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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연구소 ELBiS Club 창세기 30장 25절-43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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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6,652 회
작성일 10-03-2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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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iS Club 창세기 30장 25절-43절 요약

바로 전 문맥의 여인들의 출산을 둘러 싼 경쟁과 대조적으로 이 본문은 야곱과 라반, 즉 남자들의 소위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당시의 산업은 양등의 목축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이 본문 역시 출산(새끼배기와 낳기)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보면 창세기 30장은 고대의 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녀의 복과 양과 소, 낙타와 나귀의 복이 어떻게 야곱에게 임했는지에 대해 표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야곱은 복을 엄청나게 받은 사람이 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은 야곱이 어떻게 이렇게 복을 받았는지에 촛점을 맞추게 됩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야곱이 얻은 복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전문맥에서도 12명의 자녀들이 여인들의 암투와 시기속에서 얻게 되었는데 본문에서도 야곱이 얻은 부는 상당히 주도면밀한 준비(25절부터 34절까지의 라반과의 대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외삼촌을 설복하기 위해서 상당히 논리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반면 대안을 내어 놓을 때 삼촌 라반이 생각하기에 손해될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만한 제안을 합니다.)와 경험적인 지식 혹은 당시 고대의 주술(미신)적인 경험등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것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그는 사업가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점에서는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이루시리라는 믿음도 있어 보입니다. 27절에서 라반은 야곱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이런 지식을 어디서 얻었는지를 볼 수 있는 데 "by divination" 즉 점을 보니 그렇더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에 야곱 역시 30절에서 그 말을 받아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믿음이 있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라고 이야기하므로 어떤 면에서 복을 "주시는" 분이 삼촌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본문을 들여다 보면 야곱의 마음은 바로 그 다음 절에 나오는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14년 이상 외삼촌 집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받아 준 것만 해도 고마웠고, 사랑하는 라헬을 비롯하여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 감사하기는 하였지만 야곱의 외삼촌 라반에 대한 대화를 비추어 보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애쓰는 면도 있지만 (외삼촌이라고 반복하여 부른다든지, "일하고 얻은 처자를 주어"라고 이야기한다든지...) 사업가 수완가 라반에게 많이 당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외삼촌이 나중에는 안색이 변하였다라고 할 정도로 (cf.31:2) 양을 비롯한 가축들의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술수를 부렸습니다.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가지 껍질을 벗겨 흰무늬를 내고 세워 두어 그 가지 앞에서 새끼를 베게 하는 방식, 이것이 경험에서 나온 실제적인 효력이 있는 방법이었는지? 혹은 당시의 미신적인 습속을 의지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찌되었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런 결과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얍쌉한 야곱의 방식이라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닌지? 비열하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복을 누리는 것에 대해 만약 믿음만 있다면 방법은 좀 그렇다해도 괜챦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늘 교과서적인 질문과 교과서적인 해답에 익숙해 온 우리들이기에 갖게 되는 딜렘마라고 생각이 됩니다. 인생은 하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 하는 식으로 공식을 내세우기에는 너무나 모호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로마서 6장 1절과 2절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렘마에 빠지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의 복을 생각할 때 여전히 물질적인 복을 비롯한 세상과 똑같은 범주로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딜렘마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표면적으로 야곱이 30장에서 다자녀의 축복과 산업의 복을 누렸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야곱의 전 생애로 볼 때 처음에는 이 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사실은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들들때문에 받은 근심이나 얻게 된 산업때문에 뒤로는 라반에게 쫓기고 앞으로는 형 에서에게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인생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사실은 그것이 진짜 복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스스로 일을 이루어 보려는 야곱의 노력(라반을 설득하려 하고, 애써 나무가지를 세우고 열심히 애쓰는)이 한편으로는 가상하지만 다른 편으로는 자기 힘으로 자신의 집을 세우려는(30절) 안스럽기 그지 없는 노력이라고 여겨집니다. 진짜 복은 자신의 입으로 삼촌과 함께 동의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 하나님 자신이 복이라는 사실을 먼 훗날에야 깨닫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몇가지 상상력을 제공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저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1-2)라는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아둥바둥 사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복입니다. 다른 편으로는 이런 아둥바둥속, 모호한 일상생활의 삶속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비윤리적, 얍삽한 자기노력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의 크심이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다반사가 그의 손 안에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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