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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 13.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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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4,072 회
작성일 17-02-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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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자료/ 정리 : 정한신] 

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IVP, 1998

제4부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

13. 섬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섬김을 실천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또한)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를 이렇게 묘사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7) 
  예수님에게 섬김이란 실제로 자신의 지위를 섬김받는 자 아래로 낮추는 행위였다고 보는 관점에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예수님은 힘과 권력이 있는 이들의 활동을 묘사하는 데는 섬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고난받는 종으로서 당시의 정치, 사회, 종교 조직체들에서 비롯된 힘은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섬김 역시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와는 아무런 관련을 맺지 말아야 하는가? 현대의 급진적 그리스도인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회적인 의식이 있는 복음주의자들은, 섬김을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힘없는 자들과 동일시해야지 결코 권력 기관들과 협조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한 급진적 그리스도인들이 옳은가? 나는 급진적 제자도에 헌신된 공동체들을 마땅히 존경은 하지만, 예수님의 핵심적 사명에 대한 그들의 시야가 너무 좁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사명

  예수님의 사명은 우리에게 복음을 가져오시는 것,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오직 그 관계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용납을 확신할 수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었다. 사실 예수님의 생활 양식은 그것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관습, 행동 규칙, 종교적 규범, 혹은 정사와 권세에 묶여 있지 않음을 보여 주시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토록 놀라운 복음을 주시기 위해서, 먼저 스스로 모든 정사와 권세를 거부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사셨던 방식과 우리에게 주신 가치 체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본받으라고(be like Jesus) 부르시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으라고(believe in Jesus) 부르시는가?

구급차 운전인가? 구조 변혁인가?

  곤궁에 처한 사람을 일 대 일로 도와주는 섬김은 알아보기 쉽다. 하지만 ‘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섬김은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띈다.
  우리는 ‘기독교적 섬김’이라는 용어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사회 구조를 통해서 가난한 자를 돕고 부정을 없애는 일을 하는 데 대한 적절한 용어는 ‘세상 도구를 통한 기독교적 섬김’(worldly Christian servanthood)이다. 그것은 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서의 섬김은 아니다. 분명 예수님은 섬김이란 용어를, 자신이 섬기려는 사람들의 지위 아래로 자신을 낮추는 일이라는 뜻으로만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섬김의 양식을 그대로 본받는 것을 자신의 소명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오늘날의 급진적 복음주의자들처럼 모든 재산과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자신의 소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유 안에서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 6:8)이라고 느끼는 이는, 세상적인 도구와 영향력을 이용해서 기독교적 섬김을 실천할 수 있다.
  물론 세상적인 도구와 영향력이 우리를 섬기기보다 도리어 우리를 지배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부와 권력에는 중독성이 있다. 
  어떻게 우리는 자신의 정직함에 대해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이 지금 섬김을 실천하기에 필요한 정도만 부와 권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부와 권력의 세상 ‘안에 있지만 속해 있지는 않음’을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 도구를 이용한 기독교적 섬김을 실천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들을 만난다. 그리고 사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질문들 앞에 서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스도인 지원 소그룹은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일에 대단한 도움이 된다. 세상 도구를 이용한 기독교적 섬김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가까운 그리스도인 친구들과 함께 나눌 때, 우리는 거기서 어려운 결정에 대한 조언과 우리의 행동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정사와 권세의 지배를 거부할 때,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이 세상 안에서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절대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렇게 제사장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 중에 존 울만(John Woolman)이 있다. 존 울만은 미국의 퀘이커 교도였는데, 노예 제도를 바꾸는 데 전 생애를 바쳤다. 울만의 설득에 힘입어 1776년이 되자, 노예를 가진 퀘이커 교도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거의 100년 전의 일이었다.
  섬김을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억압하고 비인간화시키는 정사와 권세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세상 도구를 이용한 섬김을 통해, 가난, 불의, 편견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먼저 제도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상처 입히는 관행에 도전할 수 있으며, 세상적인 도구를 이용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20세기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의 생활 양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삶을 통해 정사와 권세에 도전하는 섬김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 도구를 이용해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정사와 권세에 도전하는 섬김이다. 상처투성이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는 길은, 세상 도구를 이용해 섬김을 실천하는 그분의 제사장들의 치유 활동이다.

(2017년 2월 2일 요약 정리/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정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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