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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롤하이저,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11장 시인과 상상력, 모국어와 종교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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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5,386 회
작성일 12-06-0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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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롤하이저,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 포이에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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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으신 분께 드릴 최고의 보답은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11. 시인과 상상력, 모국어와 종교 언어

- 겁에 질린 종교를 돕는 법

 

 

파스카 상상력

오늘날 기독교 내부의 수많은 좌절과 침체는 상상력 부족에서 기인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려면, 우리 편에서 막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상상력이란 우리 체험을 이해하고 그에 반응하는 데 필요한 이미지들을 창조하는 능력이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무슨 일이 생길 때 주변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마비된 것처럼 굳어버린다. 그러나 건전한 상상력이 있으면, 어떤 현실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다. 건전한 상상력은 희망의 토대다. 우리는 상상력으로 숙명을 운명으로 바꾼다.

오늘날에는 특히 신앙생활가 교회 구조를 새롭게 상상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서 겁에 질린 상상력("전에는 이런 식으로 해본 적이 없다!")이나 무비판적인 상상력("새 시대를 즐겨보자!")으로 대처하고 있다. 시대의 징조도 읽지 못한다. 겁에 질린 상상력은 현실 도피 성향이 너무 강한 반면, 무비판적 상상력은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무조건 수용하느라 비판적 반응을 포기한다. 두 경우 모두 상상력은 죽었고, 더불어 종교도 사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죽지 않았다. 그분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사역'에 열중하고 계신다. 신비로운 그의 죽음과 부활은 여전히 날마다 실행되며, 예수님의 영은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그렇지만 어디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려면 상상력의 레이더를 발동해야 한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종교개혁가들 중에 대단한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종교생활을 새롭게 상상했고, 그 상상력에서 비롯된 비전 가운데 종교생활의 폭발적 성장이 일어났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오늘날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도 기독교 사상이 세속 철학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관해 비슷한 일을 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상상력은 억압받는 자들이 어떻게 복음을 살아낼 수 있는지에 관한 새로운 비전을 형성해주었다. 엠마오로 가시던 그리스도는 두 사도의 상상력을 재구성해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과 부활의 패턴을 보고, 우리 죽음을 규명하고 부활을 주장하며 옛것을 올려 보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으로 살아감으로써 긍정적이고 비판적으로 우리 운명을 빚어갈 수 있다.

 

시와 설교, 노래라는 신성한 과제

 

시인을 비롯하여 어떤 사건을 적합한 단어로 설명할 줄 아는 사람들은 매우 신성하고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들의 말도 빛에서 어둠을 구분해내고, 혼돈에서 평화와 질서를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 관점에서, 시인과 예언자, 작사자의 역할을 매우 신성했다. 그들에게 영감이 부족한 것은 기근이나 질병, 패전 같은 참사로 여겨졌다.

 

일상의 성례

 

기독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거룩하며, 모든 것이 성례에 중요하다고 가르쳐준다. 그런 관점에서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요, 우리가 먹는 음식은 신성하며, 노동과 성생활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공동 창조자다.

하지만 우리 일상이 너무 시시하고 산만하며 너무 기본적인 현실에 고정되어 있어서, 이런 개념("모든 것이 성례전이다")이 사춘기의 환상 정도로 여겨지는 게 문제다. 뉴스를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몸으로 하는 일을 지켜보노라면 때론 이게 진짜 성령의 전이 맞나 싶다.

이 세상은 거룩하며, 식사와 노동과 성관계가 모두 성례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버렸다. 생활에서 제대로 된 기도와 의식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과 이 세상, 먹고 일하고 사랑하는 것을 본래의 신성한 기원과 연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일하고 사랑하는 행위를 각각의 신성한 기원과 연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깊은 기도와 적절한 의식 없이 먹고 일하고 사랑하는 것은 결국 성례전과는 거리가 먼 단조로운 인생에 불과하다.

 

모국어

우리가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유아기의 어둠과 혼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맨 처음 습득한 언어를 '모국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애니 설리번은 언어를 가르쳐 헬렌 켈러를 어둠과 혼돈에서 끄집어내고, 자유와 사고, 깊은 감정, 자기표현과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어를 주신 진정한 목적을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사례는 없는 듯하다. 모든 설교와 가르침, 신학과 목회의 역할이 바로 이것인데, 하나님의 음성이 앞서 이야기한 어머니의 목소리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말씀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과 빛과 사랑을 주기 위해 오셨다.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국어 역할을 해주셨다. 우리가 두려움과 어둠과 혼돈을 벗어나 사랑과 사고와 자기표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날 신학교와 교계, 종교 잡지, 설교와 가르침에서 애니 설리번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하나님 말씀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오늘날의 수많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나도 하나님 말씀을, 내 모국어를 간절히 고대한다.

 

새로운 성 프란체스코를 기다리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교회 출석과 교회에 대한 헌신과 관심이 날마다 추락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대체로 교회에 무관심한 우리 문화와 자녀들을 고려한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영향력이라도 줄 수 있다는 희망을 제공하는 언어나 접근법, 프로그램과 비전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개발해온 것들은 현상 유지, 즉 기존의 교회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상상력은 아사 직전이다.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같은 과격분자나 미친 사람이 옷을 벗고 나체로 쇼핑몰이나 도시를 빠져 나와 맨손으로 어디엔가 옛 교회를(혹은 비슷한 취지로 무언가를) 다시 세울 때 그 해답이 찾아올 것이다. 그 광기는 세상과 비그리스도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상상력 역시 뜯어고칠 것이다.

열정적인 상상력은 야생화 같아서 사방에서 피어난다.

우리 교회론을 새롭게 정립해줄 상상력은 새로운 회심자나, 신자로 태어나 성장했음에도 세속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막강하면서도 결국엔 허무한지 잘 아는 사람에게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결국, 정답은 하나님의 영에서 올 것이다. 척박한 땅과 아름다운 초원 어디에서나 자라는 야생화 중의 야생화이신 성령만이 죽은 몸과 믿음을 되살리실 수 있다. 그 대상이 신자건 불신자건 말이다.

 

의식을 향한 갈망

의미 있고 흠없는 모든 것은 이성적이고 근대적이며 새로운 것에서만 발견된다는 말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근대인이요, 계몽운동의 자녀들이며, 의식에는 음치라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불신하는 성향이 강하다. 우리는 옛 의식보다는 새로운 설명들을 더 가치있게 여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변화가 아직 교회에서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의식이 어떤 식으로든 이성을 초월해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의식에는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능력이 있다. 특별한 종류의 마법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늘 이런 의식과 마법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성례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세상은, 즉 우리에게 마법을 가져다주는 이 신비로운 성례와 경건한 의식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상상력의 위기

대니얼 베리건은 말한다.

믿음은 머리 있는 곳에도, 마음 있는 곳에도 없습니다. 당신 믿음은 엉덩이가 있는 곳에 있지요. 어디 사십니까? 무슨 일을 하십니까? 우리 행위와 자비, 윤리 같은 것들이 우리가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결정합니다.”

우리 이성과 느낌을 초월하는 상상력, 이것이야말로 믿음이 사는 곳이요, 믿음이 의미하는 바이다.

문제는 많은 신자들이 상상력으로 부활과 복음을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신앙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 정리 : TGIM 울산점 점장 정한신(greenecho7@gmail.com). 2012.6.7.

 

 

< 일상 영성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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