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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성경해석학 3부 선교적 신약성경읽기 Thesis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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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115 회
작성일 24-06-1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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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근

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 읽기 N.T.라이트

신약성경은 초기 교회의 선교적 삶을 지탱하고 안내하기 위해 쓰였다. 256

신약성경이 세상을 위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것이며, 그 초점은 물론 예수님이시라 258

성전과 교회의 선교라는 주제

사도행전-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 안에 심어 놓으신 선교적 신학, 곧 예수님과 그의 백성인 새 성전을 개괄하고 있다. 그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온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요한복음-기독론적 성전신학, 성전에 의해 형성된, 성령을 받아 세상으로 나가는 선교 273

성령이 인도하시는 교회의 새 성전 선교학 275

바울-그는 그의 신생 교회들이 단일하고 일치된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하나님의 선교사인 메시아의 십자가와 부활에 의해 온전히 형성됨으로써 어두운 세상에서 밝은 빛으로 빛나기를 분명히 원한다. 사실, 바로 이것이 기독교가 퍼진 방식이다...교회의 선교는 이러한 ‘새 성전’의 실재 안에 하나로 모인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279

 

10장 선교적으로 야고보 읽기 조엘 그린

야고보서의 선교적 가치를 따지는 것은 결국 ‘선교에 대한 누구의 정의가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된다.286

1)야고보서는 그 독자들을 하나님의 선교라는 내러티브 안에 어떻게 위치시키는가?310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선교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 패턴과 관습을 따르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성찰을 가져온다.

야고보서는 어떤 내러티브를 들려주는가? 야고보서에서 하나님의 선교에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는 네 가지 알곡(kernel)이 있다.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현재의 유배생활->새 창조 292

창조와 새 창조의 비전을 가지고, 야고보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자신의 내러티브 벽화의 틀을 잡는다. 296

2)야고보서는 그 독자들을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이들로 어떻게 형성하는가?309

세가지 중요한 모티브, 즉 유배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을 인식하는 것, 통합된 삶을 사는 것 309

 

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딘 플레밍

골로새서를 첫째, 하나님의 선교와 그 선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한 증언으로, 둘째는 ‘미시오 데이’의 도구로 읽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바울이 특정한 환경에 처한 그의 1세기 독자들을 위해 복음을 상황화하는 방식을 선교적 읽기가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314

바울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보통 말하는 기독론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골로새서를 기독론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또한 선교적으로도 읽어야 한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내러티브를 우주적 화폭 위에 거대한 붓질로 그려 낸다. 318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복음 사역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골로새 성도들 또한 동일한 이야기 안에서 그들의 자리를 발견하고 그 원대한 내러티브에 참여하여 열매 맺는 이들로 살기를 원한다. 329

골로새서를 선교적으로 읽을 때, 분명 우리는 창조 세계 돌봄에 대한 교회의 사명이 모든 창조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증언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일이자 장차 올 새 창조의 선취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343

 

정천호

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 읽기 - N.T. 라이트 

신약성경은 초기 교회의 선교적 삶을 지탱하고 안내하기 위해 쓰였다. 
초기 교회는 유대교 유일신 신앙에서 말하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가 세상에 마음껏 흘러가게 하는 백성이 되는 것을 의식했다.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신약성경이 쓰인 목적은 초기 교회의 모든 선교적 의제로부터 출현한다. p. 256 

 

 신약성경에서는 우리가 공공 선교적 신학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 탄생했다….신학은 세상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해석학적 공간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이 새로운 해석학적 공간은 우리와 우리가 공유하는 주님을 하나로 묶어 주는 새로운 ‘렐리기오’를 가지고 예배와 친교 안에서 다 함께 살아가고, 새로운 ‘폴리스’로서 다 함께 기능할 때 나타난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단지 그것의 수혜자가 아니라 대리자로 부름받는다. p.281 

10장 선교적으로 야고보서 읽기 - 조엘 그린

'선교'를 하나님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시는 의제와 관련해 이해해야 한다면, 그리고 단지 하나님을 대신해 개인이나 교회가 수행하는 전도 활동의 지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면, '선교적'이라는 말은 더 광범위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룬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의 행하심 안에서 그 정체성을 발견하고 또 그 행하심에 참여하는가를 지칭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 우리의 의제는 두 질문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야고보서는 그 독자들을 하나님의 선교라는 내러티브 안에 어떻게 위치시키는가? 야고보서는 그 독자들을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어떻게 형성하는가?  p.310

1. 야고보서 청중의 위치 설정하기 

우리의 정체성, 즉 우리가 누구인지는 대체로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내러티브에 의해 형성된다. 

야고보서의 내러티브 : 창조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 현재의 유배 생활 - 새 창조 

2. 복음을 체현하기 

세 가지 모티브 1) 유배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 2)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을 인식하는 것, 3) 통합된 삶을 사는 것 

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 딘 플레밍

선교적으로 골로새서를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 서신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증언하는지,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들이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서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요청하는지 이해하기를 추구한다. 

 리쿠스 골짜기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동 안에서”, 또한 “골로새에서” 우리의 선교적 정체성을 살아 낸다. 우리 역시 ‘골로새’라는 세상의 과잉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과 증언을 뒤덮는 것을 내버려 두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처럼 바로 이‘골로새에서’우리를 지켜보는 세상 앞에 복음을 말하고 살아 냄으로 하나님의 선교를 체현해야 한다. pp.347-348 

 

정한신

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 읽기 - N.T. 라이트 

신약성경은 초기 교회의 선교적 삶을 지탱하고 안내하기 위해 쓰였다. 초기 교회는 유대교 유일신 신앙에서 말하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가 세상에 마음껏 흘러가게 하는 백성이 되는 것을 의식했다.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신약성경이 쓰인 목적은 초기 교회의 모든 선교적 의제로부터 출현한다. (256면)

8장 선교적으로 야고보서 읽기 - 조엘 그린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선교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 패턴과 관습을 따르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성찰을 가져온다. (287면)

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 딘 플레밍

선교적으로 골로새서를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 서신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증언하는지,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들이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서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요청하는지 이해하기를 추구한다. (347면)

 

김종수 

선교적 성경 해석학 3부 선교적 신약성경 읽기 

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 읽기 

신약성경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종교적' 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새롭고 쉬운 길을 제안하는 것 역시 아니다. 중세 교회와 연옥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다른 답을 주기는 했지만) 그 틀을 유지했던 종교개혁가들과 그 후계자들 때문에, '천국에 가는 방법'은 신약성경을 읽을 때 중심 모티브가 되어 왔다. 미국 문화에서는 특히 그랬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잘못된 틀 인 것 같다. 신약성경은 재림과 최종적 나라의 최종적 도래에 앞서, 이미 지 금도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되찾고 계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261)

신실한 신약성경 해석학은 하나님이 부여하시고, 예수님이 형성하셨으며, 성령이 이끄시는 선교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교회를 지탱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264) 


신약성경에서는 우리가 공공 선교적 신학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 탄생했다. 신학은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아주 특별하고 성스러운 소수를 위한 사적 공간으로 후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신학은 세상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해석학적 공간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이 새로운 해석학적 공간은 우리와 우리가 공유하는 주님을 하나로 묶어 주는 새로운 '렐리기오'(religio)를 가지고 예배와 친교 안에서 다함께 살아가고, 새로운 '폴리스'로서 다함께 기능할 때 나타난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단지 그것의 수혜자가 아니라 대리자로 부름받는다. 이 새 창조의 대리자가 될 때, 우리는 오늘날 다른 많은 사회와 문화가 열망하는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윤리적• 정치적 실재를 제공할 수 있다.(281)

10장 선교적으로 야고보서 읽기 

야고보서는 독자를 하나님의 선교라는 성경의 내러티브 안에 어떻게 위치시키는가? 야고보서는 독자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이들로 어떻게 형성하는가?(286)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성경을 읽으신 방식, 예수님이 하나님의 선교를 대표하신 방식, 예수님이 신실함을 평가하신 방식. 바로 이런 것들이 야고보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채우며, 그의 청중이 세상을 개념화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형성한다.
(299-300)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특징적인 관습은 무엇인가? 누가 결정하는가? 문화적 적응이 적절한 때는 언제이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 즉 배교와 변질로 이어지는 암 덩어리가 될 때는 언제인가? 표준적 관습, 신의, 관행이라는 끊임없이 쿵쿵 울리는 드럼 소리는 다른 종류의 드럼 연주자가 되도록 부름받은 이들의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 그러나 디아스포라의 삶의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적어도 또 다른 리듬을 듣고 따라갈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의미다.(305) 

유배지에서의 신실함이란 다른 방향을 택하여, 하나님의 참된 말씀인 복음을 마찬가지로 내면화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선물인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체현함으로써 그 사람의 존재와 행동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308) 

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에 의해 어둠의 지배에서 해방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생명의 충만함을 증언하며, 만물을 자신과 화해시키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에 감사함으로 참여한다. (342) 


선교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복음 그리고 바울이 사용할 수 있었던 전승들이 성경 본문 안에서 상황화되는 방법과 교회가 오늘날 그들 자신의 상황에서 바울의 인도를 따라갈 방법 모두를 진지하게 여긴다. 한편으로 상황 안에서 신학을 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규범적 복음의 분명한 시작을 유지해야 한다. "변함없는 복음과 변화하는 상황 사이에서 추는 신학의 춤에서는 복음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344) 


선교적으로 골로새서를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 서신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증언하는지,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들이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서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요청하는지 이해하기를 추구한다.(347)

 

 홍은경

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읽기

신약성경은 재림과 최종적 나라의 최종적 도래에 앞서, 이미 지금도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되찾도 계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교’의 언어에서 (즉, 신약성경에서 ‘보내심’의 언어), 아들의 보내심을 발견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나 “나를 보내신 분”처럼, 요한복음에서 ‘아들을 보내신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나 다름없다. 아들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 그 자체다. 다른 모든 보내심은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해서,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행하신 일에 근거하여 일어난다. p.261

10장 선교적으로 야고보서 읽기

유배지에서 신실함이란 다른 방향을 택하여, 하나님의 참된 말씀인 복음을 마찬가지로 내면화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선물인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체현함으로써 그 사람의 존재와 행동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p.308

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선교적으로 골로새서를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 서신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증언하는지,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들이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서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요청하는지 이해하기를 추구한다. p.347

차재상

9장. 선교적으로 신약성경 읽기 - N.T. 라이트 

기본적으로 표현하면, 신약성경이 쓰인 목적은 초기 교회의 모든 선교적 의제로부터 출현한다. (p.256)

교회가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있을때만 선교는 설득력이 있고 효과적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의 위대한 결론, 적어도 그 결론의 일부분이다. 즉 그가 의롭다고 하신 자들을 그 또한 영광스럽게 하신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방법이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경을 읽으며 세상을 향한 그분의 선교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p.283)

10장. 선교적으로 야고보서 읽기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선교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 패턴과 관습을 따르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성찰을 가져온다. (p.287)

야고보가 불 때, 하나님은 자신의 종말론적 백성을 형성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행동하셨지만, 종말을 기다리는 동안 그 백성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범죄와 관습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신실한 이들은 회복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회복된 백성이다. (p.301)

선교적이라는 말은 더 광범위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룬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의 행하심 안에서 그 정체성을 발견하고 또 그 행하심에 참여하는가를 지칭할 것이다. (p.310)

11장. 선교적으로 골로새서 읽기 - 딘 플레밍

선교적으로 골로새서를 읽는 것은 골로새 지역에 성숙하고 선교적인 회중을 형성하려는 바울의 바람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계속해서 준비시킬 수 있는지에도 관심을 둔다. (p.340-341)


골로새서를 선교적으로 읽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령의 안내를 받아 사람들을 그들의 삶의 환경 안에서 신실하고 적절하게 만날 수 있는 복음을 말하고 체현하는 방법들을 발견하고자 애써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맞을 포기하지 않은 채, 우리 자신의 이야기, 언어, 문화적 자원을 활용할 것이다. (p.345)


선교적으로 골로새서를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이 서신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증언하는지,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들이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서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요청하는지 이해하기를 추구한다.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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