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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크리스찬 #52 송구영신과 시간의 영성(1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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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7,308 회
작성일 10-01-08 09:58

본문

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09년 12월 28일 방송분 준비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정한신 기획연구위원

주제 : 송구영신과 시간의 영성

* 본 자료는 아래의 글 중에서 일부를 전재한 것입니다. 목차는 편집과정에서 재구성하였습니다.

- 이창환, 시간 하나님 나라에서 찾다, 대학가 통권 154호, 2007년 4월호, 3-4면

▲ 들어가면서 - 송구영신의 시기와 시간에 대한 의식

송구영신의 기간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희망을 생각하며 나누는 이 기간을 사람들은 특별한 기념의 시간으로 보냅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송구영신 예배라는 의식으로 이러한 시기를 보내는 것이 관례가 된 것 같습니다.

송구영신의 시기에 우리는 특별히 흘러가는 시간과 맞이하게 될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미 지나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후회와 감사의 감정으로, 앞으로 맞이하게 될 시간에 대하여는 기대의 마음으로 의식합니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시간이 되면 우리의 의식은 일분 일초에 명료하게 모아지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분명하고 깨어있는 의식 가운데 있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시간의 일상신학적 의미에 대하여 묵상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시간을 의미있게 살아내기 위한 성실한 노력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의 시간들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시간 자체의 정체에 대하여 제대로 직면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대로 시간을 살아내는 지혜를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성경에서의 시간

신약에서는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가장 흔한 두 개의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 시간으로 우리가 이른바 시계로 표시하는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한 개인이나 민족의 삶에서 특별한 사건들이나 시점을 말합니다. 성경은 크로노스의 시간보다는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을 더욱 많이 사용합니다. 구약 성경의 에스더 4:14의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는 말 속에는 “한 개인의 삶의 과정 안에 시기적절한 상황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이라는 시간 개념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15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표현에서 때라는 것도 적절한 상황과 시점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의 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취의 때 카이로스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에 얽매어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대의 현대인들은 그만큼 산업사회 이후에 버려지고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의 영적인 가치들에 대하여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자원으로 생각하여 제한되어 있고 고갈되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는 시간을 더 잘 사용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의 리듬을 가속시켜야 합니다. 시간은 일정한 양만큼 주어지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서 더 많은 것을 쥐어 짜내야 합니다. 따라서 삶은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시간을 준수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혹사하는 것도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시간은 한정되고 감소하는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여 주신 사랑의 선물입니다.

성경이 안식에 대하여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선물이라는 개념을 지지합니다. 창조의 정점은 시간에 쫓기어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누리는 것이고 안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했던 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개발과 발전이라는 논리로 우리 스스로 하게 될 때 우리가 건설하는 하나님 나라는 자아가 투영된 인간의 나라가 됩니다.

▲ 어떻게 살 것인가? - 시간의 구속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의 성경 말씀에 덧붙여 어거스틴은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은 시간도 창조하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시간이 창조되었다면 시간 역시 피조 세계의 다른 모든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타락의 영향을 입었습니다.

‘때가 악합니다.’ 왜냐하면 그 날들(the days)이 악한 자 사탄의 지배 아래 놓여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16 골로새서 4:5의 ‘시간을 아끼라’라는 문장은 킹제임스성경(KJV)에 “시간을 구속하라(Redeeming the time)”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세상과 접촉함으로 악이 침입하는 것에 대해 깨어 있으라는 언급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올바른 관점을 가지며 여러 가지 결정들을 내리는 데 있어 지혜롭게 우선순위를 잘 분별하라는 말입니다. 구속이라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되산다’(buying back)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회를 사서 시간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 시간과 하나님 나라 -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합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양립할 수 없는 우선순위를 마음에 간직하고 갈등하며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우리의 삶을 내어 드릴 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본래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에 바빠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많은 할 일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초조해하면서 일을 서둘러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그 목적을 이루는데 헌신했으며 성령에 늘 민감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쁘다는 말은 헌신의 징후가 아니라 배신의 징후이다. 그것은 헌신이 아니라 태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삶의 목적에 맞게 운영되지 않는 삶은, 그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하며 살아가지 않는 삶은 배신이며 태만입니다. 우리는 늘 바쁘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에게 시간이 많다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일을 당신의 때에 이룰 수 있는 적절한, 충분한 시간이 존재합니다.

▲ 나가며

한 해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시간들을 누리며 살았는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았는지 되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으로 시간을 구속하며 살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성취해 낸 것들, 시간을 통제하면서 만들어낸 생산물 보다 시간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누림의 공간을 주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역사를 행하신 그 사건들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송구영신의 시기는 돌아봄과 감사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가며, 바쁘기 보다는 누리고, 쫓기기 보다는 부름받은 삶에 온전히 헌신하며, 조바심을 내기 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늘 민감한 여정을 살겠노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사람은 생명으로부터 끊어졌으며 비록 시계는 째깍거리고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명은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시간사용과 활동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시간, 하나님 없는 역사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지만 우리가 혹시 그러한 교만한 마음으로 시간을 사용한다면 모든 성취는, 역사는 목적 없고 공허하며 무익한 것임을 겸손히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 송구영신의 시간에 드리는 기도

오늘은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김지철 목사님의 기도문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시간의 주님

저희의 모든 시작의 끝이요 시간의 주님이신 하나님,

아버지만이 시간을 선물로 만드시고 저희가 시작점을 가진 피조물임을 알게 하십니다.

저희는 자신이 시한부 피조물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잊습니다.

죽음이 불러오는 망각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합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 안에 자신을 각인시켜 잊혀지지 않을 줄로 착각합니다.

저희가 아버지께 얼마나 어리석게 보일까요?

아버지의 시간, 그 거룩한 은혜의 시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구속된 그 시간 안에서 저희로 하여금 기뻐하고 안식하게 하소서.

그러면 죽을 때에도 편히 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저희에게 시간을 허락하신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저희로 하여금 그 시간 안에서 즐거워하게 하소서.

- 스탠리 하우어워스

새롭게 하소서

푸른 하늘의 태양을 우러르듯

향기로운 풀밭의 적은 풀꽃을 굽어보듯

그렇게 당신을 대하고

모두를 대할 수 있는 맑은 마음을 주소서.

모랫벌이 불타듯 마음이 팍팍할 때

새 풀을 싹틔우는 봄 숲의 비처럼

그렇게 신생(新生)하는 사상(思想)의 비를 내리소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사랑하고,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사람들도 사랑으로 사랑하고,

노함에는 너그러움,

슬픔에는 슬픔, 즐거움엔 즐거움으로 위로를 줄 수 있는,

당신의 피와 같은 뜨거운 피흘림이

솟아나 용솟음쳐 불타게 하소서.

그리고 또 우리에게

공포에는 안심을, 속박에는 자유를,

굶주림엔 배부름을, 추위에는 따스함을,

이별에는 만남을, 외로움엔 위로를, 전쟁에는 평화를 주시되,

아기들 잘 자라고, 젊은이들 씩씩하고, 늙은이는 평강하고,

이웃들은 서로 믿고 다정하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그 불멸하고 숭고한 사랑과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신념에

확고하고 불타올라

그것을 거역하는 일체의 악에 대한 항거에

용감하게 하소서.

열렬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올해에는

모든 일이 우리에게 정상(定常)하게 하소서.

마땅히 있을 것이 있고, 일어날 것이 일어나고,

될 것만이 되고, 이룰 것만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슬프고 괴롭고 처절하고 아픈 일

끔찍하고 통분한 일이 안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들로는 어쩌지 못할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 김지철 목사

- 이상 김영봉,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 (IV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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