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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요한복음 2장13절-25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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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04-0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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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요한복음 2장13절-25절 요약


전 문맥의 가나 혼인잔치와 오늘 본문은 분위기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잔치의 기쁨과 예수님의 표적으로 인한 풍성함이 전 문맥의 분위기인 반면 오늘 본문은 당황스러움과 논쟁적인 분위기에 부정적인 평가가 주입니다. 다같이 축제의 분위기인 것은 같지만 앞 본문은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는 것이라면 대조적으로 유대인의 유월절 축제를 맞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잘못된 어떤 것을 제거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주는 양면적인 의미(기쁨의 근원이자 정화하시는 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본문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 “성전(7회이상)”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13절-17절)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대화(18절-23절)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전의 본질’에 대해 정화사건속에서 예수님은 실제적인 성전의 의도를 “아버지의 집”과 “장사하는 집”의 구도로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성전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장사라는 경제적인 본질, 이익을 구하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라고 물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사건이후 유대인들과의 대화에서는 예수님께서 결국 성전의 본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서 물리적인 성전을 넘어서는 차원이 있다고 밝히십니다.(아마 제자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예수님의 선문답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고 주장하심으로 다시 한번 1장에서 이야기 되던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주장을 여기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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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조르다노: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특히 17세기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장식적이며 경쾌한 구성과 밝은 색채 등 독특한 화풍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하심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심으로 유대인들의 불편한 마음을 자극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도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응답하신 것에 대한 답은 오히려 23절부터 25절에 걸친 저자의 나레이트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신 동안에 보여주신 표적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믿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반응은 긍정적이 아니였음을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친히 모든 사람을(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다”고 하신 것을 볼 때 아마도 18절에서 표적을 요구한 유대인들(cf.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에게 뭔가 효과 있을 만한 표적을 보여주었어도 이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이지 못하였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말씀 그대로인 셈입니다.


요한복음은 표적의 책(적어도 12장까지)이라고 할 만큼 표적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마는 표적(signs)은 그야말로 가르키는 손에 해당할 뿐 그 대상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요한복음에서도 반드시 표적이 있고 그 설명에 해당되는 예수님의 강화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적과 기사 때문에 믿는 믿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믿는 믿음은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는 것(22절)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소위 성전정화사건은 다른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의 말미에 나타나는 데 유독 요한복음은 첫 부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요한의 의도는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가지고 계신 자기이해와 예수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차근차근 발전한 것이 아니라 사역의 초기부터 있었다는 강조하고 있는 것에 틀림없습니다. 본문에서는 두 번정도 이 사건에 대한 제자들의 의식이 나중에야 확증되었다는 언급을 하기 위해 17절과 22절에 나중에 “기억”하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인 요한(혹은 그 공동체)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야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고 그 깨달음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종교의 본질, 사람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보여주신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계셨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종교, 사람들은 늘 자기에, 자기의 이익에, 장사하는 정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삶의 초점이 어디 있는 지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더 현실적으로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당연히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전이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교회는 더더구나 사람이 아닙니다.(이것이 제게는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교회는 참된 종교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성전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공동체입니다. 비본질적인 것으로 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가졌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생활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채워져 있는가 아니면 우리 주님께서 제거하려 하신 이익에 대한 추구로 점철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중심적이 되어야 한다는 모토속에서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잘못된 초점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셨던 예수님처럼, 자신을 이 땅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보여주는 성전으로 이해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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