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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 6.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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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247 회
작성일 11-09-2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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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부산대․금정점] / 요약 : 정한신

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IVP, 1998

정사와 권세

6. 직업

우리의 직업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 드는 정사들(principalities) 중 하나이다.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직업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해서 일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일은 충만한 인간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창조 이야기는 사람이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말해 준다. 모세의 율법에도 일에 관한 법들이 많이 들어 있다. 예수님의 비유 역시 일과 일꾼들 문제를 자주 다룬다.

일할 필요와 권리는 우리 사회의 기초이다. 종교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노동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좋고 필요하다는 말이 아무 위험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직업, 일, 노동은 우리를 노예로 삼을 수 있는 잠재력, 다른 말로 권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직업의 피해자, 일의 포로가 될 수 있다.

시간 요구

모든 직업은 일정한 양의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기업주나 경영자들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일 중독자가 될 수 있다.

사람을 돌보고 도와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중증 일 중독자들이 많다.(간호사, 의사, 사회 사업가, 목사, 변호사들 등)

우리 역시 일에 너무나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쏟다가 급기야 일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일차원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직업은 시간 전체를 다 빼앗음으로써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

정력 요구

직업 소진(job burnout)이라는 용어가 있다.

직업은 시간뿐만 아니라 정력 또한 바칠 것을 요구한다. 소진 현상은 의료, 사회 복지 사업, 법률 계통 같은 직종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지만, 소진 현상이 생기지 않는 직업은 거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근로자가 일에 자신의 모든 관심과 정력을 다 빼앗기면 소진 현상이 생겨날 수 있다.

크리스티나 매슬라쉬는 직업 소진 현상을 세 단계로 묘사했다. 첫 번째 단계는, 정서적 소진 상태 즉 감정이 메마르고 바닥이 나서 더 이상 줄 것이 없어지는 상태이다. 두 번째 단계는 냉소감 상태인데, 사람들에 대해 마음이 무감각해지며 '더 이상 사람들로 인해 지치지 말자'는 태도이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며, 그 동안 해 온 모든 일을 다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소진 치료에 대해서는 첫째, 자신이 하고 있는 직무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정력 고갈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직무의 재조정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만일 직무가 재조정될 수 없다면, 계속적인 고갈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잠시 작업장을 떠나 친구와 커피 한 잔을 하거나 다양한 장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무언가 활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새로운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좋다.

한편, 소진 치료가 정력 고갈을 막는 것이라면, 그 예방은 일에 대한 정력 소비에 미리 한계를 두는 것이다. 우리의 직업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우리가 지금 어느 정도 정력을 고갈시키고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직업이라는 정사는 우리의 정력을 완전히 고갈시킴으로써 우리를 사로잡아 파괴시킬 수 있다.

충성 요구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필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조직체에 소속되기 위한 조건들 중 하나는 그 조직체에 충성을 서약하는 것이다.

문제는, 직업이 갖는 힘은 악마적일 수 있고 또 실제 때때로 악마적이기에, 인간의 충성을 완전히 독점하려 든다는 점이다. 오직 직업에만 충성을 바칠 때, 우리는 사실 우리 삶 속에서 새로운 신을 주장하는 셈이다.

우리의 충성의 헌신은 대개 시간과 정력의 헌신과 정비례 관계에 있다.

또한 가정에 대한 충실은 보통 직장에 대한 완전한 헌신을 막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을 이유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행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직업이라는 정사는 우리에게 시간, 정력, 충성을 요구한다. 그것도 완전히 다 차지하려 하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직업에 대한 시간, 정력, 충성의 헌납을 어느 정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가 우리가 가진 자유의 척도이다. 우리가 직업을 조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직업이 우리를 조정하고 있는가?

상사의 영향력

얼 쇼리스의 지적에 따르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대기업가들은 칼빈주의 원칙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성공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이며, 따라서 자신에게는 자기 모습대로 사람들을 개조시킬 통치 위임이 주어졌다는 생각을 리더십 원칙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상사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다.

야심만만한 젋은이들은 흔히 상사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자신은 일에 '미리' 높은 투자를 해서 일단 만족할 만한 지위에 오르고 나면 그 다음에 느긋한 삶을 살 전략을 가지고 있노라고 말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면 오를수록 그 만족할 만한 자리 역시 한 단계 더 올라가게 되고, 일단 대단히 열정적이고 헌신된 사람이라는 명성이 굳어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일의 속도를 늦추기가 대단히 어려워지며, 일에 대한 전적인 헌신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그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전략은 늘 실패하고 만다.

한편, 자신이 일하는 시간만큼 부하 직원들도 일하기를 바라는 상사 때문에, 근로자가 봉급 인상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등 상사의 영향력도 우리를 지배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순응하라는 압력

어떤 조직체는 근로자들의 개인주의와 개성적 스타일을 어느 정도 용인해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순응하라는 압력을 가한다.(의복에서부터 승진을 조건으로 하는 잦은 이주 등)

수많은 미묘한 압력과 또 다소 노골적인 압력들이 존재하기에 회사 내에서는 가치관 역시 공유된다. 무엇이 삶에서 중요한 것인가를 결정할 때 혹은 지지해야 할 이데올로기,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이슈, 심지어 지지할 정당이나 후보를 결정할 때에도 회사의 기준에 순응하라는 압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압력들은 직업이라는 정사가 한 인간을 자신에게 완전히 굴복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아니오"라고 말하기

몸담고 있는 직업에 시간과 정력과 충성을 바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조직체 내에서 일하자면 그 단체의 관행, 스타일, 가치에 맞추라는 압력을 받게 마련이다. 우리는 책임감 있는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그러한 압력을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어느 쪽에 지배권이 있는가? 내가 지배권을 쥐고 뚜렷한 선택에 의해 직업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직업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가?

직업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지점에서 스스로를 점검하고, 적절할 경우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돌발적인 업무를 이유로 미리 약속해 놓은 가족 행사를 취소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경우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체의 어떤 관행에 대한 순응 요구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단, 이러한 모습이 개인주의라는 권세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한편, 우리는 일 중독자인 가정 주부들을 알고 있다. 가정 일에 막대한 양의 정력을 쏟아 붓는 그들은 전적으로 집안 일과 가족 일에만 헌신되어 있기에, 가정을 벗어난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들 역시, 같은 신분의 사람들이 채택하는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 순응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직업이라고 부르는 이 정사의 힘은 강력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 안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 완전히 해방된 백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직업의 포로가 아니라 직업을 통해 세상을 책임성 있게 섬기는, 우리의 제사장적 소명을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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