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19장 1절 21절 나눔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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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06-14 01:15본문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19장 1절 21절 나눔요약 250613
할렐루야 그리고 백마 탄 자
계시록 19장에는 “할렐루야”가 4회 반복되는데 신약에서 유일하게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것은 시편에서 마지막 146편 이후 할렐루야 시편에 이 단어가 주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물론 그 앞에도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 피날레에 가까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절에서 10절은 하늘에서 울리는 찬양 소리 같은 청각적 요소가 지배적이고 11절에서 21절은 시각적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이 두 부분의 대조는 세부적으로 1절에서 4절까지 “큰 창녀”의 심판으로 인한 할렐루야와 5절에서 8절까지 “신부”와 어린 야의 혼인날(왕권)로 인한 할렐루야의 대조와 11절에서 16절까지 흰말을 탄 피로 물든 옷을 입으신 분과 흰말에 모시 옷을 입은 하늘의 군대와 17절에서 21절까지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 군대의 대조를 통해 “어린양의 혼인 잔치(9절)” 와 17절의 “하나님의 큰 잔치”가 잔치라는 점에서 같은 것이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이 다른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두드러지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17장과 18장에서 얻게 된 바 큰 창녀인 도시 바빌론은 “음행으로 세상을 망”쳤으나 어린 양의 혼인날을 위해 신부는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인 모시옷(fine linen)으로 단장합니다. 이 신부는 21장 2절에 등장하게 될 “새 예루살렘”의 예고입니다. 이 날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7절)”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그 잔치의 날, 하나님의 큰 잔치의 날은 짐승의 표를 받고 그에게 절하는 자들에게는 죽음과 심판의 날이며 공중에 나는 모든 새에게는 포식의 날(cf.겔39:17-20)이 될 것입니다. 핵심은 희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고(14절) 백마를 탄 분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를 선택할 것인지입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 본문의 분량으로 보면 군대들의 전투와 그 결과는 매우 신속하고 간결하게 기록되고 그에 반해 하늘의 군대(14절)가 따르는 분에 대한 묘사는 상세하고 매우 깁니다(11-16절). “신실하신 분”“참되신 분”(11절), “하나님의 말씀(13절)”, “왕들의 왕”“군주들의 군주”(16절)와 같은 이름을 가지신 분이지만 동시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의 몸에 적혀 있”는 분 즉 완전하게는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는 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11절)이며, “피로 물든 옷을 입으셨고(13절), 하늘의 군대를 이끄시는 분이신데(14절), 구약의 메시야 예언들(사11:3-4, 시2:8-9, 사63:1-6)을 성취하실 분, 날카로운 입의 검, 말씀으로 치시고, 철장으로 다스리시며,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분이십니다. 이런 분을 모시옷 즉 거룩한 성도의 의로운 행위(cf.19:2 자기 종들이 흘린 피의 원한)를 입고 따르는 삶이 이 묵시를 듣는 사람들에게 요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복있는 사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9절)”입니다.
10절의 천사에게 경배하려는 요한에게 하는 “이러지 말아라, 나도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네 동료들 가운데 하나요, 너와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예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이다.”라고 하는 천사의 말은 어쩌면 당시 초대교회 천사 숭배를 겨냥한 메시지일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9절과 10절의 천사의 말에서 보이는 반복 “말씀”과 “증언”,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기록(9절)과 예언의 영(10)이란 단어들은 한가지로 13절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모시옷”과 “경배”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할 뿐 아니라 내용상 끔찍한 묘사와 서술들로 인해 공포의 책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묵시라는 장르, 판타지적 요소를 감안하고 이해하면 한 시대를 하나님의 말씀(예수의 증언, 예언의 영)에 입각하여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라는 점이 점점 드러납니다. 그리고 동시에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음을 주목하게 합니다. 심판 받을 창녀의 음행의 길인가 빛나고 깨끗한 행실의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로 묘사되는 모시옷을 입은 신부의 길인가? 백마를 탄 분을 따를 것인가 짐승을 따를 것인가? 바빌론인가? 새예루살렘인가?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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