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12월 일상사연 - 가혜민님(활동가, 문화 커뮤니티 기획 및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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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 "이전과 다음"이라는 이름으로 문화 커뮤니티를 기획,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그림책 프로그램 또는 세대 연결 프로젝트, 성인 독서모임 등을 설계하면서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안전하게 나누고 서로의 언어를 발견하며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주된 역할입니다. 각 사람의 이전과 다음을 통해 현재를 어떻게 구성해 나가고 있는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고, 듣고, 나눌 수 있는 판을 까는 일을 하고 있어요.
2. 이 일을 하기 위해 그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오셨나요?
- 기독 출판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했던 출판사는 전 세대를 위한 기독교 교재를 개발하고, 신앙서적을 출간하며, 교회 교역자와 교사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곳이었는데요. 회사 사정 상 출판 업무를 하다가 행정 업무로 넘어가야 되는 상황이 닥쳤어요. 그러나 덕분에, 행사 운영과 현장 참여까지 경험하며 출판 구조부터 유통 전반, 실무적으로 이해하는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후에는 김포에 위치한 독립서점으로 기반을 옮겨 매니저이자 기획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어린이 및 지역 주민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죠.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출판사 관계자와 작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할 수 있었어요. 전시 연계 독서 프로그램 등에도 함께 참여하며 직접 어린이 프로그램과 성인들을 위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요. 현장 경험이 정말 넒게 확장되는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로컬 커뮤니티 운영을 시작한 셈이지요.
3. 평범한 하루 일과를 기술해주세요.
- 지금은 시작을 앞둔 모임들을 준비하며 이후에 이어갈 기획까지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들을 먼저 살펴보고, 참여자들과 어떤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를 준비해요. 참여자 중에는 이미 친분이 있는 사람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어서, 각자 무엇을 기대하며 이 자리에 오는지 가정해보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방향을 조정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어린이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함께 올 보호자와 참여할 아이들을 떠올리며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어떤 동선과 소품으로 조금이나마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지 세부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전체적으로 모임의 성격에 맞는 공간 연출이나 현장의 변동성 등을 고려해 여러가지 대안을 정리해두려고 해요.
4. 일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 즐거움은 한 사람의 크고 작은 변화의 순간을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점? 아이가 그림책을 읽고 스스로 표현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던가, 성인이 책을 읽으며 의지를 가지고 변화를 모색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그런 일상의 변화와 도전을 공유해줄 때 짜릿함을 느껴요. 제가 추천한 책을 접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더없이 기쁘죠.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공유되고 정교해질 때, 합치 될 때, 응원하고 지탱하는 존재들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느끼기도 하고요.
반면에 어려움은 이러한 활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운영과 행정, 홍보 등 보이지 않는 노동이 꽤 크게 들어가는데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해 나갈지 고민이 돼요.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큰 덩어리의 일도 필요하고요. 늘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동시에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과 관계를 다루는 감각이 서서히 숙련되는 즐거움도 배우게 된다고 느껴요.
5. 당신이 가진 신앙은 일과와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어려움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예) 구체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태도나 방식, 일터에서의 인간관계 등에 있어서 신앙은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 일터에서 경청과 속도 조절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계속 태도를 다듬어가고 있어요. 독서모임이든 어린이 프로그램이든, 참여자들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구조, 분위기를 먼저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하나는 연결을 지향하는 방식인데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참여자를 맞이할 때, '이 사람이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늘 질문해요. 그런데 제가 책방 일을 하며 사람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버려서요, 빨리 이 사람을 알아가고 나를 편안하게 느끼면 좋겠다는 욕심이 앞서 성급해지는 순간이 아직도 잦아요.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 안에 성도간의 연결'을 일터에서도 적용해보지요. '책이 매개가 된다면 우리는 계속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또 만나요", "책 친구"같은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인 것 같아요.
6. 교회/신앙 공동체가 일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어떤 영향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 대표적으로는 ‘환대’요. 책방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첫 만남의 환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새로운 분이 방문하면 미리 공동체가 그 사실을 알고 맞이할 수 있도록 공지가 올라오는데요. 단순히 새로운 누가 온다는 광고가 아니라,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마음을 먼저 보여주고 준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책방 일을 시작하고 초창기, 손님들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고 싶어서 기도했어요. 교회에서 성도님들을 환대하듯, 책방에서도 찾아온 사람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존재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이 태도는 제가 모임을 준비하고 기다리며 사람을 맞이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기존에 함께하는 선생님들께, 미리 오실 분을 소개하고 함께 기쁘게 맞이해달라 요청 드리기도 했고요. 자연히 관계의 어색함이 사라지기도 하고, 친밀함을 느껴 연결이 더욱 편하게 일어나기도 해요.
7. 위의 여섯 가지 질문에 답하며 떠오른 생각이나 개인적 느낌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 제가 일로 인해 붙잡고 싶어하는 태도들, 감각들이 결국 신앙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환대', '경청', '관계', '순환' 등 일터에서 실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분명해지는 질문들이었던 것 같아요. 믿음 생활은 제게 매우 중요해요. 다만 신앙이 세상과 분리된 채 존재하길 바라지 않아요. 신앙와 일상 사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들어오고, 건강한 사람과 삶들과의 관계, 언어로 채워지길 바래요.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해 관계를 맺기보다 또 닫힌 언어만을 고집하기보다 교회에서 배운 깊은 언어를 토대로 다양한 열린 언어 속에서 무엇을 내 언어로 삼을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Seidman(2006)이 제시한 심층면접의 구조(생애사적 질문/현재의 경험/의미에 대한 숙고)를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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