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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018년 2월 일상사연 -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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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18-02-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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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홍정환 연구원


지난 달 “새로운 연구지가 온다”에서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범위가 넓습니다. 최소한의 범위를 설정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중구난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동료들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의논한 끝에 올 한 해 집중해서 만날 사람들의 범위를 대략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여성’입니다. 올 한 해 이 코너는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여성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일과 믿음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정리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만 32세의 워킹맘 무민(가명)씨입니다. 무민씨를 만난 날은 몹시 추웠습니다. 인터뷰이가 되어달라고 처음 부탁했을 때 무민씨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요청했습니다. 고민 끝에 신중하게 인터뷰를 수락한 무민씨와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저는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스마트폰 메모장에 정리해둔 예상 질문을 다시 보고 다듬었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작은 체구에 명민한 눈빛이 인상적인 무민씨가 도착했습니다. 무민씨는 “제가 인터뷰하러 나간다니까 남편이 사람 잘못 골랐다고 놀렸어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했던 90분을 훌쩍 넘긴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민씨는 지금 해양 분야 벤처 회사의 기술영업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해외나 국내 고객을 상대로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으며, 계약이 체결되면 일정에 맞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고객의 클레임을 접수해서 제품 제작에 반영하는 것도 무민씨의 일입니다.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도 해외 영업 쪽 일을 맡아 해왔다는 무민씨의 업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저는 무민씨에게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의 직업을 갖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물었습니다. 무민씨는 듣기, 말하기, 글쓰기 등의 언어 능력(외국어)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제대로 된 회사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저는 “글쓰기는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요?”라고 물었고, 무민씨는 친절하게 “전화나 대면해서 소통하는 경우도 많지만, 해외 고객과 주로 소통하는 방법이 이메일이거든요. 그리고 모든 회의는 기록을 남겨야 하죠. 당연히 글쓰기 능력이 중요해요”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무민씨는 대학에서 여성이 잘 선택하지 않는 ‘항해’를 전공으로 선택해 공부했습니다. 무민씨가 선택한 전공학과 졸업생의 일반적 진로는 선박을 운행하는 항해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무민씨가 재학하던 당시에는 정원의 10%만 여학생을 뽑던 학과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여학생을 적게 뽑는 학과였던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숫자가 적으니 취업에 유리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졸업 후 상선의 항해사로 취업하는 것이 항해전공의 일반적인 진로였는데, 여성 항해사는 T/O 자체가 적었습니다. 한해 졸업하는 여학생 수는 60명이었는데 현대, 한진, STX 같은 회사에서 매해 뽑는 여성 항해사는 6~7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반드시 배를 타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성적이 좋은 사람이라야만 배를 탈 수 있었죠. 저는 그렇게까지 배를 타고 싶지는 않았어요.”


무민씨는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졸업하고 처음으로 취업한 곳은 항만 터미널 운영회사였어요. 부두에서 크레인이 컨테이너 옮기는거 본 적 있으시죠? 그런걸 운영하고 관리하는 회사였어요. 본사가 홍콩에 있는 외국계 회사라서 영어 실력이 중요했죠. 제가 영어 성적이 좋았거든요. 그리고 그 회사에 우리 학교 출신을 선호했어요. 항해 전공이랑 직접 연결은 안되더라도 항만해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게 나름 장점이었던 거죠.”


첫 직장에서 일하던 무민씨는 선박관리회사로 이직하였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직장에서 1년쯤 일하던 무민씨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끼어있는 삶


“해외 출장이 너무 자주 있었어요. 그때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죠.”


두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한 무민씨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결혼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 위한 고민이었습니다. 무민씨는 초등학교 교사라면 자신의 고민에 적합한 대답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약 2년 동안 준비해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치고 교육대학교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무민씨가 대학에 진학하던 때와 입시제도가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수시 전형이 확대되어 정시로 갈 길이 좁아져 있었습니다.


무민씨는 진학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해양분야는 아니었지만 무민씨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해외에 자동차 금형을 납품하는 회사였습니다. 무민씨는 그곳에서 3년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무민씨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때쯤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출산휴가를 쓰고 복직했죠. 그런데 복직해서 돌아오니 다른 동료들은 승진하고 급여도 인상되는데, 저는 그게 안되는거예요. 많이 서글펐어요. 음…… 서글프다…… 생각하면서도 회사는 계속 다녔죠.”


그렇게 일하던 무민씨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라고 승진도 안시켜주는데다 월급까지 밀리기 시작하자 무민씨는 더 이상 이 회사에 다닐 이유가 없겠다 싶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몇 개월 동안 육아에 전념하였고, 작년 12월부터 새로운 직장을 구해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민씨의 직장 생활이 흔들리는 지점 마다 ‘성별’이 지렛대처럼 작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민씨는 결혼을 앞두고 해외 출장이 잦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임신/출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반복된 좌절을 경험하셨는데, 솔직히 어떤 기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무민씨는 아랫입술을 잠시 깨물고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졸업하고 배 탄 친구들 중엔 벌써 선장을 바라보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친구는 언론에서 기사로도 나왔죠. ‘한국에서 여자 선장 나오나?’ 이런 제목의 기사……. 그 친구가 항해사로 일하는 곳은 한국 선박회사는 아니고 해외 선박회사예요. 배 타는 친구 말고도 다른 방면에서 프로페셔널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요, 공통점이 다들 결혼을 안했다는거예요.”


무민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습니다.


“저는 결혼을 좀 빨리 한편이예요.”

“일찍 하셨다면 몇 살에?”

“스물 여덟에요.”

“아, 요즘 분위기에선 일찍한 거 맞네요.”


“그렇죠, 가끔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어요. 나는 끼어있구나. 전통적인 여성, 그러니까 가정을 잘 꾸리고 아이를 잘 키우며 사는 전통적인 여성과 거기 대비되는 현대적인 여성,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살고 커리어를 추구하는 현대여성이 있다면 나는 그 사이에 끼어있다는 느낌을 받죠. 내 커리어를 포기하고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사와 육아를 포기하고 내 커리어와 사회적 역할을 추구하지도 못하고……. 힘들게 두 개를 잡고가다보니 둘 다 잘 못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서글픈…… 서글프면서도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라는 생각…… 그렇습니다!”


무민씨는 흩어지던 말끝을 서둘러 매듭지었습니다.


“사실 저도 지금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친정 엄마가 애를 봐주기 때문에 가능해요. 저보다 더 좋은 스펙이나 커리어를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애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그 커리어를 가지고도 일 할 수 없는거죠. 어느 기사에서 ‘친정엄마 치트키’라는 말을 봤는데요, 정말 많이 공감했어요.”


무민씨의 눈빛은 아련했습니다. 무민씨의 고충을 들으며 저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런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니 끼칠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공동체(1) - 서포터즈


“뜬금없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다루는데 신앙이 도움 되나요?”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확 틀어버린 제 질문에 무민씨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음…… 직장에서는 내가 월급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해요. 그러려면 되게 많이 노력해야 해요. 직무 내용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저는 이직을 여러 번 해서 새 직장에 들어갈 때마다 공부해야 하죠. 이게 되게 힘들어서, ‘나는 아직도 지혜가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크리스챤이라는게 위로가 많이 되요. 회사에서는 내가 가치있다는걸 애써 증명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나를 못나도 이쁘다 하시니까요.” 무민씨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냉혹한 현실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죠. 육아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이잖아요. 결혼도 처음이고 엄마 된 것도 처음이예요. 그럴 때마다 ‘내가 지혜가 부족하다’, ‘아는게 참 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아, 그리고 공동체…….”


무민씨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공동체의 도움을 되게 많이 받아요. 육아에서 막막하고 어려울 때 교회 공동체의 다른 엄마들이 충고나 조언, 그리고 위로를 많이 해줬어요. 거기다 실제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줬구요.”


“실제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혹시 최근에 경험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 질문에 무민씨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번에 옮긴 직장은 차로 가기는 편한데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되게 불편한 곳이예요. 그래서 차를 사서 운전을 시작했어요. 10년된 장롱면허증으로 운전을 시작한거예요. 처음엔 되게 무서웠어요. 그런데 처음 며칠 동안 우리 교회 식구들이 저랑 출퇴근을 같이 해줬어요.”


“출퇴근을 같이요? 궁금하네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목사님 부부가 아침에 저랑 같이 출근을 했어요. 사모님이 조수석에 앉아 저를…… 연수시켜주셨구요, 목사님은 뒤에서 자기 차로 따라오면서 다른 차들을 방어해주셨어요. 회사에 도착하면 사모님은 목사님 차 타고 돌아가셨구요. 퇴근할 때 그걸 똑같이 하셨어요. 목사님 부부가 다른 일로 그렇게 못하신 날이 있었는데, 그땐 교회에 다른 형제가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와서 제 차를 타고 우리 회사까지 가줬고, 자기는 택시 타고 갔어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거 정말 희한한 광경이네요. 회사 동료들은 그걸 못봤나요?”


“봤죠. 회사 사람들도 좀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매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출근하느냐고 물었죠. 상황을 설명해주니까 ‘진짜 열렬한 서포터즈다’라고 말했어요.”


“말 그대로네요. ‘열렬한 서포터즈.’”


“고맙죠. 정말로. 어떤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되게 멀리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교회 공동체 분들이 눈에 보이는 그런 도움을 줬어요. 그분들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들이라서 내게 그런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하나님이란 존재를 생각하는게 하드한 워킹맘의 삶을 심리적으로 견디게 해준다면, 공동체는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죠. 자동차 금형회사에서 출산하고 복직했을 때, 여자라서 승진 밀리고 그만두곤 많이 낙심했어요. 제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출산 휴가를 쓴 건…… 나는 출산을 함으로써 이 사회에 기여했는데 회사에서는 불이익을 줬다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낙심되었어요. ‘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안되는구나. 내가 여자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안되는구나…….’ 이런 생각 때문에,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정말 우울했어요. 그런데 미술을 전공하신 사모님이 1주일에 한 번씩 무료로 과외를 해주셨어요. 그림 그리면서, ‘이 분이 나한테 이렇게 시간을 내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경험한 일이라고 하면 되게 많았어요. 교회 공동체로부터 얻는 도움이 되게 큰 것 같아요.”


“이거 인터뷰 방향이 특정 교회 홍보로 가버릴 수도 있겠는데요.” 저는 웃으며 다음 질문을 던졌습니다. “무민씨는 열렬한 서포터즈가 되어준 공동체 식구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공동체의 서포트를 못 받는 사람이 훨씬 많은게 현실인데요…….”


“저는,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결혼하면 퇴사하기로 합의하고 직장생활 시작하는 여자분도 있고요, 저보다 안좋은 사례는 되게 많아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딜까? 나는 진짜 겨우 하나님 믿고 주위에서 도와주니까, 겨우겨우 힘내서 다시 한 번 사회에 발 딛고 살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무민씨는 자신이 경험한 또다른 공동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공동체(2) - 모범답안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에서 N 선교단체(이하 “N”으로 표기)에 가입했어요. 학교에서 만난 언니가 N에 가입할 걸 권했고, 거기서 성경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려 했던 것이 되게 좋았어요. 누가 내 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듯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았구요. N에선 결혼은 하나님이 정해준 사람이랑 해야한다고 가르쳐서 대학시절에 연애 한 번도 안해봤어요.”


무민씨는 유독 크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남자도 안사귀고 술도 안마시고…… 친구들이 수녀라고 놀렸죠. 방학 때도 집에 안가고 N에서 공동생활했어요. 학기 중엔 남자도 안만나고 맨날 공부만, 방학 땐 교회 언니랑 같이 살고…… 이랬으니 친구들은 제가 빨리 결혼한다는 거 듣고 되게 놀랐어요. 우리 과는 10%만 여자라고 말했잖아요. 이건 어떤 의미냐하면, 졸업할 때까지 최소 3회 이상 남자들한테 고백 받는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저는 진짜 많이 받았죠.”


“오~ 대단하십니다.”


우리는 크게 웃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번도 안만났어요. ‘아직 때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알아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나 했죠. 지금 생각하면 진짜 부끄러워요. 그때 저도 교회 다니는, 좋아하는 오빠가 있었는데 N에서 때를 분별해야 한다고 해서 혼자 끙끙거렸죠.”


“보통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말 안 듣고 암암리에 연애하고 그러지 않나요? 대학 내내 N에서 생활하시고,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연애 안해봤다니, 여러가지 의미로 모범생이셨네요.”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 하면서도 N에 참석했어요.”

“헛! 정말 대단하시네요. 거기 있다가 지금 교회로 옮긴 거네요?”


“네. 기도하고 큐티하고 사는 삶은 잘 배웠는데, 기독교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 사회를 바라보는 걸 거기는 안했어요. 그냥 일반 사회에 관심이 없었죠. 직장 생활을 하며 생긴 고민을 이야기하면 해결이 안되요. 이야기하면…….”


“기도해보자?”

“‘말씀을 찾아보자’라고 했죠.”


우리는 다시 웃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게 되게 복잡하고 복합적이잖아요. 성과 속을 딱 잘라 나누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그런 모호함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런데 N에서 가르치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 단순해서 답답했어요.”


“일상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모범답안을 내놓는…….”


“그렇죠. 대학 때 그 많은 고백을 거부하고 취업했잖아요. 전 화목한 가정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빨리 결혼하고 싶었어요. 자상한 남편 만나서 애랑 화목하게 어디 가고 싶은 생각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하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 뭐 그런 말씀을 답으로 제시했었죠.”


무민씨는 예전엔 그런 성경구절을 열심히 암송했는데 지금은 거의 까먹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웃었습니다.


“N에 있을 때는 정치에도 무관심했어요. 데모하는 것도 나쁘게 생각했구요. 지금 교회 목사님 만나면서 그런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부끄럽지만 대선 투표를 처음한게 MB가 대통령이 되던 때였어요.”


“그때가 대학생 때였나요?”

“아뇨. 졸업 후. 대학생 땐 안했어요.”

“그렇군요. 그 앞 대통령 선거 때 대학생 대상으로 투표 참여 캠페인 엄청 많이 했었는데…….”

“무관심했어요. 음…… 그 뭐죠? 돼지 저금통?”

“희망돼지?”


“네, 희망돼지 했다는 기억 정도만 있어요. 아무튼 그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직장이 서울에 많잖아요. 특히 제가 배운 것…… 학교에서 항해 말고도 해사정책, 해사경영 등을 배웠는데 그 지식을 바로 써먹으려면 선박회사 운항팀에 가야 해요. 그게 다 서울에 있었어요. 제 친구들은 그때 다 서울에 가서 커리어 우먼으로 살고 있어요. 그런데 N에서 ‘교제권 안에 있어야 한다’, ‘너는 교제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더 배워야 한다’, ‘꼭 부산에서 취업 해라’ 그런 이야기를 엄청 들었죠. 그래서 부산에서 어렵게어렵게 직장을 구했어요.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동기들 중에서 제일 늦게 취업했죠. 급여도 친구들보다 낮았어요. 부산에서 좋은데 취업했다 쳐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크니까요. 그렇게 취업을 했는데 일이 적성에 안맞았어요. 고민을 이야기하면…… 들어는 주지만 답은 없었어요. 일터에서 부딪히는 문제보다는 어떻게 일꾼을 배가할 것인가(웃음)에 관심 가졌던 거 같아요. 그분들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일꾼을 배가시킬 것인가에 관심 가졌던거죠. 저는 당장의 직장 문제가 고민이었는데요. 고민이 깊어지면서 점점 안나가게 되었죠.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면서 전혀 자유롭지 않았어요.”


무민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 N에서 경험한 것들…… 모호한 일상의 고민에 준비된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것, 개인을 조직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그야말로 일반적인 한국교회의 모습 아닌가?’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성역할에 대한 가르침도 비슷한 분위기였어요. 거기선 여자의 역할을 ‘돕는 베필’(창 2:18)로 규정했어요. NIV에선 ‘helper’라고 되어 있잖아요. ‘하와는 아담을 돕는 자다, 그러니 자매는 형제를 잘 도와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결혼해서 아이 낳고 양육하는게 여성의 사명이라고 배웠어요. 처음에는 거기에 반발심은 없었어요. 지금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그런 관점이 전부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는 N에서는 ‘여자가 자기 커리어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사명이고 비전이다’ 라고 가르쳤어요. 대놓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당시 N의 자매들은 다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 가르치고 아이 키우고…….”


무민씨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는 여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잖아요. 기껏 나와도 에스더는 왕비고, 룻은 보아스한테 시집가버렸고(웃음)……. 헬퍼로 살면서도, 자식을 낳고 양육하는 삶 이상이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했죠. N에서 가르친 여성의 삶이 다가 아니라면 그 이상의 이야기를 내가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한거예요. 그게 제가 워킹맘을 고집하는 이유예요. 딸에게 롤모델이 되어주고 싶어요. 여자로서 자식 낳고 기르는 모델은 많은데…… 너무 다양성이 없지 않나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싱글이고(웃음). 잘 모르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떠나 내 삶을 의미있게 이끌어가는 걸 딸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무민씨 이야기 듣다보니 제가 딸이랑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딸이 일곱살 때 쯤 일인데요, 아이들한테 성경동화를 읽어주는데 듣고 있던 딸이 묻더라구요. ‘성경에 왜 여자 이야기는 별로 안나와?’ 전 뭐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거든요. 다행히 작년에 <하나님이 내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성경 속 믿음의 여인 이야기>(IVP, 2017)라는 책이 나와서 교회 어린이들 모두에게 읽어주고 있어요.”


미소 띈 얼굴로 제 이야기를 듣던 무민씨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습니다.


“전 원래 제가 여자인게 싫었어요. 여자라서 남자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은 경험이 많았거든요. 대학에서도…… 제가 다닌 학교는 군대 같은 분위기였어요. 거기서 ‘여자인척 하지 말고’ 이런 말 진짜 많이 들었어요.”


“아니, 여자인데 여자인척 하지 말라니…….”


“훈련 중에 엎드려뻗쳐 자세 같은 거 할 때 힘들어 하면 그런 말 했었죠. 아무튼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여자는 약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생각이 제 내면에도 되게 깊이 자리 잡았던 거 같아요. ‘내가 남자였으면’하는 마음도 있었구요. 그런데 아기를 낳고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임신과 출산 자체도 무척 힘든 일인데, 무민씨는 출산 후 회사에 복귀하며 불이익을 받은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기를 낳고 생각이 바뀌었다니, 무슨 의미일까요?


“전 원래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예요. 그런데 아기에 대해서 만큼은 나보다 아이가 우선이 되더라구요. 내 몸이 지치고 힘들어도 새벽 2시에 아기가 울면 젖 먹이게 되는거죠. 아기 낳기 전에 저는 내 몸 불편한 건 절대 못 참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아기를 위해서는 불편한게 아무 것도 아닌게 되버렸어요.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죠. ‘아, 엄마가 된다는건 이런 거구나. 자연스럽게 이타적이 되는구나. 이건 되게 위대하다!’ 수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이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존재가 되는거죠. 전 그게 하나님이 디자인한 신비한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해요.”


무민씨는 눈을 빛내며 봇물 터진듯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원래 제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는 말씀을 별로 안좋아했어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시니 어떻게든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되게 부담스러 거죠. ‘아, 싫다’ 그런 느낌? 그런데 아기를 낳고 나서 그렇게 사는게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베이스가 있으면 십자가를 자연스럽게 지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거예요. 내가 아기를 낳고 나보다 이 애를 먼저 생각하듯, 십자가를 진다는게 사랑이란걸 깨달은 사람에겐 자기 십자가 지는 일이 어렵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정말로 큰 사랑이잖아요. 그런 사랑의 메커니즘이 보편적인 여성의 삶에 녹아있다는게 너무 놀라워요. 그래서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아주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어요. 물론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지원은 부족하지만, 여성이 아주 위대한 존재를 깨달았으니까 이런 걸 말하고 다녀야겠어요.”


무민씨의 웃는 얼굴을 보며 저는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말하고 다니실건가요?”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 안식월가시면 목자들이 설교하거든요. 자연스럽게 남자들만 설교해요. 그런데 여자 동생이 ‘왜 여자 목자들은 설교 안해요?’라고 물었어요. 동생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더 자극 받은 거죠. ‘올해 목자들이 설교하면 나도 해봐야겠다. 여자 목자도 설교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만약 하게 된다면 성경 속 여성의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N에 있을 때 ‘사도행전 29장은 니가 쓰는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성경에 여성 이야기가 많이 없다. 그러면 내가 쓰자.’ 성경에 위대한 업적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다윗만 봐도 하나님과 동행한 내용도 있지만 그 길을 벗어나 고초를 겪은 이야기도 있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버리지 않는 분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모험을 떠나는 것 자체가 중요해질거라고 봐요. 그 모험의 여정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무민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적잖이 감동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옴직한 반론이 하나 떠올랐다. 모성애를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것은, 남여의 성역할을 지금 상태로 고착시키려는 남성의 전략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무민씨는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몰라요. 굳이 저처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구요. 분명한 건 저 개인은 모성애가 강한 편이라는 거예요. 그게 싫지 않아요. 내 안에 있는데 그걸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 경우 아기 낳고 출산휴가 쓰고 복직하면서 불이익을 당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무민씨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아기를 낳고 크는 것을 보며 누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어요. 그 존재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걸 느끼기 때문에, ‘내가 이런 애를 낳았구나. 내가 위대한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요. 물론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위대한 사명인 것은 맞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은 해요. 그저 제 경우엔 그렇다는거죠. 아이를 낳을 때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어서 정말 아팠어요. 자궁이 열릴 때까지가 엄청 아프거든요. 그때 너무 아픈데 사랑장(고린도전서 13장)을 암송하면서 참았어요. 아기가 나왔을 때, 제 가슴에 얹혀주는데 너무 행복하고 감격적이라서 막 울었어요. 그 행복했던 것을 막 이야기하면, 다른 여성들이 100% 공감하지는 않았지만요. ‘수술해서 눈떠보니 아프더라’ 이런 분도 있구요(웃음). 반면 전 아기가 너무 예뻤죠. 자라는 걸 보면서도 ‘사람이란 존재가 이렇게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닿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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