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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12장 1절 16절 나눔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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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민수기 12장 1절 16절 나눔 요약 251114
지도력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넘어
12장은 11장과 출발점과 종착점의 유사점이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을 기록한 1절과 2절에서 미리암과 아론의 문제적 발언(모세에 대한 비방)을 “주님께서 들으셨다(2절)”고 하는 것은 11장의 백성들의 불평을 “주님께서 듣고”와 연결되며, 결말 역시 각각 어디를 떠나 어디에 진쳤다 멈추었다라는 것으로 끝나는 점에서 두 장이 모종의 연결점이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실제로 11장에서 보이던 지도력의 위기가 12장에도 연결되고 있고, 비교적 짧은 12장을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를 11장에서부터 연결하여 가져올 필요가 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의 이유는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는 것인데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않았느냐(2절)”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질문이 가능합니다. 난하주에는 구스 여인을 “미디안 또는 에디오피아”라고 하는 데 전자는 출애굽기 2장의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미디안 제사장의 딸이었으니 이미 아이 낳고 살아가고 있는 데 다시 문제 제기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 모세의 첫 번째 부인이 아닌 새로운 아내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고 구스 여인이 흑인이었기에 비방한다고 보는 해석들이 있지만 그렇게 보는 것 역시 첫 번째 해석처럼 문화적 해석에 가까울 것입니다. 전술한 것처럼 11장과 연결하여 생각할 때 지금 모세는 그간의 지도력 행사의 ‘괴로움’으로 죽고 싶어까지 했고(11:15), 번아웃의 경험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70명의 장로들에게 영이 내려와 예언하게 하신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모세가 경험하게 된 지도자로서의 ‘외로움’이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게 된 이유일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보다 연장자들로서, 그리고 미리암의 경우 예언자(출15:20)였고, 아론은 이미 대제사장이었기에 모세의 흔들리는 지도력을 유약하고 자격없다고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모세의 지도력을 보완하거나 혹은 대체해야 할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이 말에 들어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였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틀린 말도 아니고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3절에서 9절에서 하나님은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7절)”라고 종합할 만한 이야기를 바로 “당장” 세 사람을 회막에 불러 분명하게 이야기하십니다. 3절은 NIV가 괄호를 치고 있는, 하나님의 직접적 평가가 아닌 편집자(혹은 저자)의 평가이지만, (영감된 말씀이라는 점에서) 크게 보면 이 단락에서 하나님은 세가지 점에서 모세는 특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겸손한 사람(3절)이라는 점은 11장에서 보는 지도력의 흔들림속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모세를 두고 질투하여 말할 때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11:29)”라는 말을 할 때 두드러집니다. 본문에서도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에 대한 모세의 반응이 없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세가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7절)”라고 인정하십니다. 사람들 때문에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집에 대한 혹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 혹은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함이 모세의 특별함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8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세는 특별했습니다. 미리암이 예언자였고 아론이 대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은 모세와만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명백하게, 모호하지 않게 말하시며 주의 모습을 보여주실 정도로 친밀하였습니다. 이런 친밀한 관계와 환상으로 알리고 꿈으로 말해 주시는 “너희 가운데 예언자”와의 관계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모세를 특별하게 대하셨을까 하는 질문이 저절로 생깁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쉬운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세는 후일 예수님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유독한 신학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cf.요1:17)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즉답에 가까운 해석보다 더 본문의 내러티브와 당시의 정황에 가까운 해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10절 이하에 미리암과 아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진노의 표였던 “악성 피부병” 때문에 생긴 7일간의 격리와 그 기간만큼의 이스라엘 전체 진의 하세롯에서의 머무는 시간이 단서라고 생각됩니다. 아론은 악성 피부병이 생기지 않고 미리암에게만 생긴 것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 데 이것은 아마 1절의 이름의 순서(미리암과 아론)가 암시하듯 주도한 자와 따른 자의 차이이거나, 아론은 지켜보는 자의 패닉반응을 11절과 12절에서 보이는 것으로 그 이상의 벌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레 동안 미리암은 미리암대로 아론은 아론대로 근신하였겠지만 사실은 진에 7일동안 머무르는 동안 모든 이스라엘에 이 이야기가 회자되었을 것이고 자칫 번아웃과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들의 죽음등으로 어수선하였던 이스라엘에서, 13장 이후 가나안 땅을 앞에 둔 전체 회중안에서 모세 지도력의 특별함에 대한 확실한 확인의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런 흔들리는 상황가운데 모세가 한 말이 딱 한마디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3절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어 아뢰었다. “하나님, 비옵니다. 제발 미리암을 고쳐 주십시오.” 겸손과 충성(신실함),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의 사람, 성품의 사람 모세는 지도력의 괴로움과 외로움(자신의 형제들까지도 비방하는)가운데서도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역으로 이런 모세의 한 마디 기도, 축복과 치유를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모세가 겸손한 사람이며 신실한 사람이며 정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본문에서 봅니다. 사람들의 판단보다 중요한 것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평가일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지도력의 문제가 상존합니다. 가정, 단체, 교회, 국가에서 지도력을 생각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혹은 어떤 태도로 나는 지도력을 볼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지혜를 던져 주는 본문입니다. 지도력의 외로움과 괴로움속에서도 성품의 사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는 사람으로, 그리고 축복과 치유의 통로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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