시기에 회복을 경험하고 있는 뉴스를 보고 들을 때 시편 98편의 그림과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 공연장이나 경기장에 가서 소리지르고 환호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고 다시 힘을 내서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것과 같이 만물의 환호가 있는 공연장의 찬양의 그림속으로 편입될 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힘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런 찬양과 환호가 가능한 것은 1연(1-3절)의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의 경험과 함께 마지막 세번째 연이 말하는 9절의 미래의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전망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속으로 오셔서 정의과 공정으로 판단하시고 다스리실 하나님에 대한 9절의 묘사는 미래에 대한 묘사이면서도 동시에 이미 일어난 경험이기도 합니다. 이미 땅과 세상을 심판(판단)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화 교정하시기를 원하시는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은 같은 의미로 미래에도 땅과 세상을 심판하시고 다스리실 분이십니다.
코로나 시기를 살면서 매우 불안해 하고 상상할 수 없는 나락으로 들어간다는 분위기 뉘앙스를 풍기는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는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을 볼 때,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 공의와 정의로 땅고 세상을 판단하실 분,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면 오히려 우리는 온 피조세계, 만물이 동원되는 콘서트에 불려서 찬양과 환호성을 내지르도록 청유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쉬운 판단, 가벼운 언사로 "코로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오늘 시편 98편은 상상하기 힘든 나락의 상황조차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고백앞에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찬양과 환호성의 경기장으로, 공연장으로 초청받았다는 느낌, 싫지 않은 느낌입니다.
삶,일,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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