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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11장 1절 35절 나눔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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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11장 1절 35절 나눔요약 251107
불평하는 백성 번아웃된 지도자를 다루시는 하나님
10장까지 시내산을 출발하기 전 여정을 준비할 때, 진과 대열을 하나님이 분부하신 대로 주님의 명령을 지켰다(cf.9:23)는 말이 반복되는 반면 11장부터는 그와 반대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11장 1절부터 3절은 그러한 패턴이 출애굽기 이후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패턴은 이렇습니다. 백성의 불평-하나님의 진노-백성의 모세에의 중보요청-모세의 기도-하나님의 반응. “다베라”, 불사름이라는 지명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앞으로 계속될 일종의 패턴의 예고일 것입니다.
울며(5회-4,10,13,18,20 징징거리며) 불평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1)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었을 때 그것에 영향을 받고 태도가 전염되었기 때문에 (2)이미 출애굽기 16장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때로부터 약1년 동안 만나만 먹다가 물려서(6절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자신들이 종살이에서 풀려나온 것과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은혜로 주신 만나에 대한 감사가 멀어지고 오히려 이집트의 먹을 것과 오이 수박, 부추 파 마늘과 같은 미각을 자극하는 것에 대한 매우 일상적인 욕망이 피어 올랐기 때문에 (3)그리고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해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20절)이었기 때문에 결국 불평했고 그 불평에 대한 응답은 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곧 재앙이 되는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돌보시는 사랑을 망각하고 일상적인 욕망으로 가득하여 불평할 때 그들은 구체적으로 중재자 혹은 지도자인 모세를 자극합니다. 4절에서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라는 문제제기는 곧 지도자의 능력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이것이 지금까지의 패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던 모세의 일종의 “번아웃반응”을 만들게 됩니다. 10절에서 15절의 모세의 걱정과 하나님께 드리는 이야기는 번아웃된 지도자의 전형적 반응(cf.왕상19:4절의 엘리야같은)입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지도자인 모세 역시 21절과 2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내 하나님의 23절의 정신차리게 하시는 말씀(“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말한 것이 너에게 사실로 이루어지는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볼 것이다.”)이 모세의 정신(영)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여호와(주님)는 우선 번아웃된 지도자 모세를 챙기십니다(16절-17절,24-25절). 일흔명의 백성의 장로 지도자들이 회막에 나와 모세에게 내려준 영(정신)과 같은 영을 받고 백성 돌보는 짐을 모세와 함께 지게 하겠다고 조치하십니다. 그 영이 내려와 머문다는 증거가 예언하는 것(25절)이었고 이 일 이후에 “그들은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지만(cf.신18:15-18, 신34:10 “모세와 같은 예언자”) 오직 같은 영, 같은 정신으로 진으로 돌아가 모세의 지도력에 협력하였을 것입니다(엘리야에게 남겨진 칠천명과 같은 존재들?). 26절에서 30절에 나오는 진안에 남아있던 두 사람의 지도자(엘닷,메닷)의 경우 28절에서 여호수아가 “어른께서는 이 일을 말리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아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조치에 불만이 있어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경우였던 것처럼 보이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도 같은 영을 내리셨다는 사실을 알고 모세는 이런 사례를 통해 지도자로서 가지는 마음을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부지불식간에 미래적 혁신, 신약적 성취, 요엘2장 28절 이하의 성취를 지향합니다. 번아웃된 모세에게 혼자가 아니라 한 마음을 품게 된 조력자, 동역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고 앞을 내다보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의 기억(일년정도 됨)을 잊어 버리고 현재 하나님의 임재인 성막이 함께 있다는 것의 가치를 거절하고(20절) 자신들의 일상의 즐거움인 미각과 고기에 대한 욕망과 분위기에 휩싸여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여호와의 반응은 일차적으로 고기를 먹게 합니다. 그것은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이려나?(18절)”라는 이스라엘의 질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고기를 먹이신다는 것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대신 그 탐욕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만드십니다.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의 “기브롯 핫다아와,”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을 거기에 묻는 것으로 내러티브가 끝이 납니다.
욕망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도록 살려달라고 하는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을 망각하고, 사람들의 욕망에 전염되어 다른 사람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고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필요와 욕망 때문에 우리의 인생길이 탐욕의 무덤에 갇히게 되는것을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돈벼락을 맞아 원없이 돈을 써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과 단체들이,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때 그 돈을 써 보기 전에 그것이 화근이 되어 몰락을 경험합니다. 욕망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곧 저주이고 진노인 셈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의 두 가지 끊이지 않는 문제, 즉 일상적 욕망의 문제와 그것을 지도자에게 전가하여 생기는 지도자의 번아웃의 문제에 대해 본문이 시사하는 바가 크고, 앞으로 민수기가 전개되어 가는 데 있어서의 중요한 두가지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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