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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1월 일상사연 : 아내의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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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5,768 회
작성일 15-11-0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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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연



아내의 출근





정의민 / (IVF 강릉지방회 대표간사, 본 연구소 실행위원) 




아내가 계약직으로 출퇴근을 한지 8개월이 되어간다. 무려 13년만에 집안일이 아닌 일을 지금까지 꼬박꼬박 하고 있다. 아내가 일을 하면서 그간 나와 아이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 왔다. 


  먼저 나에게 찾아온 제일 큰 변화는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내일 아침엔 뭘 먹이지?'라는 고민을 하는 것이다. 아내가 출근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아침 식사 당번은 나의 몫이 되었다. 매일 아침 밥을 준비한 후 아이들을 깨워 먹이고 학교를 보낸 후 아내를 데려다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 첫번째로 방문하게 되는 것이 우리 집 냉장고다. 그런데 분명히 장을 본 것 같은데도 찾아보면 마땅히 해 줄게 없어 한 숨을 내쉬게 된다. 냉장고 안을 뒤적거리며 생각해 봐도 뭘 할 줄 아는 요리가 별로 없다. 결국은 계란을 꺼내 계란밥을 준비해서 식탁에 김치와 함께 올리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것도 한두번이지, 며칠을 그렇게 하다보면 아이들에게 미안해질 뿐더러 내가 계란밥이 싫어진다. 그래서 선물로 들어온 스팸을 열어 구워서 식탁에 올린다. 햄이 나오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그것도 계속 먹이기가 미안하다. 그래서 다음 날엔 스팸에 계란 푼것을 묻혀서 굽는다. 조금이라도 다른 반찬을 올려 보려고 나름 변화를 줘 본다. 이것도 물려서 하기 귀찮으면 최대한 먹이지 않으려 했던 식빵과 씨리얼을 개봉한다. 아내가 출근을 하게 된 지난 8개월 동안 이렇게 요리랄것도 없는 아침을 준비하면서도 밤마다 다음날 뭘 먹이는 것이 그렇게 고민이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을 아내는 16년동안 해 왔다.

 

  아내도 잠들기 전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간사급여 얼마 받지 못했던 시절, 자고 일어나 텅 빈 냉장고를 열 때마다 아내는 얼마나 무력감을 많이 느껴야 했을까? 아침부터 그런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우울했을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맘껏 차려주지 못해 얼마나 속상했을까? 


  전엔 잘 몰랐다. 아침을 준비하는게 이렇게 고민이 되는 것인지를.. 텅 빈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것이 얼마나 한 숨 나는 일인지를.. 사실 말은 안했지만 어떤 때는 아침을 너무 대충 준비하는 것 같은 아내를 야속해 하기도 했다. 참 철없는 남편이었다. 난 그 세월을 어떤 수고도 보태지 않고 그저 차려주는대로 얻어 먹었으면서도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서운해 한 적이 있다. 정말이지 아침 당번을 하는 요즘은, 16년간 그렇게 철없는 나와 아이들을 위해 대신 고민해 준 아내가 참 고맙다. 


  13년만의 아내의 출근은, 그렇게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일상의 아침식사가 모든 것을 대신해 준 아내의 사랑이었음을 진심으로 깨닫게 해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물이 있다. 아내가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나는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이면 늘 설거지를 같이 한다. 이젠 서로의 고충을 알기 때문이다. 둘이 나란히 서서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설거지를 하다보면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서 참 좋다는 마음이 든다. 부부에게 이만한 선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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