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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6장 1절 17절 나눔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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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32 회
작성일 25-03-0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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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봉인, 6막의 드라마

 

드디어 보좌에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받은 두루마리의 봉인을 모든 피조물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시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하나씩 떼십니다. 봉인을 뗄 때 마다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다른 장면이 펼쳐지는 것을 요한은 보고 듣습니다. 이 장면들을 통해 이 땅에서 경험하고 있는 일들과 그 의미, 그리고 역사의 방향에 대해 보게 됩니다.

 

1절에서 8절까지에 해당되는, 첫 번째 봉인부터 네 번째 봉인을 뗄 때 보고 듣게 되는 것은 일종의 패턴(네 생물의 “오너라”소리에 네 말이 무언가를 들고 등장함)이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말은 스가랴 1장 8-10절이나 스가랴 6장 1-8절을 참고하면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땅을 두루 다니며 그 사명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계시록 6장에서 이 말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부정적인 현상들과 경험들이 그 목적인 셈입니다. 첫 번째 흰색 말(을 탄 사람)은 제국주의적 정복(이기려고 2절)을, 두 번째 불빛과 같은 말은 평화가 아닌 칼과 폭력을, 세 번째 검은 말은 경제(저울)적인 재난(늘 제한이 있음-6절)을, 네 번째 청황색 말(을 탄 사람)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인 지옥이 뒤따라 오는 죽음(사망)을 가져다 줍니다. 인류 보편의 역사속에서 경험하는 이런 제국주의적 정복과 폭력과 경제적인 고난과 전쟁, 기근, 팬데믹을 비롯한 각종 죽음의 현상은 인간과 피조 세계 전부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이 9절부터 11절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영혼이 드리는 탄식과 탄원의 배경이며, 12절에서 17절에서 보게 되는 “진노를 받을 큰 날”의 원인입니다.

 

요한의 시대에 로마제국의 지배와 평화를 가장한 전쟁과 폭력, 경제적인 재난등 일반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이런 죽음의 현상들은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자들과 희생자가 된 순교자들의 탄식과 탄원을 자아내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또 그들이 말한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 보좌의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요한은 보고(9절) 그들이 하는 탄식과 탄원소리를 다섯 번째 봉인을 땔 때에 듣게 됩니다. 이 탄식과 탄원은 이미 피를 흘린 적색순교자들 뿐 아니라 여전히 이 땅의 역사를 살아가는 일상의 녹색순교자들과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삶을 사는 수도적 백색순교자들의 탄식과 탄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지배자님께서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며 우리가 흘린 피의 원한을 풀어 주시겠습니까(10절)?” 이 탄원에 대한 말씀은 “아직도”입니다. “같이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라는 말은 부정적으로는 더 고난받고 죽어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긍정적으로는 끝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섯 번째 봉인을 뗄 때 요한은 하나님의 “진노(16,17절)”의 날이 임하는 것을 봅니다. 12절에서 14절의 묘사는 마태복음 24장 29절 이하 인자의 오시는 날에 대한 묘사와 공명합니다(1절에서 11절의 묘사도 마태복음 24장 6절에서 13절과 어느정도 공명함). 지진과 천재지변과 하늘의 징조들과 함께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마24:30)”인데 하늘에 속하지 않는 다는 의미의 “땅의” 사람들은 그 진노를 두려워 숨으려고 하는 것을 요한은 보게 됩니다.

 

일종의 6막의 드라마를 보고 들은 요한은 현재 살아가는 믿는 자의 삶과 고난, 그리고 순교의 의미에 대해서, 다른 말로 신자로서의 일상생활과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품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이 드라마 자체가 너무 간결하여서 한 번의 드라마 상연이 부족하여서 보충하고 확장된 또 다른 드라마들(일곱나팔 과 일곱 대접)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잠시 역사에 대한 낙관의 시대를 구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정치적 군사적 제국주의, 승리주의가 가져다 주는 야만의 현실들, 평화를 가장한 전쟁과 폭력, 경제적인 어려움과 팬데믹과 같은 죽음의 현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삽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사적 전망을 가지고 이 역사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까요? 하나님의 신원의 날, 파루시아, 종말, 인자의 오심을 확신하며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더 오래 기다릴 줄 아는 믿음, 지혜가 필요합니다.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쉬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들과 악한 세력에 대한 진노의 날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의 윤석열 구속취소 소식에 놀란 가슴을 오늘 말씀으로 다스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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