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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신대ELBiS 룻기 1장 "나오미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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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댓글 0 건 조회 13,032 회
작성일 09-03-1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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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룻입니다. 제목부터 '룻기'니까요. 하지만 룻기 1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어는 의외로 룻이 아니라 나오미입니다. 최소한 룻기 1장의 이야기만큼은 나오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룻기 1장은 나오미를 어떤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불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룻기의 줄거리를 언뜻 접했을 때, 나오미와 엘리멜렉은 먹고 살기 힘들어 풍족한 모압으로 떠나는 사람들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21절에서 나오미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그들이 처음 베들레헴을 떠날 때는 부족함 없이 넉넉했습니다. 오히려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보고 베들레헴 온 도시가 놀라서 떠들썩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생계형 이민자가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흉년든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형편이 풀리면 다시 돌아올 계획으로 떠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들들을 (하나님이 엄격히 금지하시는) 이방인과 결혼시킨 것을 보아서 그들은 모압 땅에 완전히 뿌리 내리고 살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찾아간 모압 땅에서 엘리멜렉 일가가 맞닥뜨린 현실은 참담함의 연속이었습니다. 모압으로 이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아마 엘리멜렉이 죽었다고 바로 가세가 기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멜렉 사후에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결혼했지 않습니까? 빈털터리 이방인에게 딸을 줄 사람도 없었을테니, 그때까지만 해도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얼마되지 않아 말론과 기룐마저도 죽었습니다. 성경은 모압 이주 후 남자 셋이 모두 죽는데까지 십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넉넉한 집안의 귀부인이었던 나오미는 졸지에 (성경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의지할 자식까지도 모두 죽어버리고 자기와 같은 신세의 과부 며느리 두 사람만 곁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과부 셋만 남아서 무얼 먹고 살았겠습니까?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추수하기 직전이 가장 먹을 것이 없는 때니, 빈털터리로 보리추수철을 맞은 나오미의 상황은 문자 그대로 희망부재의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나오미의 귀에 고향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기억하시고 돌보심으로 그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생존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 나오미는 앞뒤잴 것도 없이 두 며느리를 이끌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않아 나오미는 걸음을 멈추고 며느리들을 설득했습니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그곳에서 재혼해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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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선뜻 룻은 착한 며느리고 오르바는 나쁜 며느리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두 며느리 모두 나오미를 떠나기 싫어서 크게 울며 함께 가겠다고 말했으며,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까지 통곡했던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도 그들이 자신과 아들들에게 좋은 며느리요 아내였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들을 가리켜 ‘내 딸들’이라 불렀습니다. 과부 세 사람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끈끈했던 것입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는 오르바가 돌아간 것이 이상한게 아니라 끝까지 따라간 룻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간 오르바와 끝까지 나오미를 따른 룻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르바는 자기 백성과 신에게로 돌아갔지만 룻은 어머니의 백성과 신에게로 돌아가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놀라운 고백입니다. 도대체 어떤 경로로 룻이 자기 백성과 신을 버리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룻이 신앙의 모델로 삼는 사람은 나오미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버리고 이주해온 점, 그리고 남편 사후에 아들들을 이방과 결혼시킨 점을 보면 나오미에게 제대로 된 신앙이 있었다고는 보기힘든데도 말입니다. 뿐만아니라 ‘너희는 너희들의 신에게로 돌아가라’며 신앙 수준을 의심할법한 발언을 했던 사람이 나오미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를 신뢰했던 룻은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이러한 룻의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베들레헴으로 함께 향했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온 도시의 격렬한 반응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너 정말 나오미 맞냐?’며 놀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기품있던 귀부인이 쪼그랑 할머니가 되어 빈손으로, 게다가 이방인 며느리를 데리고 돌아왔으니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잘 나갈 때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치더니 잘 망했다. 참 고소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오미의 인생은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떠나는 여정의 반복으로 묘사됩니다. 한데 여정에서 하나님은 별로 중요한 동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필요가 가장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첫 여정은 흉년든 고향을 떠난 것이었고, 두 번째 여정은 베들레헴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귀환 이야기는, 그닥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출발한 첫 여정과 텅빈 상황에서 출발한 두 번째 여정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면서 결국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 필요에 따라 떠난 두 번째 여정이었지만, 나오미는 그 여정의 끝에 자기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가 모든 화두에 우선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평생을 이동했던 나오미의 여정을 눈여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요를 채우는 모든 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활동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판단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와 하나님의 뜻을 분리시켜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될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때에라도 돌아가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결단해야겠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달리는 길, 더 갖고 더 편히 살기위해 달려가는 길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권면하심을 기다리는 길에 서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정환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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