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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하이벨스 등, 크고자 하면 내려가야 합니다, 내려감(1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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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윗
댓글 0 건 조회 4,603 회
작성일 08-01-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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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부산대 앞 모임] 2007.11.30.금.7시반 “숲”


빌 하이벨스, 크고자 하면 내려가야 합니다, IVP, 2007


내려감

1. 크게 되는 길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이 세상의 어휘에서 ‘아래’(down)라는 말은 패자들, 겁쟁이들, 하락세의 증시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그것은 외면하거나 무시해야 할 말이다. 이 말은 약자들, 가난한 자들, 죽은 자들의 불운한 입술에나 오를 단어처럼 보인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위’(up)라는 말은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다 못하여 거의 숭배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흠모하고 추구해야 할 말이고, 함께한 모든 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이다. 선택된 소수의 말, 강자들의 말이다. 우리는 명성, 돈, 집중 조명, 권력, 안락, 쾌락으로 올라선다. ‘위’야말로 정말 크게 되는 방향이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만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어떻게든 스스로 높아지고 출세하고 자존심을 세우려는 타고난 기제가 있다. 이런 정황에서 빌립보서 2장은 성경에서 문화에 가장 역행하는 장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빌립보서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정말로 크고자 하거든 당신이 취해야 할 방향은 내려가는 것이다. 내려가야만 크게 될 수 있다. 크다는 것의 기준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자기 포기다. 많이 잃을수록 많이 얻는다.

  내려간다는 개념에 선뜻 찬동하지 않는 것은 세상만이 아니다. 역사를 보면 하향성의 개념으로 씨름한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기적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탐닉을 위해 이것저것 바라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혼동하고 있다. 예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최근에 삶을 간소화하거나 뭔가를 줄였거나 희생적으로 베푸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당신은 몇이나 알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목숨을 잃는 것이 곧 목숨을 얻는 길이라고 정말 믿는가?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크게 되는 유일한 길은 내려가는 것이다. 하향성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길 중의 최고가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길이다.


반전이 있는 하향


  하향성의 위력을 믿는 첫째이자 분명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모본이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사랑을 실천하셨다. 그분은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셨다. 그리스도는 실로 영향력을 가진 분이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크게 되신 길은 전형적인 길이 아니었다. 성경은 그분이 세상 속으로 “내려오셨다”고, 그것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오셨다고 밝힌다. 그분은 신적인 특권을 자진하여 희생하셨다. 모든 권력의 근원이요 모든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 짐승의 지저분한 여물통에서 무력한 아기로 태어나셨다.

  이 땅에서 삶을 시작하신 후로도 예수님은 내려가기를 멈추신 적이 없다. 전능하신 분이 우셨다. 만물의 주인께서 집이 없으셨다. 만왕의 왕께서 종이 되셨다. 진리의 근원이신 분이 신성모독의 죄를 쓰셨다. 창조주께서 피조물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셨다. 생명을 주신 분이 벌거벗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리시고 숨을 헐떡이셨다. 그분의 하향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우주에서 찬송의 극점에 계시던 분이 바닥까지 낮아져서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들을 섬기러 오셨다. 만물을 지으시고 붙드시는 분이 오셔서 자신을 다 쏟아 주셨다.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셨다. 세상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미련함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스도는 큰 자 중에 가장 큰 자가 되셨다. 이런 하향성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것이 반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려가셔서 하나님의 위대함이 되셨다.


사랑을 보이심


  예수 그리스도께는 많은 것이 요구되었다. 하나님은 그분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욕과 고통과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려가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하향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의를 위하여,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당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보다 더 잘 보일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히브리서 12:2은 성경에서 가장 기이하고 도전적인 구절 중 하나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기쁨을 위하여, 즉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고 당신과 나의 죄의 형벌을 받고자 참으셨다.

  그리스도의 하향성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예수님이 내려가셔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고난과 죽음의 자리까지도 가야 한다.

  그분이 우려하시는 것은 세상이 정의하는 상향성이다. 곧 우리가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뜻을 도모하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 때의 최종 목적은, 자신의 주요 목표인 자기 탐닉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돈과 권력과 재물을 갖추어서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크다는 개념이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기 탐닉이란 본질상 언제나 자멸로 치달음을 그분은 아신다. 겉으로 보기엔 정상에 올라가서 깊은 자아 성취감을 얻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거꾸로, ‘아래’는 올라가는 길이다. 야고보서 4:10을 보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나와 있다.


크고자 하면 내려가야 한다


  빌립보서 2장은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잃는 훈련을 하라고 하신다.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내 아들의 본을 따르라. 그는 조금만 잃은 것도 아니고 많이 잃은 것도 아니고 전부 다 잃었다.”

  이런 부르심이 그려내는 인간상은 개성과 기운이 빠진, 고갈되고 공허한 모습이 아니다. 그분을 위하여 잃으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인간의 정당한 필요나 하나님이 우리 안에 두신 갈망과 열정을 부인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잃는다는 것은 어떤 필요가 정당한 것인지 그 결정권을 하나님께 넘긴다는 뜻이다. 잃는다는 것은 우리의 갈망과 열정을 그분의 인도에 맡기고, 성격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 주시도록 그분께 구하고, 박수 받을 생각 없이 재능을 사용하며, 우리의 꿈이 그분의 뜻에 맞춰질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잃기란 쉽지 않다. 그러려면 초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두어야 하고, 하나님과 그 나라의 진보에 대한 흔들림 없는 열정과 사랑이 있어야 하며, 영적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얻으려면 잃으라고 하신다. 그분은 어려운 요구를 하신 후에 약속을 주신다. “네 이기적인 야망을 잃으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너를 내가 높여 주겠다. 물질 중독을 잃으라. 전심으로 나를 구하면 내가 공급해 주겠다. 강박적인 통제 욕구를 잃으라. 나를 따르면 내가 능력을 주겠다. 스릴을 찾는 네 욕망을 잃으라. 네 힘으로는 절대 얻지 못할 즐거움들로 내가 너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 네 목숨을 잃으라. 내가 너에게 영원한 삶을 주겠다.”

  잃고 자신을 낮추고 심지어 죽는 삶은 냉혹한 길이다. 그러나 성경이 고집하는 것이 있으니, 그 길은 동시에 기쁨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빌립보서의 도전을 달게 받을 때 우리는 내려가서 하나님께 큰 자가 되는 매일의 훈련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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