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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5장 33절 47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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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329 회
작성일 23-11-25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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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5장 33절 47절 요약 231124

예수 죽음에 대한 시선들

마가는 예수님이 숨지시기까지의 사건과 그 목격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건조하고 담백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부인하지 못할 역사적인 사건을 보고 있는 몇 개의 시선들, 목격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본문을 이해하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첫 번째는 35절의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입니다. 35절과 36절에 이들이 사용하는 “보다”라는 동사가 두 번 보입니다. 33절에 묘사되고 있는 3시간의 백주대낮이 어둠으로 뒤덮이는 사건의 경험은 “온 땅을 덮”는 매우 두렵고 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그래서 아마도 마가의 독자들도 자신의 일생에서 있었던 이 경험을 떠 올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대인들로서 이 경험은 어떤 초자연적인 신의 메시지로 받아 들일만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34절에서 예수께서 그 영적이고도 육체적인 고통과 절망을 표현하신 시편 22편 1절의 애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를 들을 때 갑자기 무언가 초자연적인 엘리야 메시야 대망에 의존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여전히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내려와야 구원이라는 30절의 반응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37절에서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지셨을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는 38절의 마가의 진술은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헤롯 성전의 종말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를 의미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일 충격을 경험했을 사람들은 성전 종사자들이 아니었겠는가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것은 스스로 성전임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으로서의 기능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어떤 의미에서 부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하나님나라의 완성이요 도래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 번째 목격자인 39절의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어떤 학자들은 이 백부장이 바로 다음 장면에서 여전히 빌라도의 하수인으로서 실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이 고백을 별 의미없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출발했던 마가복음 1장 1절의 반향을 이 백부장의 입에서 들려 줍니다. 모든 처형의 과정을 다 지켜 본 백부장의 이 고백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실패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이고 성취라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서 “멀찍이서 지켜 보고” 있었던 40절과 41절의 많은 여인들과 예수의 시신이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안장되는 순간에도 “지켜보고” 있었던 두 여인들의 존재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후일 이들의 목격담이 예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장례와 부활의 증언에 있어서 핵심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제국의 폭력을 피해 부재할 수 밖에 없었던 남성 제자들과는 달리 비록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제국의 권력자들이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고 여겨지는 여성제자들의 용기 있는 현존(presence), 그리고 이들의 몇 발짝 떨어져서 멀찍이서 지켜 보는 시각은 이 중요한 구원사의 사건 전체를 조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겠다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이 여인들 덕분에 예수의 시신을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어귀에 돌을 굴려 막아 놓”은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한 공관복음의 묘사는 뉘앙스들이 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마가는 담백하게 그를 “명망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이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던 것은 이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를 나무에 달린 상태로(cf.신21:23) 안식일을 맞이하지 않도록 빠른 조처를 담대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44절과 45절의 빌라도와 백부장의 역할은 예수의 죽음이 가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해 줍니다.

예수님의 죽음, 시신, 무덤을 대할 때 바라보는 시선, 시각들이 달랐던 것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죽음, 시신, 무덤과 같은 엄혹하고도 절망적인 사건, 부정적인 경험을 대하게 될 때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성취이며 좌절이 아니라 완성이라는 사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성취와 완성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를 온전히 지시고 죽으심으로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삶과 신앙을 지배하고 관통하기를 기대합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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