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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018년 7월 일상사연 - 교회는 봉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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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4,864 회
작성일 18-07-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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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봉사하러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서현이예요."

자신을 소개할 말을 찾는데 시간이 필요했는지, 서현(가명)씨는 찾잔을 꽉 잡은채로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요? 저에 대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요?"
"처음부터 너무 어릴 때로 들어가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소개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면 요즘 하시는 일 중심으로 말씀해주셔도 괜찮구요."
"서른 두살이구요, 아직 미혼입니다. OO시에 있는 제조회사 영업팀에서 일해요."

"구체적으로 하시는 일을 간단하게라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어…… 계약하기 전에 견적서 만드는 일을 해요. 또…… 우리 장비는 이런 스펙이고 저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라는 내용을 여기저기 물어봐서 취합하고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도 해요.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장비 중 외국 브랜드의 아시아 오피스에서 원하는 장비를 파악하는 일도 해요."

제가 기록하지 못한 서현씨의 이야기 중에는 좀 더 전문적이고 낯선 용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용어보다, 서현씨가 맡은 업무들이 갖는 공통점에 주목했습니다.

"말씀하시는 걸 듣다보니 회사 내의 의사소통, 혹은 정보취합과 전달을 주로 하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잘 이해한 건가요?"
"음…… 그런가요?"

서현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이 될만큼 기계를 좀 더 잘 알았으면 좋겠네요."

고개에 이어 어깨를 움직이며 서현씨는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진짜로 기계를 공부한 사람은 제가 있는 영업팀이 아닌 설계팀에 주로 있지만요."
"일이 어려울 때가 있으신가봐요?"

저는 서현씨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쳐지나간 것을 보고 그렇게 반응했습니다. 서현씨는 딱히 부인하지 않은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계속 배우고 있긴한데요…… 한계를 많이 느껴요.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그 말 말이죠? 알아요."

알다 뿐이겠습니까? 저 역시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비슷한 생각할 때가 많았으니까요. 잠시 제가 겪은 설움이 떠오르려는 순간 서현씨의 입이 다시 열렸습니다.

"가끔 생각해요. 내가 공대를 나왔으면 대기업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요."
"아쉬움이 크신가봐요."
"크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요, 그런게 좀 있긴 하죠. 그래도 지금 제 조건에서는 이 회사가 잘 들어간 직장이예요. 일이 좀 어려워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안자르고 계속 써줘서."

서현씨는 피식 웃었습니다.

"지금 일하고 계신 회사가 첫 직장이신가요?"
"그렇진 않아요."
"아, 그럼 전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아뇨. 앞의 직장에서는 관리팀 일을 했어요. 급여나 인사 쪽. 이직하면서 영업 쪽 일을 하게 되었는데, 뭔가 모르는게 부딪힌다 싶으면 그게 거의 다 기계쪽 일이었어요.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 많았죠."

30대 초반에 이직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은 전에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선택하기 마련인데, 서현씨의 이야기는 의외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직장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취업 여정
 
"대학생 때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했어요."
"대정부투쟁의 선봉에 서셨나요?"

서현씨는 제 시덥잖은 농담을 듣고 한 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습니다.

"아뇨…… 그런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해서 돈 버는 일에 관심이 없었죠.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나 여행 같은 것, 아니면 20대 때 대학 캠퍼스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 뭐 그런데 관심이 많았죠."
"아, 그럼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외국도 다녀오셨겠네요?"
"아뇨."

서현씨는 표정의 변화 없이 웃음 소리만 내었습니다.

"성향은 이상주의적이었는데요,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셔서 빨리 취업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관심만 가진채 결국 못갔죠. 마음 같아선 졸업도 미루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는데…… 어쨌든 졸업 후에 6개월간 회계학원을 다녔어요. '내일배움카드'라고 정부에서 구직희망자들 교육비용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돈은 거의 안들이고 학원다니며 회계자격증을 땄어요. 그리고 일 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대기업은 어려울거 같아서 조선계통 중소기업에 취업했죠."
"음…… 그렇군요. 그럼 졸업 후 6개월 자격증 공부한 후에 바로 취업이 된 셈이네요?"
"그런가요? 그렇긴하네요. 얼마 안가 회사가 망하긴 했지만."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서현씨의 한쪽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습니다.

"마지막엔 월급도 못받았죠."
"……."
"처음 일자리 구할 때 같이 면접 봤던 곳도 있었는데……."

제 난처한 표정을 즐겼던 걸까요? 서현씨는 말끝을 흐리며 제가 끼여들 틈을 일부러 만들어주었습니다.

"당시의 선택이 안좋은 결과를 낳은 거였군요."
"그럴 수도 있는데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도 그때 안가기로 했던 회사는 다시 피할 거 같아요. 면접관이 다 덩치 큰 남자분들이었는데요, 한 분이 팔에 기브스를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 회사에 들어가면, 그분이랑 같이 지방에 출장 다니면서 영어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분들은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지만 저는 솔직히……."
"솔직히?"
"무서웠어요. 기브스만 안했어도……."

서현씨는 자기 팔을 쓰다듬으며 웃었습니다.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들을 수도 있지만, 여성의 입장에선 아주 실제적인 공포였을 수도 있겠네요."
"어…… 당시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기브스 때문에…… 기브스가 너무 강렬했어요."

기브스를 피해 들어간 첫 직장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서현씨는 의외의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회사 망하고 월급 못받고…… 그렇게 나온 후에 대학원엘 갔어요. 제가 원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걸 공부할 기회가 생겼던거죠. 마침 그 학교에서 BK**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어요. 등록금이랑 연구지원비도 조금 받아가며 공부할 수 있었죠."

조선계통의 회사에서 일하던 서현씨는 지금 공작기계 제조회사 영업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공부 이야기는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서현씨의 이야기를 기다렸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느낀건요, 저는 제가 좀 창의적인 줄 알았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까 너무 평범하게 느껴졌어요. 어…… 그리고 이런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2년은 너무 짧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정말 창의적인 사람들 틈에 있다보니 '시간을 더 투자한다고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없어진거죠. 결정적으로 교수님들에게 너무 시달렸구요. 우연히 지인을 통해 지금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덥썩 물었어요. 어느 정도였냐하면요, 졸업논문 발표를 3차까지 해야 하는데 2차 발표하고 그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했어요."
"이런 말씀 드리는게 좀 불쾌하게 들리실진 모르겠지만……."

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다들 취업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취업 자체는 아주 쉽게 하신 거 같네요."

서현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 거죠. 나이도 많고 경력도 없었는데 잘 풀려렸네요. 그런데 그 대신이라고 하면 좀 뭐하지만, 소개해준 지인 없이 1년을 고생했어요. 매일 야근했죠. 기본적으로 일을 잘 모르는데다가, 회사에서도 사람을 구하다구하다 어쩔 수 없이 늦게 저를 뽑은 상황이어서 인수인계도 부족했어요. 처음 1년은 매일 욕먹고 야근하면서 고생했어요."
"아, 지인이 퇴사하면서 후임자로 서현씨를 소개해준 건가요?"
"아뇨."

서현씨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분이 아이 낳을 때가 되어서 출산휴가를 쓰셨거든요. 저는 출산휴가인 사람 대신 들어간거였어요."
"그러면…… 음…… 계약직으로 들어가셨겠네요? 그분이 복직하시면 퇴사하는 걸로……."
"그렇진 않았어요. 원래 그분이 혼자 많은 일을 맡아하셨어요. 지금은 저랑 일을 나눠서 하고 있어요. 저도 비정규직으로 들어가서 일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구요. 사람도 늘어나고 일도 익숙해져서 요즘엔 칼퇴근해요."
"일을 잘하셨나봐요."

서현씨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습니다.

"모르겠어요. 타이밍? 운? 으…… 은혜일까요?"
"그러게요. 아무튼 좋은 회사를 만나신거 같네요."
"처음에 9계월 계약하고 시작했고 나중에 4개월 연장했어요. 보통 비정규직은 계약기간만 쓰는게 당연한 분위기였는데, 처음부터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사실 전 4개월 연장할 시점에 다른 직장을 구했어요."
"오…… 역시 능력자!"(웃음)
"회사에 말도 했어요. (웃음) 그러니까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바뀌준데서 남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새로운 회사에 가는 건 복불복이라서…… 그러니까 옮긴 회사 사람들이 별로라거나 경기가 나빠지거나 일이 안맞거나 등 변수가 많잖아요. 지금 회사 분위기가 좋아요. 원래는 중소기업이었는데 미국회사에 인수되면서 분위기가 합리적인 편이거든요."
 
#도태의 두려움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세요?”

저는 의자를 고쳐 앉으며 물었습니다. 서현씨는 다시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6시 반에 일어나서 씻어요. 집이랑 회사가 가까워서 7시 50분쯤 출발하면 8시 10분쯤에 도착하구요. 8시 30분부터 업무 시작하면 일하죠. 견적서 뽑고 등등. 12시 30분부터는 한 시간 동안 점심식사 시간이구요. 5시 30분이 퇴근시간이예요.”
“오전 여덟시 반부터 오후 다섯시 반까지, 점심시간 제외하고 딱 여덟 시간이네요. 퇴근 후엔 뭘 하세요?”
“요즘은 취미활동을 하고 있어요. 전 같으면 집에 가서 그냥 놀았을텐데…… 미술이랑 사진을 배우고 있어요.”

미술과 사진을 말할 때 서현씨의 눈빛에 생기가 감돌았습니다.

“원래 그런 쪽을 좋아하셨나봐요?”
“그런것도 있구요…… 대학원 2년 동안 충분히 못배운 거 같아서? 아무튼 우리교회 다니는 분 중 미술학원 하시는 분이 있어서 거기 가서 유화 배우고 있구요, 올 상반기는 사진도 배우고 있어요. 오늘도 인터뷰 마친 후엔 사진 모임이 있어요.”
“이런! 바쁘신 분을 제가 붙잡고 있는거네요.”

서현씨는 손사례를 쳤습니다.

“애인이 없어서 빈 시간을 취미로 메우고 있는거죠. 제가 그리고 하고 싶은게 많아서 이것저것하는 스타일이예요. 요즘엔 살이 너무 쪄서 취미활동을 좀 줄이고 헬스를 하고 있어요. 금요일엔 교회가니까, 나머지 평일 저녁 중 2, 3일은 취미 활동하는데 써요. 야근하던 때는 집이랑 회사만 반복해서 오갔어요. 9시 넘어서 퇴근했으니까.”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계시네요.”
“그런 셈이죠. 야근하던 때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TV 좀 보다가 잠드는게 거의 다였죠. 요즘엔 저녁시간을 쓸 수 있어서 취미활동을 하고…… 애인이 있었으면 데이트를 했을텐데…….”

서현씨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습니다. 저는 마주 웃으며 물었습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애인 없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하셨어요. 혹시 자기도 모르게 내면의 갈망이 표출된 건가요?”
“요즘 주위 사람들이 결혼 한다고 연락을 많이 해와요.”

큰 기대 없이 장난스럽게 물었는데, 서현씨는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연락 받을 때마다 전…… 결혼이 늦어지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도태, 도태되는 느낌? 요즘 부쩍 지인들 결혼 소식을 들으면서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결혼을 필수라고 생각하시나봐요?”
“네,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주위를 보면, 결혼생활이란게…… 그걸 겪으면서 인간이 되어가는 것같더라구요. 그래서 결혼을 하긴 해야겠고…… 그걸 못하게 되어 도태될까 걱정되요. 인격이 미성숙할까봐.”

서현씨의 이야기는 무척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거 같아요.”
“그냥…… 주위에서 보고들은 것들에 영향을 많이 받았겠죠? 나이가 오십대인대 아직 결혼 안한 사람을 결혼한 사람과 비교해보면 떠오르는 느낌 같은게 있잖아요. 그리고 오빠랑 새언니가 사는거 보면서 좋은거, 싫은거 다 보면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걸 옆에서 많이 느껴요. 그래서…… 물론 제 편견일 수도 있지만…… 결혼이란게 사람되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에서 필수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결혼 안한 사람을 도태된 것처럼 생각하게 된거죠. 어딘가 문제가 있는…… 실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될까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혼기(婚期), 혹은 결혼적령기를 넘긴 사람을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서현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태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정상가족’을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시선을 갖기 쉽습니다. 한데 서현씨는 다른 이유로 ‘도태된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말씀 듣다보니 서현씨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바꿔말하면 인격의 성숙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네요. 인격성숙이 서현씨에게 중요한 주제인가봐요?”
“맞아요. 그렇다고 제 인격이 뛰어나다거나, 맞는 방향으로 가고있다거나 그런건 아녜요. 아직 깡깡 멀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생 때처럼 빡칠 때가 있어요. 어릴 때처럼 그걸 다 표출하진 못하더라도, 조금씩 드러나요. 더 나이들고 노련해지면 감정 컨트롤을 좀 더 잘 할 수 있겠죠? 예의를 잃지 않고 잘 풀어서 말할 수 있는……. 일하면서 스스로 느끼는게, ‘아직은 상사와의 소통, 다른 부서와의 소통할 때 부족한 점이 있다’라는 거요. 노련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서현씨의 말을 듣다보니 그가 생각하는 결혼과 인격성숙, 그리고 거기 이어지는 것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인격성숙과 노련함을 연결하는 것이 흥미롭네요. 전반적으로 감정조절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왜 그런가요?”
“가정 환경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아빠를 무서워했어요. 아빠가 욱할 때 무서웠죠. 그런데 저도 비슷해요. 무서워하면서도 맞서 싸웠죠. 집에서 가족들한테 함부로하면서 그게 밖에서도 드러난 거 같아요. 회사에서도 한 번 지적 받은 적이 있었어요. 금요일 저녁에 교회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온거예요. 일 시키려구요. ‘지금 못해요!’라고 대답했죠. 나중에 상사가 그때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어요.”

“금요일 퇴근 후에 그런 전화를 받은 서현씨가 더 기분 나빠야 하는거 아닌가요?” (웃음)
“감정의 흐름대로만 일을 하면 안되니까요. (웃음). 교회 봉사하면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요. 저게 방송실에 있는데, 방송실은 되게 빠릿빠릿해야 하거든요. ‘화면 보내주세요’하면 바로 버튼 눌러야 하죠. 그런데 같이 하시는 분 중에 나이 좀 있는 아저씨는 ‘화면 보내주세요’하면 한 템포 늦게 눌러요. 거기에 제가 좀 빡쳤어요. ‘제대로 하셔야요!’, ‘빼시라구요!’, ‘넣으시라구요!’ 목소리가 점점 목소리 커졌어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제 상태를 자각하면 ‘이게 노처녀의 히스테리인가?’하는 두려움이 들어요. 점점 더 히스테리컬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요. 물론 결혼으로 다 해결될 거라곤 저도 생각하진 않아요. 저는 아무튼 그런 감정……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에게 많이 부족한 부분이거든요.”

결혼과 인격성숙, 감정조절의 연결고리는 서현씨의 자기성찰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데 신앙공동체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묻기로 결심했습니다.
 
#교회는 봉사하러
 
“주중에 어떻게 사시는지는 아까 대강 들었는데, 주말은 어떻게 보내세요?”
“주말엔 누워서 쉴 때가 많아요. 애인이 없으니까요.” (웃음)
“아, 애인이 없어서…….” (웃음)
“친구 만날 때도 있구요…… 아, 그리고 특이한 봉사를 해요. 교회 영어예배 설교를 3년째 번역하고 있어요. 보통 서너 쪽 분량인데, 토요일에 그걸 번역하구요 약속 있느면 밖으로 나가요.”
“그것도 돈 주고 맡기려면 단가가 꽤 높지 않나요?”
“한쪽 당 시세가 3만원이예요.”
“시세대로하면 주말마다 십만원쯤 헌금하시는 셈이네요?”

서현씨는 잠시 웃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예전엔 주일이면 하루종일 교회에 있었는데요, 요즘엔 두시 반부터 네시 반까지 있는 영어예배만 참석하고 있어요. 사실 지금 교회에 나가는건 봉사하러 가는거예요. 금요일에 교회가는 것도 금요철야 때 방송실에 사람이 없어서 가는거예요. 영어예배도 사람 구해달라고 말은 해뒀는데……. 주일에는 영어예배시간만 교회에 있고 나머지 시간엔 집에 누워있어요. 누워서 인터넷으로 OOO 목사님 설교를 들어요.”
“…….”
“한 교회에 오래 다니고 봉사하다보니 목사님들의 약점, 담임목사의 괴팍함…… 그런 것들이 다 보여요. 우리 교회 별명이 ‘교역자의 무덤’이라는 것도 알게 되구요. 편견이 안생길 수가 없죠. 교회가 무리하게 건축을 했어요. 헌금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그게 다 건축 때문인 것처럼 보이고, 장로·집사 선출도 다 돈 때문인 것처럼 보여요. 자질이 안되는 사람인 것 같은데도 중직자로 세우니까요. 그리고 전도 이야기를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이유도 같은 걸로 보이구요.”

오늘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기면서 저는 말줄임표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서현씨의 이야기가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이자 말과 말 사이에 감춰진 그의 고민을 표현하는 장치로 말줄임표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이야기가 나오자 서현씨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쏟아내었습니다.

“설교를 듣다보면 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우리가 영적으로 풍성해야 하지만 물질적으로도 풍성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죠. 저는 그 부분 들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성경구절을 많이는 모르지만, 성경에는 돈이 많건 적건 만족하며 사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는 목사님이 그 설교하시는 걸 듣고 ‘맛이 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곤 인터넷으로 OOO 목사님 설교를 듣기 시작했죠.”

“그러면 앞에서 말씀하셨던 일상의 고민들을 다루는데는 신앙공동체가 별반 도움이 안되겠군요.”

“일단 교회를 잘 안다니고 있죠. 몸이 안가는건 아닌데, 그냥 봉사하러 왔다갔다하는거니까. 그리고 설교는…… 영어설교 번역하긴하는데 번역하면서도 설교의 요지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나마 OOO 목사님 설교는 은혜가 많이 되는데요, 정작 제가 공동체에 속해서 뭔가 하는게 없느니까, 도움이 되고 말고 할 것도 없죠.”

“혹시 ‘가나안 성도’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아뇨. 그게 뭔가요?”
“단순하게 말해서, 그리스도인로서의 정체성은 자각하고 있으면서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 신앙 색체를 가진 사람들이예요.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 잖아요.”
“아, 딱 제 이야기네요.”

서현씨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무엇이 서현씨를 가나안 성도로 만들었을까요?”
“음…….”

서현씨는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가 설교번역으로 봉사하는 영어예배 시간과 청년부 예배시간이 겹쳐요. 일단 시간을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되요. 그리고 그 시간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주로 가까이에 있는 대학교 교환학생, 그 학교 소속 영어강사들인데요, 거기 더해서 영어공부하려고 온 애들도 앉아 있어요. 그런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힘들여 영어예배를 진행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영어예배를 드리면 아이들이 영어배우려고 올테니 한 번 기획해보라는 류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교회에 떠돌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니 교회가 맛이 가네요.”

서현씨는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일생사연>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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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워킹 홀리데이 협정 체결국 국민들이 상대방 체결국을 방문하여 일정 기간 동안 관광과 취업을 병행함으로써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하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며, 여행 전, 출발 국가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발급 받아서 출국을 한다.” - 위키백과, “워킹홀리데이” 항목
 
** “BK21(Brain Korea 21) 또는 두뇌한국 21은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과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석ㆍ박사과정생 및 신진연구인력(박사후 연구원 및 계약교수)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고등교육 인력양성 사업이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약 3조 5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세계수준의 우수대학원을 양성하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2단계 사업이며, 74개 대학 568개 사업팀을 선정하였다. 현재는 BK21플러스라는 3단계 사업이 진행중이며, 기간은 2013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로 7년에 걸쳐서 진행되고 있다. 보통 언론보도등에서는 약칭인 BK21을 주로 사용한다.” - 위키백과 “BK21” 항목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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