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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1과 사업도 소명인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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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열정이
댓글 0 건 조회 6,441 회
작성일 09-04-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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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IM 자료 / 정리 : 김종수

폴 스티븐스, 하나님의 사업을 꿈꾸는 CEO, IVP, 2009

1과 : 사업도 소명인가? 

칼빈 시어벨트라는 학자의 어버지 모습 회상 

“ 한 고객과 칼빈의 아버지가 협상을 하는 중에 아버지가 잉어를 집어들고는 그 특징을 샅샅이 살펴보는 모습이 나온다. 싱싱하고, 꼬리도 실팍하고, 눈빛도 생생하고, 아가미 혈색도 좋고, 살도 탄탄한 그런 모습을 말이다. 그러더니 그의 아버지는 “멋진 생선입니다, 아주 멋집니다. 씻어 드릴까요? ”하고 여자에게 물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수락하는 듯 약간 슬픈 표정을 짓더니 곧 그 협상 방식에 감탄하고는, “글쎄요, 근데 당신은 결코 소명을 잃지 않았군요”하고 한마디 던졌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그저 ‘해야 하기’때문에 하는 것이거나 자아성취를 위해 선택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해방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부르심 중 일부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특히 사업에 관해서 ‘소명’이란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천직(vocation)이란 말은 공공선이 아니라, 보통 자아성취를 위해 선택된 직업을 일컫는 데 사용되고 있다. 소명이 세상에서는 세속화되었고, 교회에서는 성직으로 변모된 것이다. 

소명과 직업

  소명 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출세주의와 전문기술주의로 삶의 의미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일봉의 마법사로 변한다. 그러나 소명의식은 우리 삶에 방향과 목적을 부여해 준다. 우리의 창조주가 우리를 불러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고 이 세상을 능가하는 놀라운 목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의 vocation은 라틴어 vocare에서 온 것으로서 ‘부르다’는 뜻을 갖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단어는 일상용법에서는 ‘직업’,‘스스로 선택한 경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vocation이란 단어를 없애고 그 대신’소명’이란 말로 대체한다면 ‘누가 부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켜 더욱 바람직한 변화가 될 것이다. 부름 받은 사람이 있으려면 부르는 자가 있어야 한다. 후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더욱 바람직하다. 

  혹자가 사업가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겨우 받아들일 만한 인간의 직업의 한 분야에서 일하도록 하나님에게 허락 받은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일을 하도록 실제로 하나님의 소환을 받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무엇을 하도록 부름 받기 전에 누군가를 따르도록 부름 받았다. 따라서 소명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께 오라는 그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라는 그분의 초대와 함께 시작된다. 소명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관계), 그런 존재가 되는 것(존재), 그런 행동을 하는 것(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섬김)이 모두 포함된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황홀한 체험을 통해 어떤 직업으로서의 부르심을 받는다고 말하는 본문은 전혀 없지만, ‘사업도 하나님의 부르심 일부’라는 견해는 강력한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다. 

1. 창조세계의 잠재력을 개발하라는 부르심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는 것 자체가 신의 소명”이라고 주장 - 케네스 칸쯔 -

  그의 주장은 성경이 비즈니스 행위를 얘기할 때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고, 문화명령의 당연한 결과로서 말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전제는 최초의 선한 창조, 한 때 죄와 사탄에 의해 타락한 창조세계, 현재는 부분적으로 구속된 세계, 그리고 하나님이 거기서 일하라고 자기 백성을 부르는 세계 등이다. 이로 보건대, 비지니스란 이 땅에 인간의 발자취를 남기려는 창조 세계의 청지기직의 일환으로서 우리가 떠맡게 된 합법적인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 투자자, 노동자, 경영인, 기업가를 막론하고 경제 분야에 몸담은 평신도의 과업은 서로의 인간성을 충분히 존중하는 상호 협조적 협회들을 세우는 일이다. 그런 기업들은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창조 세계로부터 창조주가 풍성하게 심어 놓은 생산 가능성과 인적 자원을 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경제활동은 창조주의 일에 직접 참여하는 행위다. ”
   
  “평신도가 맡은 공동 창조의 행위”마이클 노박 - 기업활동의 내재적 덕” 


  우리는 하나님과 동등한 동반자의 위치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 활동과 그분과 함께 동참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최초에 우주를 만드셨을 때와 같이 지금도 창조적인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속 스스로를 낮추시면서 우리를 자기 일에 동참하라고 부르고 계시며, 사업은 그 가운네 작은 일부이다. 


2. 인간의 삶을 향상하고 아름답게 가꾸라는 부르심 
  아담과 하와와 그 자손들은 세계를 만드는 자(world-makers)로 부름 받았다.‘사업’을 가리키는 중국어는‘창조하다’와‘의미’를 각각 뜻하는 두 낱말의 합성어이다. 사업은 사람들을 위해 의미를 창조하는 방법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영혼을 구할 뿐 만 아니라 몸과 시스템과 창조세계 전체를 구하는 데도 관심이 있다. 그 사역은 흔히 옛 언약(구약)이라 불리는 이스라엘과의 언약 아래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시작되었다. 신약은 성경에서 구원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sozo는 원래 “온전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는 온전함, 통합성, 안식의 의미를 내포하는 히브리어 단어 살롬과 비슷하다. 예수께서는 희년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희년은 히브리 성경에 규정대로 50년마다 모든 것을 속박에서 풀어 주는 놀라운 사건이다. 골로새서 1:15-20과 로마서 8:29-30절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통치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과 창조세계 전체에 걸쳐 역사하는 역동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다. 사업은 사업가가 구속의 방식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기회 그 자체이다. 

겸손한 섬김, 새로운 시작의 창조, 대가의 부담, 비난의 감수 등을 통해 우리가 유사 구속적 방식으로 주님의 구속 사역에 진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_ 리처드 히긴슨 _

사랑과 순종의 제사가 하나님에게 바쳐지는 통로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세속적 사업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세상에 방출된 그 막강한 권능이 밝히 드러나는 것은 세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_ 레슬리 뉴비긴_

3. 이 땅에서 공동체를 건설하라는 부르심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산에 두시고 그들에게 3가지 전임 업무를 주신다. 
  1) 하나님과의 교통 가운데 사는 일 2) 공동체 건설 3)공동 창조자가 되는 일 

  회사도 하나의 공동체이다. 사업이란 것도 시골동네의 장터, 전자상거래, 무역 박람회, 동네의 조그만한 가게를 막론하고 모든 우리가 공동체를 경험하는 현장이다. 


세계적 풍요와 하나 됨을 이루라는 부르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세계적 차원의 소명 “ 땅에 충만하는 것이다.”상업은 가톨릭 교회의 여러 동방교부들이 썼듯이, 민족들 간의 물질적 유대 관계로서 인류의 하나 됨을 상징적으로 나마 보여 주는 것이다. 혹은 그가 감히 신비적 언어로 표현했든이,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을 물질적 상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인류는 하나다. 인간 몸을 이루는 모든 부위의 상호의존성을 보여 주는 국제적 상거래는 세계의 모든 민족을 통짜 옷의 비단실로 다 함께 엮어 준다. 


5. 부를 창출하고 가난을 줄이라는 부르심
  사업은 가난을 줄이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인간의 존재 양태를 향상시키는 면에서 구속적 목적을 띨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부를 생산하도록 구비시키는 일이다. 

6. 천국에 투자하라는 부르심
  성경적 안목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앞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마지막 때에 대한 성경적 견해는 먼 옛날의 에덴동산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변형된 창조세계와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내다보는 것이다. 성경은 복음전도와 관계 없는 일이라도 그 일부는 영구히 남아 새 하늘과 새 땅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 열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현세와 내세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의 도시이요, 땅으로서 이 세상과 연관되어 있다. (계21-22장)
이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새 하늘과 새 땅에 가지고 올 것이다(계21:24).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가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에서 발견될 것이다(계21:26).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다스리는 동안 우리가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 내다본다: “나의 백성은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사 65:12-22)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현세에서 받은 상처를 변모된 형태로 간직하고 있다(요20:27).
예수님은 최후 심판의 자리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한 보잘 것 없는 섬김도 자기에게 한 것으로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마25:31-46)
심판의 불(벧후3:7)은 이어서 나오는 13절의 내용(우리는 주님의 약속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다)으로 보건대, 현 세계를 말살하는 게 아니라 변형되는 것을 상징한다. 
고린도전서 3:10-15절은 우리의 일이 불로 시험되어 살아남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로마서 8:19-22절은, 이 땅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과 연루되어 신음하며 해방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14:13절은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즉 그들의 일이 그들의 삶에 ‘지울 수 없는 도장’을 찍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는 인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세속적인 일에 아낌없이 헌신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하는 어떤 일도 그 자체로는 그 도시 건물의 일부가 될 정도로 선한 것이 없음을 알고, 또한 모든 것 - 우리의 가장 내밀한 기도로부터 가장 공적인 정치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 이 죽음과 심판의 골짜기 속으로 마땅히 내랴가야 할 죄로 오염된 인간 본성의 일부임을 알면서 헌신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 세속적인 일을 그리스도이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아버지께 바칠 때 그것이 불로 정화되어 안전하게 보존되고 결국에는 거룩한 도시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_ 레슬리 뉴비긴 _


특정한 소명?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업과 같은 특정한 직업으로 부르시는가? 이 질문과 관련된 중요한 본문은 고린도전서 7:17-24절이다. 하나님이 섬김의 자리와 삶의 자리 둘 다로 부르신다는 점(17절)과 그 자리가 더 포괄적인 부르심을 받는 처소라는 사실(20절)을 시사한다. (한글 개역성경은 이 둘을 거의 동일하게 번역하고 있다_ 옮긴이). 그러나 원어에는 이런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20절은, 어떤이 들은 행정관으로 또 어떤이들은 학자로 각각 부름 받는다는 종교 개혁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구절이다. 

  “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eklethe) 그 처지(klesei)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신학자 도날드 헤이게스는 이 구절이 종교 개혁에 얼마나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지 논평하면서 “실제적인 목적상 루터는 소명이란 단어를 교회로의 부르심과 삶의 처지로의 부르심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 루터와 칼뱅은 세상적 소명을 주장하기 위해 이 구절에 크게 의존했고, 나중에 청교도들도 그랬다. 하지만 바울의 논점은 고린도 교인이 원했던 그 변화- 결혼, 인종, 사회경제적 처지를 막론하고 - 가 영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이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처했던 곳을 거룩하게 하신다. 고든 피는 이 단락을 이렇게 해석한다. 

  “ ‘부르심’이란 주제 아래서 바울은 그들의 ‘영성’을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하려한다. 그들은 자기가 부름 받았을 때 사회적 위치가 무엇이든 거기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참고. 1:9)은 그러한 사회적 위치를 아주 상관없이 만들 만큼 그 위치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태나 저런 상태 모두 마찬가지라는 말이다.”이 견해는 종교 개혁자들이 이 구절을 해석한 방식과 대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우리의 일상적인 일을 그리스도 아래 있는 새로운 질서로 끌어올리고 있다. 고린도전서 15:58절에서 그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활동은 우리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고전2:4-5)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스러운 일과 속된 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모든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생명과 그리스도의 나라의 증진을 위해 수행되는 것으로 본다. 그런 일을 기독교적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이다.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을 안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죽었다가 부활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신 분으로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시작된 새로운 질서에 참여해야 마땅하다. 아마도 바울이 지금의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편지를 쓴다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당신이 하는 사업에 머물러 있되 깊이 파고들기 바랍니다. 당신의 일터, 당신의 사무실, 당신의 지위가 당신에게 모든 걸 가르쳐 줄 것이고 신앙 성장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종교적인 직업을 갖게 되면 영적인 이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삶은 그저 우연에서 우연으로 이어진 우연 덩어리가 아닙니다. 당신을 현재 거기까지 인도한 모든 것 - 출생, 교육, 이해관계, 장점, 기회 등 - 이 하나님 섭리의 일부입니다. 히나님이 당신을 불렀을 때 당신이 처했던 위치는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모든 걸 포괄하는 하나님의 소환에 포함되어 있던 것입니다. 당신의 삶과 일상 업무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당신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한다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께로 부르시고 우리의 열정, 능력, 기회를 통해 우리의 재능과 은사에 적합한 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리고 그 일이 국제 무역이든, 회화 예술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그에 걸맞는 삶을 살고 ‘주님의 일을 하라’는, 모든 걸 포괄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일환이 된다. 따라서 비즈니스계에서 일하는 것은 이런 일반적 의미에서 하나의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고 이웃을 섬길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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