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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연구소 온라인 ELBiS Club 시편 24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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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20-11-0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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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ELBiS Club 시편 24편 요약 20201106

뭔가 장중한 느낌의 시편입니다. 왕의 행차 혹은 전쟁 후의 사기 진작을 위한 왕의 진중 세리모니같은 심상의 시편입니다. 1절과 2절에서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소유주이신 야웨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7절에서 10절에서 자기 소유의 성으로 재(탈환)진입하는 왕에 대해 올바른 반응을 촉구하는 반복되어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에서 그 장엄함의 정점에 이릅니다. 가운데 있는 연인 3절에서 6절은 이런 통치자에 가까이 할 수 있는 (시쳇말로 백악관이나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진술입니다.

처음 본문을 대할 때 그 구조의 명료함, 그리고 메시지의 직설적임 즉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orientation 시편으로, 표면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지만 실제적인 삶에서 묵상하기에 혹은 코로나 시기라는 위기시기와 같은 복잡한 심사의 시기에 언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시편이었습니다만 성서해석공동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 시편이 현실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는 시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시편이 자리하고 있는 앞 시편들 22편과 23편의 맥락에 이 시편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삶의 복잡성속에서 이 orientation 시편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깊은 탄식의 시편인 22편에서 출발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면서 인도하시는 목자를 노래하는 23편을 거쳐 자신이 창조하여 주인이 세상을 새롭게 방문하시는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는 24편의 크레센도(점점크게)식 시편의 배열 맥락적 이해를 통해 이 시편을 바라보는 것이 단선적 이해와 적용을 막는 길이 되겠다 생각이 듭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야웨 하나님은 모든 세상의 견고한 창조주(1-2)이시지만, 세상 속에서 전쟁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야웨 하나님은 힘이 세고 용맹하신 “전쟁의 용사(8)”로서 이 전쟁을 끝내고 “영광의 왕(10)”으로서 다시금 자신의 소유인 세상이란 성의 문으로 승승장구 들어가시길 원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문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성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호령하는 장수의 심상을 드러내기 위한 그림언어입니다. 복수로 사용한 것은 모든 성의 문들에 대한 호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원한 문들”이란 표현은 오래된 문, ancient gates 고대의 문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으므로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 열리기 힘들 정도가 된 문까지 열리기를 촉구하는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 대목에서 문앞에서 두드리고 계시는 계3:20의 그림, 혹은 자기 땅에 오셔서 열처녀의 환영받기 원하시는 신랑의 비유등이 생각이 납니다. 오래된 폐쇄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개방성으로 사람들을 촉구하는 대목입니다.) 탄식할만한 전쟁의 상황속에서 결국은 승리하고 자신의 소유를 재탈환하여 다시 자기 땅으로 오시는 영광의 왕의 이미지야말로 전쟁터와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과 연을 맺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 설 수 있느냐?(3).” 다른 말로 누가 이런 통치자와 연을 맺고 그 거처에 들어왔다갔다 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4절에서 6절까지에서 시인이 합니다. 4절과 6절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수행해야할 덕목을 말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5절에서는 은혜의 측면 즉 야웨 하나님 편에서의 인정을 말하므로 균형을 이룹니다. 4절은 윤리적인 측면(깨끗한 손,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에 강조점이 있다면 6절은 종교적인 측면(주님을 찾는 사람,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사람-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강렬하게 사모하였듯이 주님을 찾는 사람)의 언급입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5절이 이야기하는 야웨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하나님의 거소(백악관, 청와대)에 들어가 창조와 재창조(탈환)의 하나님과 살가운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시기를 거치면서 시편을 함께 묵상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힘과 소망을 줄 수 있을까요? 탄식시편 혹은 disorientation 시편을 통해 시인과 동일시하며 우리의 탄식을 시편의 기도에 실을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때로 재난의 시기에 매몰되어 더 높고 넓은 전망을 잃어 버리게 될 때 코로나블루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orientation 혹은 reorientation 시편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승리의 감각,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물론 거꾸로 창조의 시편이나 찬양의 시편을 맥락없이 원리로 들이미는 폭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시편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야말로 축소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며 동시에 인간의 삶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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