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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7장 24절 31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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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2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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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7장 24절 31절 요약 221125

경계를 넘어 일하시는 주님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에 대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사들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진짜 더럽히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바로 앞 문맥까지 진행된 후 갑자기 24절에서 예수께서 이방인의 도시, 혹은 복합문화도시 두로 지역으로 가셨다는 점은 질문을 유발합니다. 한 편으로 그렇게 하신 이유가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기를 바라셨”다는 진술을 보면 무언가 피하여 물러서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가복음에서 계속 보는 것처럼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 하시면 오히려 더 “숨어 계실 수가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24절, cf.36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바로 찾아 온 사람인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그리스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는 종종 독자들을 당황케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여인을 대하는 자세나 말투가 매우 고압적이고 매몰차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열두제자를 택하시고 내보시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고 하신 것을 고려하면 예수님의 생애동안 일차적인 관심은 여기 본문에서 “자녀”라고 부르는 유대인에게 있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매몰찬 예수님에게 보였던 자신을 한껏 낮추는 이 그리스 여인의 자세 때문에 여기서만 예수님께서 마음을 바꾸시고 구원을 허용하신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해석이 지금 7장의 문맥을 고려한 해석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해석은 예수께서 7장 1절에 나오는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사들과 똑같은 의식과 자세로 이방인인 그리스여자를 대한 것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사들의 문제제기 배후에 깔린 동기를 지적하시면서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이들의 자기 기득권 수호를 위한 전통수호가 낳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맥락이라면 오히려 예수께서 이런 입장에서 예상 밖 경계를 넘으시려는 의도를 보이시는 것으로 이 장면을 재해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과 이 여인의 대화를 정색을 하고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깔보는 대화로 보기보다, (톰 라이트가 「모든 사람을 위한 마가복음」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복합문화속에서 익숙한 “개”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는 “가벼운 놀림이 섞인 악의 없는 농담(140p)” 주고 받기 식의 대화로 이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를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예수님이 충돌을 피해 먼 두로까지 오셨지만 그와 더불어 자신이 하신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치유와 구원이 차별과 배제의 경계를 파격적으로 뛰어 넘어 이방인들까지 포괄한다는 것을 특히 측근 제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31절의 공간의 변화를 지도에서 따라가며 추적하면 애시당초 예수님의 관심이 단지 유대 지역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부러 보여주시는 일종의 행차같다는 생각을 더 짙게 만듭니다. 두로보다 더 북쪽인 시돈으로 올라갔다가 얼마 전 거라사 사건이 있었던 데가볼리 지역으로 빙 돌아 오신 것은 적어도 측근 제자들에게 이건 뭔가? 왜 이렇게 돌아서 갈릴리로 가시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미 3장 8절에 기록된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라는 리포트를 고려하면 이렇게 돌아오시면서 기록되지 않았지만 거기서 언급된 사람들의 집, 네트웍을 만나고 다니셨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본 그리스 여인과 같은 사람들, 구원과 치유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들을 만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계를 넘어 일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이름으로 요사이 부르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역사는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그 퍼레이드를 인식하고 자각하는 역사입니다. 예수의 복음은 일차적으로 유대인에게 부차적으로 유대인을 넘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처음부터 모든 인종을 포함하는 파격적인 경계 넘기, 경계 부수기의 이야기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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