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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온라인 ELBiS Club 골로새서 3장 5절 17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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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댓글 0건 조회 296회 작성일 21-06-0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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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 of Character, A: Toward a Constructive Christian Social Ethic:  Hauerwas, Stanley: Amazon.com: Books

 

스탠리하우어워스 _교회됨 강독

 

 

온라인 ELBiS Club 골로새서 3장 5절 17절 요약 210604

 

2장 16절과 3장 1절에 쓴 접속사 “그러므로”가 오늘 본문에도 5절과 12절에 보입니다. 이미 바울은 그리스도의 충만함과 그와 함께 한 운명, 정체성에 근거하여 어떻게 살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 훨씬 구체적인 목록, 부정적인 목록과 긍정적인 목록을 들어 삶으로 생활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란 접속사를 필두로 5절에서 11절까지는 부정적인 삶의 동기와 외적표현들을, 12절에서 17절에서는 적극적인 덕목들을 배치하면서 그 전환 포인트인 중간의 10절에서 12절에서 독자들에게 산업구조상 (cf.계 3장 19절 “흰 옷”) 익숙한 의복을 벗고 입는 메타포를 통하여 새로운 삶의 양식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삶의 양식은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 곧 우상숭배(5절)”인데 다분히 내면의 동기와 관련된 묘사로 보입니다. 이에 반해 8절과 9절의 목록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 부끄러운 말, 거짓말”은 크게 분노와 말의 문제와 같은 내면의 외적인 표현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악덕을 5절에서는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데 여기서 “지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특이한 데, 이는 전 문맥 2장 19절에서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몸의 지체로서의 성도의 정체성과 대비되는 것이며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된 하늘에 속한 지체와는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이것이 11절 하반절의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런 악덕을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안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땅에 속한 지체”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절과 같이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립니다.”

 

9절 하반절에서 12절까지 더러운 옷을 벗고 새로운 (흰)옷을 입는 이미지를 차용합니다. 옷은 신분의 변화 혹은 정체성의 변화를 이해하는 강력한 은유입니다( 광해라는 영화에서 왕의 옷을 입게 된 천민을 보시라).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스파이더맨의 흑의를 벗기 힘든 것을 보시라) 일단 그것을 벗어 버리고 나면 변화가 시작됩니다. 새사람을 입는다고 즉각 신분의식이나 정체감이 금새 마술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0절에서 바울은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옷을 잘 입었는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혹은 옷을 제대로 입는 사람을 따라 하듯이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하게 되고 점진적으로 옷에 걸맞는 인격, 품성, 덕목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11절의 대비되는 그룹들의 목록의 반복이 의미하는 바는 이런 인격, 덕목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보이는 동시에 이런 덕목이 필요한 서로 대비되는 혹은 서로간의 갈등이 있는, 혹은 서로 혐오와 배제를 하려는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12절부터 이야기하는 새로운 사람의 덕목은 다분히 이런 공동체 안의 갈등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15절에 “한 몸이 되었습니다”라는 진술이 있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12)”이라는 정체성, 신분을 가지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는 옷(덕목인 동정심, 친절함, 겸손함, 온유함, 오래참음)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런 덕목은 반드시 몸인 공동체에서 “서로(4회)”의 관계속에서 “용납” 혹은 “용서”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납니다(13). 14절은 적극적으로 완전하게 묶는 띠인 사랑을 더하라고 쐐기를 박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은 한 몸인 공동체에서 평화를 누리며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15절). 16절에서 17절은 한 몸인 공동체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려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것, “찬양”하는 것, “말이든 행동”하는 것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는 삶,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당시 독자들이 들으면 “아하!”할 일상적이고 생활에 밀착된 은유를 가지고 변화된 삶과 공동체적 덕목을 권면하고 있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메타포로 이런 이야기를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온갖 충만한 신성이 “몸”이 되어 그 안에 머물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된 사람들이 “몸”인 교회를 이루어 그 충만을 드러내려면 어떤 악덕(그 동기와 구체적인 행위)을 버리고 덕성을 품어야 하는 지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합니다. 스탠리 하우어와스가 이야기하는 “덕성의 공동체(A community of Character)" 가 바로 교회라는 사실을 여기서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공동체는 이런 덕성의 공동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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